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강도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친구 커플을 만나는 자리에서 물었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사실 이 질문은 하루 전 회사 송별회 자리에서 팀원이 했던 질문과 같았다. 그 팀원 왈, 자신의 친구들은 이 질문을 모두 얼버무린다는 것이다. 확신을 어떻게 가지게 됐냐는, 어찌 보면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 마치 대답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또렷하게 미래의 행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뭔가 못 미더운 눈치였다. 거기에 나는 사랑과 결혼은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여전히 못 미더웠다.
그 질문 이후에 돌고 돌아 다시 한번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사랑하게 된 순간, “이 사람이야”라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을 왜 특정하지 못하는 걸까. 당연하다. 그런 한순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대중매체와 미디어가 키워준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이미지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가 만들어준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해나갈 사랑과는 굉장한 괴리가 있으며 사실상 허구에 가까운 개념이다.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결혼까지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감정 곡선은 말 그대로 연출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강렬한 ‘순간’을 찾으며 그 순간이 없으면 사랑이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확신도 마찬가지다.
그런 순간이나 확신도 없다면, 어떻게 만나고 사랑을 이야기하며 결혼까지 골인하는 것일까. 관점의 차이다. 사랑은 그 순간을 보지 않고 전체를 본다. 어떤 강렬한 기억과 말, 행동이 사랑을 대표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녀를 만나고 있는 모든 시간, 모든 순간에 흩뿌려져 있다. 그렇다. 정말 소중한 사랑은 얼마나 강렬한지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꾸준하게, 변하지 않는 일관적인 지속성이 중요한 것이다.
그녀에게 그는 아침에 잊지 않고 문자를 해주고 저녁에 침대를 뒹굴거리며 전화로 밤 인사를 전한다. 길을 걷다가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는 웃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그가 옷가게를 지날 때 참 잘 어울리는 옷을 발견하면, 다음에 기억하고 같이 옷가게를 찾아간다. 피곤한 일을 마치고 몸이 힘든데도 카페에 앉아 그녀의 수다를 들어준다. 웃어주고 그녀를 화나게 한 상사를 같이 욕해준다. 가끔 금요일에는 꽃을 선물한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그녀에게 푹 안겨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그런 그라는 존재가 누적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아무렇지 않다가 100도씨가 딱 되어야 비로소 끓는 물처럼, 누적이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다가 어느 순간 “그를 진짜 사랑하는 것 같아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되었다고 항상 이야기하지만, 사랑을 관계로 치환해 설명하면 조금 다르다. 관계에 있어 변하지 않은 꾸준함은 비로소 물처럼 끊어 오르기 되어 있다. 그것이 뒤돌아봤을 때 사랑의 순간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결혼의 결심이 되어 있을 수도.
멋진 말과 휘황찬란한 이벤트로 포장된 사랑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따뜻함과 친절함의 순간들이 쌓인 사랑이 더 낫다. 그런 사람이라면, 충분히 결혼을 결심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