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석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동자가 유난히 짙은 한 낯선 남자가 방에 무작정 들어와 한 말을 말이다.
“영혼을 수거하는 일을 맡기고 싶습니다”
그날은 일진이 좋았다. 미친 출근 전철 문이 간발의 차로 닫히기 전에 세이프할 수 있었고, 평소 자기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부장이 점심 커피를 기꺼이 사줬다. 야근거리도 없었고, 오래간만에 무난한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새로 나온 콘솔 게임을 하면서 배달 음식이나 시켜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빽빽한 원룸촌에서 그나마 웃돈을 주고 마련한 투룸은 그의 안정적인 둥지였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은 석구는 콘솔 전원을 켜고 배달 앱을 켰다. 그때였다. 그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타난 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5초 동안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최근 원룸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연쇄 살인사건이 떠오르자, 눈동자가 커졌다. 석구는 말을 더듬었다.
“너… 너 뭐야?”
남자는 그림자 같았다. 아니, 연기 같다고 할까.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르겠는 미묘한 표정을 하고서 문 앞에 서 있었다. 자세히 보고 있자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외모였다. 그가 영혼을 수거해달라고 요청한 건 더 정신 나가는 말이었다.
“사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석구 앞에 계약서 같은 걸 대뜸 내밀더니,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저는 영혼을 수거하는 사람으로…”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끌어내려고 했다. 오늘은 일진이 좋았단 말이다.
석구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유도를 했었다. 허약체질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인데 재능이 있었는지 몸집도 불어서 누가 봐도 건장한 체격이 되었다. 그런 석구가 남자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남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바위를 끌어내려고 하는 듯했다. 석구는 이 비현실적인 무게를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애썼다.
“애쓰지 마시오”
남자가 석구를 툭 치자, 석구는 어느새 아까 앉았던 의자로 밀려나 있었다. 이때 석구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말해드리겠습니다.”
다시 남자의 말이 시작됐다. 석구는 콘솔을 켜다 만 그 책상 의자에 앉아 남자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문득 내가 원룸 살인사건의 다음 타자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아득한 공포도 밀려들었다.
“저는 영혼관리소에서 나왔습니다. 영혼관리소에 대해 소개드리면 인간의 영혼이 떨어져 나가는 걸 관리하고 떨어져 나간 영혼을 수렴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석구의 반응을 잠시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제가 부득이하게 은퇴를 하게 되어 제 일을 대신 맡아줄 분을 찾고 있습니다. 석구 씨가 이 일의 제격으로 판단하고 찾아왔습니다.”
“지금 영혼이라고 했어요? 이상한 종교 같은 거 아니죠?”
“종교는 인간의 것이죠. 영혼관리소는 그 종교가 추앙하는 개념에 속한 것입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나타나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석구는 빽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이렇게 크게 지른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남자는 가만히 있다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입을 연다.
“박석구. 1986년생. 올해 37살. 경기도 평천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10대 시절을 보냄. 부모님은 일찍 여의고 어린 여동생은 친척집에 맡겨져 있음. 대학을 가지 못했고 대신 취업전선에 일찍 나가 지금까지 반복된 일상을 살고 있음. 3년 전까지 좋아하던 김은혜라는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음. 저축은 없고 주식과 코인은 수익률 마이너스…”
“아니, 당신… 뭐예요?”
“말씀드렸듯이 영혼관리국에서 나왔고, 영혼에 의해 기록된 모든 정보도 같은 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내 모든 게 기록되어 있다고요?”
“네. 당신에 대한 모든 것. 기쁘고 좋은 것과 슬프고 나쁜 것, 부끄럽고 행복하며 자랑스러우면서 사소한 것 모두.”
석구는 얼이 빠진 채 남자가 내민 계약서라는 걸 손에 들었다. 이렇기 적혀 있었다.
-영혼 관리인 계약서
“뭐야, 그럼 내가 죽어야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보다 조금 복잡한 존재가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게 됩니다.”
“나한테 지금 선택권이란 게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석구는 생각했다. 현생에서 초월하는 것.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까… 내가 적임자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이에요?”
