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은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거나

이혼결투 소셜클럽

by ASTR

위자료에 대한 개념은 독일에서 시작됐다. 1653년 자식이 죽었다는 이유로 한 부모가 위자료라는 생소한 배상 청구를 했다.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는데, 로마법을 확장 해석해서 배상을 해준 것이다. 그건 그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돈으로 환산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위자료는 역사 속에서 개념이 잡혔다.


정신적 고통과 재산 외의 손해에 대한 배상


한국에는 민법 제751호에 이 내용이 담겨있다. 타인의 신체적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혼에 있어서는... 민법 제806호와 843호에 자세한 위자료 청구권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혼하는 경우에는 그 이혼을 하게 된 것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에게 이혼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예를 들어 배우자의 혼인파탄행위 그 자체와 그에 따른 충격, 불명예 등)에 대한 배상, 즉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곧 한쪽이 빌런일 경우, 손해를 입은 다른 쪽에게 위자료 청구권이 생긴다. 위자료를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쌍방이 파탄에 이를 정도의 책임이 있을 경우에는 그 청구권은 기각된다. 그럼 그 손해라는 무형적인 피해가 어떻게 돈으로 환산될까?


계산식은 이렇다.

기본 위자료 = 기준금액 × 혼인기간 가중치 × 귀책사유 가중치


여기서 혼인기간과 귀책사유 가중치가 중요한데, 기간이 길고 귀책사유가 중할수록 가중치가 높아진다.


<혼인기간 가중치>

-5년 미만: 0.8

-5-10년: 1.0

-10-20년: 1.2

-20년 이상: 1.5


<귀책사유 가중치>

경미한 불화: 0.8

일반적 귀책: 1.0

중대한 귀책: 1.5

극히 중대한 귀책: 2.0


이런 방식으로 손해와 피해는 돈으로 변하게 된다. 이왕 이혼을 한다면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낫겠지만, 부부생활이 그렇게 종료될 거라는 걸 예감할리는 없으니 계산식의 혼인기간은 어찌 보면 상수나 다름없다. 그럼 남은 것은 귀책사유다. 책임져야 하는 사유라는 뜻이다. 피해를 준 원인. 상처와 불안의 씨앗. 부부생활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 그렇다, 빌런이다. 빌런의 악행 레벨.


하지만 사람이란 건, 언제나 인생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신이 빌런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혹여나 불륜을 저지른다고 해도, 심지어 폭언과 폭행을 저지른다고 해도, 히스테리를 부리고, 가스라이팅을 시키거나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마땅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많은 유책자들이 그 이유에 대해 상대방을 지목한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상대방이 관계를 기피해서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불륜을 저질렀다, 상대방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생활이 전혀 안돼서 폭언과 폭행을 했다, 상대방이 너무 상식 밖에 행동을 하니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우울해서 히스테리가 생겼다,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해서 교정해주려고 했다, 와 같이 말이다.


지옥이 시작된다.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 진심으로 잘못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도 대다수이고 - 검은 눈의 수도사가 이야기했듯 그저 쌍방의 맨손 결투와 다름없는 싸움으로 변한다.


법적 귀책사유가 있는 당사자는 그 사유의 사유가 상대 때문이라고 하고, 오히려 자신도 그로 인해 피해를 봤기 때문에 당당히 ‘위자료 청구권’을 가진다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탓을 하며 잘잘못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리고 ‘손해’라는 무형적인 이미지는 이미 둘 사이의 상흔으로 깊게 자리 잡는다. 이렇듯 잘잘못을 따지는, 그러니까 이혼을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무너짐이 된다.


대준의 삶은 너무나 고루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이 많았다. 둘은 따로 혼자 살았다면, 그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사소하게 누군가를 거슬리게 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서로 만나자, 그레이스의 이론대로 양과 음이 서로를 끌어당겨 만났으나 그 결과는 또다시 끊임없이 서로를 밀어내는 형태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빌런이 되었다.


하나는 대준과 싸운 일들을 떠올렸다. 치고 박는 육탄전은 없었다. 아무리 치를 떠는 대준이라도 손찌검을 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싸움이란, 검은 눈 수도사가 만든 공식처럼 결국 잘못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차이 때문이었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았던 것, 그런데 그 양말을 항상 하나가 치웠던 것. 결혼기념일을 설레며 기대했던 하나의 기대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기념일을 잊고 낚시를 간 대준에게 울면서 화냈던 것. 대준이 야근하고 돌아온 날 왠지 모를 우울감에 잔소리를 쏟아낸 것, 명절 전날에 서로의 부모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한 것과 같은 것들.


양말을 뒤집는 건 잘못은 아니지만 부부에게는 중요한 일이고, 기념일을 잊는 건 물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인간적인 일이지만 부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원래 문제가 아닌 것도 둘이 붙으니 문제가 된다. 서운함과 우울감은 사건의 종류와 관계없이 불쑥 튀어나오고 사건의 중하고 경하고 관계없이 상대에게 비수를 꽂게 된다. 그게 부부로 만난 가의 모든 남녀가 겪게 되는 시행착오다.


“그래서 위자료는 이긴 사람이 독식한다, 이 말이죠?“

대준이 조용히 듣다가 묻는다. 그레이스는 서류 앞장에 찍힌 클럽 인장을 바라보며 말한다.

“네, 보통 이혼 소송을 가게 되면 귀책사유가 있는 사람이 불리하지만 소셜클럽은 공평합니다. 게다가 돌려받게 되면 단위도 다르고요.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소셜클럽이 이 모든 과정을 지원합니다. 좀 관심이 있으신가요? 소셜클럽은 프라이빗하게 운영됩니다. 확실하게 말씀을 주셔야 다음 단계로 안내를 해드릴 수 있어요.“


그때 하나와 대준은 생각했다. 우리 둘 중에 진짜 빌런은 누구였을까? 진짜 귀책사유는... 누구한테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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