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새로운 아이돌 이야기가 화제였다. 트위터 실트에는 ‘신인아이돌 비주얼’ 키워드가 올라와있었다.
덕력 좀 가졌다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는 이미 화제였다. 오프라인에서도 종종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카페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이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탁탁 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블루앤블루 센터 봤어?”
“봤지. 브랜블. 3월인가 나온다던데.”
“비주얼이…”
“대박이야. 데뷔하기도 전에 방송 하나도 안 타고 이 정도 화제가 된 그룹이 있었나 싶어.”
“소속사가 궁금하네.”
“3대 기획사 중 하나겠지 뭐.”
“비주얼만 보면 약간 S쪽?”
“나도 그렇게 생각해”
블루앤블루. 일명 브랜블은 데뷔도 전에 화제가 됐다. 일본 아이돌인 하시모토 칸나가 유명해진 것과 비슷했다. 흔한 로컬 지하돌 중 한 명이었던 칸나는 무대 사진 한 장을 찍히고 운명이 바뀌었다. 브랜블 센터도 그랬다. 연습을 마치고 나서다 찍힌 사진을 두고 팬들은 기적의 사진으로 불렸다.
기적의 사진. 아직 이름조차 모를 센터는 땀이 덜 마른 머리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연습실을 나오고 있다. 두꺼운 후드티와 헐렁한 조커팬츠를 입고 있다. 날 것의 청년. 약간 긴 머리는 춤에 거슬렸던 것인지 고무줄로 살짝 묶었고, 삐져나온 앞머리에는 땀방울이 맺혀있다. 하얀 피부와 검은 눈동자, 한바탕 뛴 다음에 올라오는 조금의 홍조.
청춘이었다.
사진을 찍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살며시 던진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은 살만한 곳이야”라고 중얼거리게 하는 것이다.
일명 기적의 사진이 화제가 되자, 이 센터에 대한 팬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그가 속한 신인 아이돌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데뷔도 하지 않은 신인의 팬카페는 3만 명을 훌쩍 넘겼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거나 앨범 쟈켓을 만들고 팬픽이 올라왔다. 시작도 하지 않은 그들이기에 팬들의 상상은 날개를 달았다.
호사가인 연예부 기자들은 이 신인 아이돌에 대한 특집을 기획했지만, 별다른 정보가 없어 포기했다. 지금은 대기자가 된 박기자도 그중 하나였다. 특종이 될 거라도 직감한 박기자는 사진이 찍힌 연습생 숙소를 사생팬처럼 잠복했다. 며칠밤을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차 안에서 잠자기 일수였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사진 속 인물을 도저히 만날 수 없었다. 잠복을 했으면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기에 박기자의 압박은 점점 심해졌고, 선임은 종종 그의 불평을 받아주는 역할을 했다.
“대체 기획사가 어디이길래 보안이 이럴까요. 동선 파악도 안 되니. 이렇게 저 들어가면 완전 깨지는데.”
“다른 아이템 다 포기하고 지금 여기에 올인하고 있는 거니?”
“네 선배. 브랜블, 좀 냄새가 나거든요.”
“무슨 냄새.”
“대박의 냄새요.”
대박의 냄새를 맡기 위해 거지꼴로 잠복을 했던 박기자는 대박은커녕 데스크의 호출을 받고 초라하게 복귀했다. 크게 혼날 걸 마음에 두고 부장님 앞에 산 박기자. 부장은 그런 그를 마음에 안 드는 듯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부장이 입을 열었는데 박기자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이 기자. 어때. 브랜블 좀 감이 와?”
“네. 감은 있는데 현실감은 없네요.”
부장은 박기자의 말을 듣더니 입술을 적신다. 박기자는 안다. 부장의 저 시그널은 확실히 뭔가 있다는 것이다. 부장의 습관이다.
“부장님, 뭐 알고 계신 거라도…”
“하아… 지금 우리 쪽으로 들어온 소스가 있는데”
“브랜블 정보가 부장님한테요?”
이상했다. 부장은 정치통이다. 정치부 라인으로 아이돌 소스라니. 박기자는 부장이 확실힌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의아했다. 그런 박기자를 신경 쓰지 않고 부장은 말을 이어갔다.
“그래. 확실한 백프로는 아니니까 알아서 들어. 이번에 김바람이 인재 영입 발표하기로 했잖아.”
“네, 목요일에요.”
“근데 김바람이 대선후보 출마 선언하면서 그 자리에서 블루앤블루 쇼케이스를 같이 한다는 거야. 어때, 야마가 좀 잡히잖나.”
“네?”
