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 아포칼립스 리뷰
시사회 이후 엑스맨의 새로운 영화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왔다. 로튼토마토는 신선도 40%대를 기록했다. 배댓슈의 악몽이 재현되는걸까. 뚜껑을 열어보니, 그와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내 평가도 썩은 토마토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엑스맨 : 아포칼립스가 이토록 혹평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리즈 사상 가장 강한 빌런, 호화로운 캐스팅. 히어로무비를 태동시켰던 시절의 엑스맨 오리지널 시리즈 1편과 2편, 그리고 호평 받았던 엑스맨 데이즈오브퓨쳐패스트를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가 메가폰을 잡았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전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히어로 무비의 정석을 만들고 세웠던 싱어 감독은 이제 자신이 만들었던 전형에 갇히고 말았다.
최악의 적이 나타나 지구 사상 최악의 위기에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위기을 이겨낸다는 대체 언젯적 플롯을 가져다가 영화를 만든 것인가.
"이 세상을 파괴하겠다"라는 아포칼립스의 구호는 그 자체로 너무 악당의 전형스러운 대사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드렁하게 만든다. 그의 동기가 전혀 공감되지 않을 뿐더러 제작비의 대부분이 들어간 것으로 예상되는 지구 파괴 장면은 그 전혀 공포가 와닿지 않아 정말이지 무신경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 영화를 잘 만들었다면, 관객은 아포칼립스의 경악할 능력에 스릴러 수준의 공포와 절망을 느껴야 한다. 말그대로 아포칼립스(멸망)을 간접 경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포칼립스는 어떤 90년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구식의 모습으로 따분하기 그지 없다. 마치 일직선으로만 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관객을 오르락 내리락 가지고 놀아야 되는데 이미 관객은 결말을 알고 있다. 어찌 됐건 히어로들이 이 재미없는 악당을 이길거라는걸.
이 놀랍도록 지겨운 전형을 반복하며 싱어 감독은 마치 과거로 돌아가 오리지널 엑스맨 시리즈의 3편을 만든 듯 하다. 그래, 어쩌면 그 3편이 실제 개봉된 시기에 이 아포칼립스가 개봉했다면 어느 정도 호평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넘치는 히어로물의 홍수에 관객은 이미 새로움을 원하고 있다. 19금 욕과 피 튀기는 액션을 선보이는 데드풀이 나오는 시대다.
더 이상 나쁜 놈과 싸우는 착한 놈의 공식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 실제 삶이 그렇지 않나. 착하기만, 나쁘기만 한 건 없다. 그런 선인의 히어로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영화스러운거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닮은 고뇌하는 히어로, 악당을 닮은 히어로, 소시민 히어로를 원한다. 이번 엑스맨은 그러기엔 너무나도 어릴적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전형적인 에피소드다. 너무 뻔한거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퀄 1편이였던 퍼스트 클래스가 돋보인다. 과감하게 선인 대 악인의 구도 대신 캐릭터들의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선을 세심하게 잡는데 공을 들인다. 그 결과, 관객은 완전히 찰스와 에릭에게 동화될 수 있었다. 그들의 행동, 결정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빌런은 하나의 양념에 불과하다.
사실 호평받은 프리퀄 2편은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하긴 했지만 그의 완전한 작품이 아니다. 1편을 만들면서 2편의 각본까지 이미 다 짜놓은 매튜 본의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이언 싱어의 바로 전작은 또다른 전형으로 쫄딱 망한 슈퍼맨 리턴즈다. 한때 유주얼 서스펙트로 화려하게 천재감독 소리를 듣던 브라이언은 이렇게 보면 총기를 잃어가는 듯 하다. 반면 매튜본은 연이어 킹스맨도 성공시키며 평단과 흥행을 모두 잡은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브라이언 싱어가 과거 히어로물의 유물이라면 매튜 본은 현재 우리가 가장 열광하는 히어로가 무엇인지 아는 감독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오리지널 1, 2편을 정말 좋아했었지만 이제 히어로물은 그만 만들었으면 한다.
대중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정말 재미있는 스토리 소스, 매력적인 캐릭터, 강력한 팬덤을 가지고 이 정도 영화를 만든건 확실히 감독의 역량 부족이다. 다음 엑스맨 무비는 패기 넘치는 신인에게 맡기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 하다.
5점 만점에 2.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