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숨이 가빴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몸은 불덩어리 같이 뜨거웠다. 솔이는 괴로워하는 듯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숨을 몇 번 쉬고 다시 잠들었다. 긴 밤, 아주 긴 밤이 시작됐다.
어둠이 깔리고 새벽의 어스름이, 시계 시침과 분침 위에 앉아서 재촉했다. 째깍째깍. 오로지 시계 소리. 새하얀 천장과 또 새하얀 침대보. 그만큼이나 새하얗고 작은 솔이는 몸을 자주 뒤척였다. 엄마는 그 곁에서 무릎을 앉고 섰다. 기도하듯이. 뺨에는 솔이만큼이나 땀이 송글하다.
“솔아. 우리 병원에 갈 거야”
솔의 얼굴과 머리를 매만졌다. 땀을 닦아주는 것인지, 그 뜨거움을 달래주는 것인지. 솔은 엄마의 말에 힘없이 감았던 눈을 떴다.
“솔아. 진짜 신나지. 우리 같이 가서 재밌게 놀자. 솔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책도 읽고. 정말 좋겠지?”
소풍 가기 전의 들뜬 아이처럼 엄마가 말했다.
“솔아. 챙겨가고 싶은 거 있어? 솔이 좋아하는 인형 챙겨봐. 엄마도 좋아하는 거 챙겨가려고. 너무 신난다, 그렇지.”
엄마가 오래전 읽다가 포기한 두꺼운 책을 꺼내오자, 솔이는 “엄마, 그거 맨날 읽다가 잠드는 책이잖아.”라며 타박을 준다. 트렁크에 챙기려다, “아, 역시 안되려나?”하면서 책을 살며시 뺀다. 솔이는 그런 엄마를 보며 까르르 웃는다.
밤을 뚫고 온 낮 같은 대학병원에서, 솔이 생년월일 적으며 엄마는 다시 솔 나이를 새삼스레 떠올린다. 땀에 절어 등 뒤에 업혀있는 솔에게 엄마가 물어본다.
“솔아. 이제 솔이 나이 몇이야?”
“나… 이제 다섯 살이잖아. 일월 되면 한 살 먹는 거 맞지?”
자그마한, 아주 작은 손을 바짝 펴서 다섯을 표현한다. 그 다섯을, 솔이 살아온 그 숫자를 다시 쥐기 싫은지, 수속을 도와주는 간호사에게도 손을 보여준다.
“저 이제 다섯 살이에요”
“정말? 와, 이제 다섯 살이구나. 대단하다.”
간호사의 반응에 솔은 이를 보이며 배시시 웃는다. 솔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나는 웃음소리.
솔이에게 의사 선생님 이야기는 조금 어렵다. 솔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눈썹을 바짝 올리고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솔이는 아직 소아암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옷자락을 당긴다. 엄마도 솔이를 바짝 안는다. 그 사이에는 어떤 틈도 없다.
그날따라 입원실이 없어서 솔이는 응급실에 누웠다. 쨍한 조명이 눈이 부실 정도로 내려쬐고 사람들이 무척이나 분주하다. 여기저기 소리를 지르고 기침 소리가 들린다. 삐이- 삐이-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기계 소리가 들리자 솔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는 이내 솔이의 작은 침대에 같이 누웠다.
“솔아. 있잖아. 집에서 맨날 자다가 이 시간에 밖에 있으니까 캠핑 온 거 같지 않니?”
솔이는 그제야 엄마를 바라봤다. 바로 옆에 코 닿을 거리.
“진짜 재미있는 거 같아”
엄마가 정말 재미있어 보여서 솔이도 그랬다. 솔이는 엄마 얼굴을 바짝 가까이서 보다가 같이 웃었다.
“우리 병원 슈퍼에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솔이 좋아하는 꼬북칩도 사 먹자.”
“지금 자야 되는 시간인데 먹어도 돼?”
“뭐 어때. 집 밖에 나왔으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돼. 조금 이따가 슈퍼 같이 가볼까?”
솔이는 자기 이마에 손을 대보더니, “엄마랑 가면 재밌을 거 같아”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여전히 새하얗고 눈부시고 시끄러운 응급실에서 그렇게 웃는 사람은 솔이와 솔이 엄마뿐이다.
장기 입원하는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서 지어둔 공원은 솔이와 엄마를 인디아나 존스로 만들었다. 개미는 보물을 숨겨둔 비밀 요원이었다. 개미 행렬을 솔이가 따라가고 솔이를 엄마가 따라갔다. 개미구멍을 발견한 솔이 외쳤다.
“엄마, 엄마! 여기, 여기!”
“여기에 보물이 묻혀있대!”
“와! 엄마, 이거 내가 찾았어.”
“맞아. 솔이가 찾았어. 개미 열심히 따라가서 결국 찾았네.”
솔은 코가 땅에 닿을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개미굴을 바라본다. 개미는 그런 솔을 보고 고개를 들어 양발을 움직인다. 최연소 모험가 탄생을 축하하듯이.
그날 밤에 솔은 다시 열이 올랐다.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솔이에게 어려운 말을 하고 돌아갔고 쓴 약과 주사를 맞았다.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고 한 번은 완전히 게워냈다. 엄마는 솔의 작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쓰다듬기도 하고 다시 두드려주었다.
“우리 솔이.”
링거를 꼽고 지쳐 잠들어 있는 솔이 옆에 엄마가 누워있다. 솔의 얼굴을 부비고 어루만진다.
“솔아. 솔아”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있다.
“우리 솔이. 아파도 괜찮아. 아파도 돼.”
솔의 이마에 입 맞춘다.
“맨날 아파도 되고 맘껏 아파도 돼. 솔아. 엄마가 있으니까. 엄마가 있으니까 괜찮아. 엄마가 솔이 옆에 있을 거니까. 엄마가 지켜줄 거니까.”
엄마는 솔이의 작은 몸, 아주 작은 몸을 그 얇은 두 팔로 묶고 안았다. 가까이, 더 가까이. 엄마는 기도인지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중얼거렸다.
밤이 길었지만 다시 아침이 되었다. 병원 작은 창에서 햇살이 내리쬐었다.
어김없이 병원은 소란스러웠만 그 사이에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렸다. 솔이가 눈을 뜨자 눈앞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솔이가 가장 좋아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솔아. 오늘은 우리 뭐하고 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