김바람은 제3야당 당신이미래당 소속 대선후보였다. 공고한 양당체제를 깨고 원내 진입을 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정치 행보를 해왔고, 그래서 거대 정치 세력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스로는 아웃사이더라 표현했다. 그런 정치인의 출마선언식에서 브랜블이 데뷔 쇼케이스를 갖는다는 것이다. 박기자는 뭔가 퍼즐이 맞춰진 느낌을 받았다. 철통 보안의 이유가 있었던 거다. 박기자는 부장에게 서둘러 물었다
“출마선언식 어디죠?”
출마선언식이 있는 한남동의 블루스퀘어 앞은 기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이곳은 아이돌 쇼케이스로 즐겨 쓰이는 곳이기도 했다. 박기자는 정치부 기자들 틈마구니 사이에서 아직 연예부 기자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그래. 나만큼 브랜블 스토킹한 기자 있어? 특종은 내 거야” 박기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사회자 안내에 따라 김바람이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쉬가 쉴 새 없이 터졌다. 박기자의 관심은 오로지 브랜블이었기 때문에 카메라도 켜지 않았다. 김바람이 단상에 올라가 꾸벅 인사를 한 뒤, 마이크 앞에서 샀다. 듣던 대로 훤칠했다.
“저는 변두리에서 자랐습니다. 윤택한 가정환경도 없었고 공부도 그리 잘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36살 먹은 지금까지 모쏠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평균 이하의 아웃사이더입니다.”
박기자는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김바람의 이런 말들은 본인이 강조하지 않아도 확실히 아웃사이더처럼 들린다고 생각했다. 김바람은 말을 이어갔다.
“이런 제가 왜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하는지, 이런 부족한 제가 어떻게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는지 많은 분들이 물으십니다. 대통령은 평균 이상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상위 1%의 삶을 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래 왔고요.”
김바람은 말을 조금 끊고 입술을 깨문다.
“대통령은 분명 뛰어난 사람이어야 하지만 그전에 먼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람.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황혼이라 부르는 것까지 모든 인생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우리의 정치는 숫자와 거대담론에 빠져 사람을 잃고 있습니다. 정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고, 대통령은 그 목소리를 제일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 김바람은 지금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다 잘 듣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김바람은 오늘 부로 대선후보 레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김바람의 연설 뒤에 지지자들의 천둥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기자도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따라 쳤다. 이상이 모호하지만 확실히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내일 1면을 크게 장식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와중에 사회자가 말했다.
“그럼 이제 당신이미래당 아이돌 블루앤블루의 데뷔 쇼케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목구비 평범한 김바람의 뒤로 CG 같은 외모의 소년 다섯 명이 등장했다. 박기자는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을 만난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얼마나 찾아 헤매던 이들인가. 여기서 드디어 만나는구나.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 곧 직업 정신을 발동해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를 통해 본 그들은 또 다른 묘한 매력을 줬다. 그 얼굴, 그 몸짓, 그 노랫말들. 박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전주가 흐르고 정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브랜블의 데뷔곡이었다. 대선출마식에서 최초 공개하는 노래. 둔탁한 808 베이스에 소년들은 멜로디와 랩을 얹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그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었고, 몇몇은 데스크와 연예부 기자에게 급하게 전화하느라 바빴다.
그 사이 우리의 박기자는 이미 기사를 송고했다. 연예 기사 속보로 낸 기사는 네이버 포털 상단에 노출됐고 몇 분 만에 몇 만의 트래픽을 몰고 있었다.
“됐다!”
라고 주먹을 쥐고 승리포즈를 취하면서 좋아하고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기분이 다운됐다. 정치 섹션에도 블루엔블루 기사가 노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래픽은 비교할 수 없었다. 금세 박기자가 쓴 연예 속보는 묻혔다. 현장에서 약삭빠른 정치부 기자 몇이 정치 기사로 연예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게다가 속보가 무색하게 컨트롤 C-콘트롤 V 기사가 쏟아졌다. 박기자는 이를 악물며 주위를 돌아봤다.
“아, 상도덕도 없는 이…”.
너에게 달려갈 거야
널 감싸 안을 거야
처음 봤던 그날처럼
사랑하게 될 것을
예언했던 그날처럼
천불이 끓어오르는 박기자와 다르게 브랜블의 노래는 청량했다. 데뷔곡 제목은 “예언의 아이들”이었다. 90년대 아이돌 감성의,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가사였다. 영어보다 한글이 많았고, 단순한 멜로디가 귀에 확 들어오는 일종의 후크송이었다. 노래도 노래였지만, 블루앤블루는 보는 맛이 있었다. 잘 생겼다는 수식어로는 부족한, 순수한 청춘의 맛이 있었다.