“세상의 모든 영혼들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실이란 걸로 말이죠. 가장 굵은 혼실은 영혼이 알에서 나온 그 시작점과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은 또 다른 영혼, 그리고 지구 만물, 혹은 우주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력하게 연결될수록 혼실을 굵어지고 연결이 약해지면 혼실은 끊어집니다.”
“혼실이란 말이죠. 나한테도 연결이 되어있겠네요”
“네. 그게 바로 석구씨를 찾아온 이유입니다.
석구씨는 이제 연결된 혼실이 하나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말이 석구의 귀에 천둥처럼 들렸다. 하나만 남은 혼실. 무슨 의미란 말이지.
“의미 그대로입니다. 석구 씨와 연결된 어떤 무엇도 이제 다 끊어지고 딱 하나 남았습니다. 저희가 지향하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가장 적합한 상태입니다.”
“그게 무슨… 다 끊어지면 죽기라도 해요?”
“네.”
남자는 차갑게 대답했고, 석구는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죽습니다. 연결이 모두 끊어지면 영원한 죽음입니다. 저희의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연결이 모두 끊어진, 인간이 아는 죽음보다 더 아득한 심연으로 빠져들게 되고 더 이상의 실풀이는 없게 됩니다. 저희는 이렇게 떠도는 영혼을 관리하죠.”
“실풀이요?”
“인간이 아는 죽음은 사실 죽음이 아니고, 단순한 영혼 수거에 불과합니다. 아까 설명했던 시작점에서 혼실을 말면 영혼이 수거되고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인간은 그것을 죽음이라 말하지만 그렇게 수거된 영혼은 또 다른 혼실과 연결돼 다른 생명의 씨앗이 됩니다.”
“그런데 저한테 남은 게 하나뿐이라고요? 이게 끊어지면 완전히 끝이고요?”
“네.”
석구는 최근에 느낀 외로움, 무료함 따위와 삶에 대한 덧없다는 감정들이 괜스레 남자의 말과 이어져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혼실이 하나 남은 나를 찾아와, 지금 다 끊어진 뭔지 모르는 영혼을 잡는 일을 해달라는 말이죠! 근데 이렇게 했을 때 제가 얻는 건 뭐죠? 돈? 보상은 있어요?”
석구가 따지듯 물었다. 석구는 남자가 사이비에 물든 - 그리고 완력이 아주 센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때까지였다. 남자가 안광을 뿜으며 석구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손을 짚어 무언가를 보여주기 전까지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석구는 입을 벌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그런 석구에게 다시금 계약서를 내민다. 계약서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쓰여 있었지만 박석구라는 이름 세자는 정확하게 적혀있었다.
“여.. 여기 사인하면 되죠?”
“네”
석구는 뭐에 홀린 듯-이 표현이 정확하다-펜을 들어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남자는 여전히 그의 앞에 우뚝 서서 석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석구는 눈 하나 깜박하지 못하고 부릅뜬 상태로 계역서를 남자에게 건넸다. 계약서는 비단처럼 흩날리듯이 남자의 손에 닿았다.
“계약 확인했습니다”
“이걸로 제가 영혼관리인이 된 건가요?”
“몇 차례의 단계가 있지만, 거의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제 일은 끝났습니다.”
남자는 웃었다. 그걸 웃는다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석구는 그런 남자를 보며 기괴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인계합니다.”
남자는 또 한 번 안광을 내뿜더니, 석구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석구의 머리 위에 가느다란 실 같은 게 보인 것은 그때였다. 남자는 그 실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아악!”
석구가 소리를 지르고 잠시 정신을 잃은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방안에는 석구 혼자 남아있었다. 고개를 흔들고 눈을 깜박거려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눈앞이 침침했다. 어둡고 빗금 같은 것이 사슬처럼 눈을 가리고 있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몸은 무거웠고, 한편으로는 가벼웠다. 이상한 가벼움이었다.
새벽 시간을 확인하고 석구는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좀 하면 괜찮아지겠지. 물을 틀고 한바탕 얼굴에 끼얹었다. 그리고 무심코 거울을 봤다. 석구는 한번 더 정신을 잃었다.
거울에는 그 남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