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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an 05. 2022

천생연분을 찾아서

아스트랄 마이크로 단편선

민준은 정수리에 성기가 있었다. 번듯한 패션업체 대표였던 민준에게 유일한, 숨기고 싶은 단점이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민준이 이제까지 만난 여자들만 해도 스무 명은 넘었다. 갸우뚱하며 스무 명은 더 되지라고 민준은 생각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8K를 찍었다. 보정을 좀 하긴 했지만 180이 넘는 키에 요즘 여자들이 선호한다는 아랍형, 그러니까 깊은 눈에 짙은 눈썹, 오뚝한 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 남자에게 흔치 않은 스펙이었다. 물론 정수리에 성기가 달린 건 지구에 통틀어 흔치 않은 스펙이었다.


민준은 정수리 성기를 감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평상시에는 모자를 쓰고 다녔다. 세미 정장에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과 검은 비니는 언발란스하게 잘 어울렸다. 캐주얼하게 입을 때는 볼캡 모자로 성기를 가렸다. 민준은 화장실 거울로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해시태그 OOTD 해시태그 피곤하다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의 삶은 피곤하다. 다른 말은 쓰지 않는다. 다들 그러더라고 민준은 생각한다. 2년 전 민준은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패션 제안을 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국의 패션 고자들이 민준의 화려한 삶에 매료되어 DM을 보냈다. 민준은 시크하게 네이버 스토어 링크로 회신했다. 며칠 뒤 해당 옷을 구입한 팬이 자신의 착장을 다시 회신했다.


형, 형이 입으란 대로 입었는데 진짜 이렇게 입고 나가면 소개팅 성공할 수 있어?


민준은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믿으라고 DM을 보냈지만 패완얼이라는 명제를 민준은 다시 떠올렸다. 이미 후기에는 옷 상태는 좋은데 사진의 모델처럼 태는 안 사네요 라는 푸념이 복붙처럼 넘쳐났다. 그럼에도 이번 월 매출을 1억을 가뿐히 넘겼다.


그런 패션 고자들의 애타는 솔로탈출 염원과는 민준이 걷는 길이 애초에 달랐다. 민준은 유흥가를 걷기만 해도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문자를 하지 않아도 여자들에게 문자가 쏟아졌다. 아직 읽지 않은 카톡 메시지는 80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빠, 뭐해?”

부산 출장을 갔다가 만난 여자의 문자를 받고 민준은 망설였다. 바로 직전 만남에서 있었던 해프닝 때문이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여자의 미묘한 말 때문에 민준의 비니가 들썩댔다. 하마터면 도깨비 뿔처럼 머리에 우뚝 솟은 성기를 그녀에게 들킬 뻔했다. 때마침 민준이 화장실로 피해 부푼 성기를 가라앉혔을 망정이지.


스무 명이 넘는 여자와 교제를 했지만, 그런 모종의 이유로 민준은 잠자리를 가지지 못했다. 사실 오빠가 고백할 게 있어. 뭔데 오빠, 다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그게 뭐냐면… 내가 널 싫어해서 안 자는 게 아니라… 성기가 정수리에 있어서 그래.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민준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상대와 헤어졌다. 사실상 DM으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이 패션 고자들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닐까 민준은 생각했다. 아니지. 대수롭지 않은 문제다.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자로 잘 감추고 잘 누리면 된다.


오늘은  스스로 센티하다고 민준은 생각했다.  와중에 와인잔을  셀카를 올리며 해시태그 센티 해시태그 와인 같이 마실 사람.


 말도 안 되는  감각을 보여준 고객 02901번이 혹여나 아주 작은 확률로 여자 친구를 사귄다면 어떨까. 전세는 단번에 역전될 것이다. 민준은 아무리 여자의 마음을 얻어도 비밀까지 털어놓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짓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는 건 견디지 못할 일이다. 그런 경험은 유년 시절에 혹독히 겪었다. 민준은 문득 외롭다고 느꼈다. 이 비밀까지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어떨까. 민준은 와인병의 남은 와인을 잔에 털어 넣으며 생각한다.


주문량이  늘어서 물량을 15% 정도 늘려주실  있나요. 민준은 다음날  공장 관계자와 미팅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미팅은 굉장히 루즈했고 지루했다. 민준은 매번 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아마 긴박하고 신속하게 이뤄졌다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민준의 몇백 개 카톡에 묻혀서, 민준은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민준은 지루했고 비니 속의 정수리 성기도  쳐져있었다. 이번에 저희 공장 일부 인력이 개편이 돼서…라고 말하는 공장장 말이 끝나기 전에 민준은 카톡을 확인했다. 그때 민준이 들어가 있는 고등학교 동창 단체 카톡방 알림이 울렸다.


야 이거 봤냐 대박이야

라며 학교 다닐 때 촐랑거리던 친구가 여전히 촐랑거리며 링크 하나를 보냈다. 야한 사진을 보내거나 음담패설을 주로 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그런 종류일 거라 민준은 생각했다. 하지만 섬네일은 영어로 된 해외 토픽 기사 같았고 민준은 클릭했다.


Shock ! Questa donna ha un pene in testa.


이탈리아 기사였다. 이탈리아 말을 알리가 없었다. 민준은 시덥지 않은 걸 보냈네 하면서 링크를 나왔다. 채팅창에는 링크를 본 몇 명의 동창들이 이어 문자를 남기고 있었다.


머리에 그게 있다고?

야 대박. 그럼 그건 어떻게 하냐.

돌연변이 아니냐. 좀 징그럽다.


민준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3초 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장장은 놀라서 아니 왜 그러시냐고 물었고 민준은 그의 양해를 구한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기사를 번역기를 돌려 자세히 살펴봤다. 이탈리아의 비르지니아라는 이름의 32살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르지니아는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에 성기가 달려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뒤통수였고, 항상 긴 머리로 자신의 성기를 숨겨야 했다고 밝혔다고 쓰여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밝힌 것이 아니고 기자 출신의 전 남자 친구가 그녀의 비밀을 폭로한 것이었고 그 충격에 그녀는 모든 연락을 끊고 자취를 감췄다…라고 쓰여있었다.


페라리에 걸어서 기사를 몇 번이나 읽었다. 민준은 믿을 수 없었다. 비르지니아라는 사람을 지금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그녀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도 그 상황에 놓이지 않았는데도 이해가 됐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 뒤통수에 그게 달린 사람과 정수리에 그게 달린 사람은 꼭 만나야 한다. 어쩌면 그게 천생연분이지 않을까라고 민준은 비행기 티켓을 끊으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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