박기자의 열렬한 서포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이벤트는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대성공이었다. 물론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각 당 대변인들은 마이크 앞에서 이벤트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정치는 놀이가 아닙니다. 정치는 가벼워서도 안됩니다. 정치는 정치여야지 쇼가 돼서는 안 되고, 정치는 정책이 여야지 팬덤이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신념으로 해야지 외모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바람 대표는 즉시 우리나라 정치를 모독하고 국민을 우롱한 것에 대해 사과하십시오.”
그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국민이미래당이 사과하는 일은 없었다. 블루앤블루 데뷔곡이 멜론 차트 1위를 하자, 여론은 다시 김바람 대표에게로 흘렀다. 김바람이 또 한 번 기자들 앞에서 밝혔다.
“블루앤블루는 저희가 기획한 아이돌입니다. 여러분의 아이돌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함께 하게 될 정책 참모이자 장관 후보입니다.”
기호 18번 정도의 대선후보가 이런 발언을 했다면, 화제도 안되었을뿐더러 말도 안 된다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하지만 김바람은 3번이었다. 그의 발언은 파장을 낳았다. 환경부 장관 비주얼 멤버, 법무부 장관 리더 멤버, 국방부 장관 랩 멤버… 그런 구상이었다. 인터넷이 말 그대로 끓어올랐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박기자는 부장에게 호출을 당했다.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여자 배우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던 박기자에게 갑작스러운 호출은 달갑지 않았다. 부장은 박기자가 터덜터덜 온 걸 보고 담배를 쥐어물며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화색을 띠며 말했다.
“자네, 김바람 좀 인터뷰해봐.”
“네? 제가요?”
“그래. 정치 말고 연예 관점으로다가. 기획사 대표 많이 알잖아. 그 사람들 인터뷰한다 생각하고 접근해봐. 똑같은 대표잖아. 이거 박기자 말대로 깜이 될 거 같아.”
“…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선을 세 달 남긴 상황에서, 연예부 박기자는 야당 3번 후보 김바람을 인터뷰하게 됐다. 연예계 거물을 만나봤어도 정치 거물은 처음이었다. 긴장이 안될 수 없었다. 인터뷰는 그의 국회 사무실에서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런 연락은 보통 보좌관과 주고받는데 김바람 본인이 직접 약속 조율을 하고 확인 문자까지 주었다. 신선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렇게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바람이 손을 내밀었고 박기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 스윽 김바람을 스캔했다. 180이 넘는 키에, 어깨가 넓은 체형. 가까이서 보니 몸집이 훨씬 더 커 보였다. 물론 얼굴도 커서 비율이 훌륭하지는 않았다. 왠지 씨름을 하면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단단한 몸매였다.
“저희 브랜블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시다고요.”
“네, 대표님. 제가 처음 기적의 사진 보고 난 다음에 이 그룹에 대해 궁금해서 판 최초의 기자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도 매우 궁금하기도 해요. 블루앤블루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김바람 대표는 특유의 손가락을 마주하고 합장하듯 포즈를 취하며 집중한다.
“매우 오래전 일인데… 그때부터 관심을 가져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블루앤블루의 시작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저희 딸내미 때문이에요.”
“따님이요?”
“네. 올해 열세 살 됐어요. 근데 이 아이가 아빠가 뭐하는지 정확히 몰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하루 일과는 다 알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랑 대화를 좀 해봤어요. 아이돌 오빠가 좋은 이유가 뭐냐고요. 처음에는 별 이유 없다고 말하다가 제가 캐물으니까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뭐라고 했나요?”
“행복하게 한다고 했어요.”
김바람은 그 말을 하고 미소를 지은채 박기자를 한참 쳐다봤다. 박기자는 자신에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인가 하고 입을 열려고 하자, 그제야 김바람은 말을 이었다.
“아이의 그 말이 저를 깨웠어요. 그동안 정치의 길을 걸어왔지만 오래 지나면서 관성처럼 해왔거든요. 그런데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아이돌이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과 어떻게 정치가 연결되나요?”
“정치가 결국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아닌가요? 더 편하고 안전하고 더 좋고 갈등을 봉합하고 더 나은 내일로 가게 하는 거. 그게 정치잖아요. 그런데 아이돌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동안 진짜 행복을 줘야 하는 정치인들은 환멸과 짜증,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고 있었어요. 저도 그중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추상적이면서 이상적인 말. 젊은 신인 정치인들의 약점이다. 김바람도 똑같을까.
“아이의 사소한 말이 정치의 목적을 다시 일깨웠군요.”
