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화두는 이것이다. 과연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실제 그 모습을 보였는데도 콩깍지가 씌어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리스크.
이런 불안과 리스크는 나중에 시한폭탄처럼 터지게 되는데 “내가 이런 사람을 좋다고 만났다니”라는 한탄과 함께 이별 혹은 이혼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수없이 묻는다.
“이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가?”
보통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 이번 나는 솔로 11기의 순자처럼 “오빠는 가식적이야. 로봇 같아. 솔직하지 못해”같이 자신이 이미 정해버린 상대의 본질은 핀트가 좀 다르다.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상대가 진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대화술이라는 것이 있고 스킬이 있으면 누구나 자신을 좋은 사람인척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 방법이 아예 없을까? 아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보통 상대에 대한 판단을 친구나 지인들에게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 어때?”라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와 같이 만남을 하고서는 나름 객관적인 의견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그 객관이라는 것이 정말 제3자,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의견인 것인데 이것이 진지한 만남을 전제하는 둘 사이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을까? 제3자가 본 상대에 대한 평가는, 제3자가 내린 것. 상대에 대한 평가는 다름 아닌 본인 자신이 내려야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솔직하게 질문해봐야 한다. 이 질문이다.
“나는 이 사람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증거는 나로부터 나온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나도 그 사람을 만나기 전보다 명백하게 좋은 생각, 좋은 에너지, 좋은 삶의 패턴을 만들었을 것이다. 뒤돌아보며 천천히 생각해봐야 한다.
혹은 그 사람이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말들, 더 불건강해지고 부모와 사이가 더 나빠진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는솔로 11기의 영숙의 예를 들어보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된다. 영숙은 울면서 고백했다. 자기가 왜 연애를 실패하는지 알겠다고. 상대의 마음을 알 생각 없이 나의 서운함에만 집중했다고. 모두 상철의 진심이 그녀에게 통한 결과였다. 영숙은 그를 만나기 전보다 연애에 있어 더 성숙해졌다. 명백하게 좋은 변화. 이로서 영숙에게 상철은 좋은 사람이다.
처음은 외모나 직업 화술 같은 것들로 좋을지 몰라도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흩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사람은, 만나면 만날수록 나의 장점을 치켜세워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에너지가 되어주며 언제나 든든히 뒤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 좋은 관계, 올바른 관계에 대해 배운 적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관계도 부익부빈익빈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 사람은 더욱더 좋은 사람이 되며 그리 좋지 않은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우선 자신이 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자. 나에게 진짜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좀 심심할지 몰라도 나를 더 선하게, 나를 더 웃음 짓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