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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an 13. 2023

결혼 준비만 시작하면 왜 싸울까

연애와 결혼의 경계선에서

예비부부 친구가 방문했다. 화두는 결혼 준비. 얼마나 사소한 걸로 서운했는지, 얼마나 많이 삐지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지 한바탕 토로가 시작됐다. 그리고 나에게 물어본다.


이거 어떻게 해야 돼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기 때문이다. 평화주의자 두 명이 만나서 그럴 수도 있다. 그저 왜 싸울지 어렴풋이 짐작이 될 뿐이다.


이 둘 뿐만 아니었다. 연애 때는 알콩달콩 하다가 결혼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안 맞는다며 하소연을 한 친구도 있었다. 단순히 보자면 좋고 아름다운 것만 보는 연애 때로부터 현실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는 시작점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본질은 그것 이상인 것처럼 보인다.


불안 때문이다. 연애 때 사소한 것들도 결혼 때 크게 보이는 것은 불안 때문이다.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을 선택했을까 하는 불안. 그리고 그 선택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텐데 그 선택에 또한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 불안 때문에 결혼의 초입에서 그렇게들 싸우는 것이다. 연애의 터널을 지나면서 나름 확신이 생겼다고 자부했지만, 터널을 완전히 지나게 되며 내가 했던 확신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봐야 하는 것이 있다. 이런 불안으로 필히 싸운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감내해야 할까? 혹시 이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종료 버튼을 눌러야 하는 사인은 아닐까?


결혼 준비를 하는 연인이라면 꼭 새겨야 하는 말이 있다.

결혼 준비 기간은
앞으로 함께 살 80년의 압축판이다


압축판.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는 미리 보기. 갈등과 화해, 웃음과 슬픔, 분노와 기쁨까지 모두 이 짧은 기간에 들어있다. 여기에 앞으로 같이 살 긴 날들이 들어있고 우리는 우리 둘이 어떻게 앞으로 살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압축판이자, 연습 기간이다. 수도 없이 발생하는 불안과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연습이다. 이제까지 좋기만 했던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의 대처와, 그로 인해 일어난 내 감정을 처리하는 연습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 태도는 “누구나 다 힘든 결혼 준비 기간이니까”라고 그냥 넘기는 것이다. 이때 발생하는 감정들은 그냥 감정들이 아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감정도 많이 상하는 순간이 있지만 어찌 보면 앞으로 살 모든 날들을 위한 시작점으로 생각하면 다 귀하다. 진짜 서로를 알기 시작한 순간이니 말이다. 대신,


멈춤, 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분명 있다. 압축판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결혼 준비 기간을 쭉 늘려 평생으로 바꿔 생각해 보면 된다. 기준은 불안이다. 이것을 보자. 상대가 나의 불안을 중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증폭하는 사람인지.


나의 불안까지 귀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가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불안은 도적처럼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런 불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이 변하지 않고 내 불안마저 봐준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됐다. 앞으로 살 모든 날의 좋은 사인이다.


결혼 준비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처음 들은 이후로, 마치 스스로 예언을 실현하듯 살고 있다. 한 번도 안 싸운 결혼 준비 기간만큼이나 나와 B의 결혼 생활은 놀랍도록 평안하다. 오히려 점점 더 사이가 좋아지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말이다. 우리 부부가 잘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만큼 경혼 준비의 시간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이야기다. 그 시간의 작은 불안도 허투루 보내지 말자. 그 감정도 나니까. 같이 이야기하고, 앞으로 살 많은 날들의 동반자에게 나누자. 그렇게 같이 사는 법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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