“맞아요.”
“알겠습니다. 약간 정치 혐오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이런 진흙탕 싸움을 누군가는 해야 되지 않나요?”
“좋은 지적이세요. 그게 브랜블의 시작이거든요.”
김바람은 말 한마디를 신중하게 고르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통 정치인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이돌이 됩니다. 지지하는 사람의 수가 수천, 수만이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돌이 되죠. 아이돌은 그런 모두의 꿈을 투사하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저희 딸내미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 실제 그 아이돌이랑도 괴리가 있는 - 이상적인 남자 친구의 표상이라면, 정치인 아이돌은 세상을 이롭게 만들 것에 대한 기대가 담긴 표상이죠. 엄밀히 따지면 그 이상을 이룰 이상적인 아이돌은 없지만, 그 이상을 표로 환산해서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바람 대표님은 그럼 그런 아이돌이 아니고 싶으시다?”
“저는 현실에 발 담그고 싶어요. 이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현실의 땀과 진흙탕 싸움은 내가 할 테니, 이상을 이야기하고 같이 미래를 꿈꾸는 조직을 따로 만듭니다. 그 조직이 브랜블이고요.”
박기자는 생각보다 진지한 김바람의 말에 약간의 소름이 끼쳤다. 인터뷰 전까지는 인터넷 바이럴 목적의, 홍보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겠거니 정도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블이 조직됐군요. 대표님의 철학에 따라 팬덤을 분리하는.”
“쉽게 바로 결정된 건 아니에요. 저도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이내 바뀌더군요. 정태 군을 만나고 나서 그랬을 거예요.”
“브랜블 센터 분 말씀이시죠.”
“네. 정확히 기억해요. 5년 전 정태 군이 대학원을 막 졸업하고 저희 사무실에 찾아왔었습니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보통 사무실에 일하느라 분주해서 누가 와도 신경 쓸 새가 없는데 그때는 달랐어요. 사무실의 모든 사람이 문 앞에 선 정태 군을 봤어요. 그 집중. 아직도 잊지 못해요.”
“대표님이 정태 군을 찾은 게 아니라 대표님을 찾아왔다고요?”
“스스로 찾아왔어요. 본인도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가 얼굴에 가려서 그렇지 걸어온 길이 엘리트였어요. 공부를 잘해서 외국에 학교를 다녀왔고 어린 나이에 벌써 석사 학위가 있더군요. 전문성이 있었어요. 그쪽 분야의 커뮤니티에도 이미 깊숙이 교류하고 있었고요. 저는 딱 물었죠. 교수하면 딱 좋은 커리어인데 왜 갑자기 정치냐고.”
“뭐라고 하던가요?”
“교수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정치는 그 방법의 장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장을 만들고 싶다며. 그 장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니까 잠시 고민하더니 행복이라고 하더라고요. 두리뭉실했지만 낭만이 느껴졌습니다. 기존 정치에서 볼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잘생겨서 그런 거였는지. 우리 아이가 말했던 행복과 맞닿아있다는 느낌도 들고. 정태 군과 함께면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죠.”
김바람은 테이블 위에 있는 블루앤블루 데뷔 앨범을 만지락 거렸다. 앨범 커버에는 블루앤블루 전원의 얼굴이 마치 눈을 마주치듯 바라보고 있었고, 정 가운데에는 김바람이 이야기한 정태의 눈빛이 있었다. 박기자가 이어 물었다.
“정치를 꿈꾸는 정태 군에게 아이돌을 시켰을 때 설득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브랜블의 모든 계획은 정태 군이 짠 겁니다. 저는 그냥 최종 승인만 한 거고요.”
“그룹을 만들고 콘셉트를 만들고 노래 안무 다요?”
“아니요. 이 브랜블로 나중에 정치 세계에 어떻게 임팩트를 줄지까지 다요.”
박기자는 얼얼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브랜블은 깜이었다. 연예 지형을 모두, 아니 정치까지 흔들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박기자는 그 센터가 짰다는 일련의 계획을 김바람 대표에게 내리 들었다. 박기자가 투자사였다면 그 자리에서 백억, 천억을 투자하고 싶어지는 스피칭이었다. 브랜블의 계획은 곧 김바람 대표의 계획이었고, 김바람 대표의 계획은 곧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계획이었다. 그 첫 단추가 지금 끼어진 것이다.
박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골목길을 나오면서 김 대표와 인터뷰했던 5층짜리 건물을 바라봤다. 작고 오래된 건물. 자기도 모르게 브랜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면서 차에 올라탔다.
“이젠 널 좋아하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