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결투 소셜클럽
중세 이후, 이혼결투 소셜클럽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중세의 암흑기에 태동한 클럽은 산업혁명 때 몰락한 부르주아의 뒷배를 타고 프롤레타리아 신흥 부자 고객들을 모시며 암암리에 성황을 누렸다.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 중에서도 이혼하려는 고객들은 언제나 있었다.
클럽의 고객 대부분 참고 살다가 제 발로 찾아왔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죽을 사가 나온다고 했던가. 종교가 아직 힘이 있던 시절에도 그들에게 성경보다 더한 한 줄기 구원이었다.
이렇게 살바에 <너 죽고 나 죽자>보다 훨씬 가능성 있는 <너나 나나 한 명 죽자>에 도박을 거는 것이었다. 그렇게 누군가 한 명 죽음에 이르게 되면, 그게 설령 죽음을 당한 자의 입장이라도 그들이 그렇게 바랬던 영영 안 보고 사는 게 가능하니까. 지옥에서는 (지옥이 있다면) 그 혹은 그녀를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최종적으로 그들이 원하던 ‘이혼’, 혹은 안식이 완성됐다. 어쩌면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지 않고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기쁨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을지도.
독일의 결투 교관이면서 궁정 고문일을 했던 한스 탈 호퍼가 1467년에 남긴 그림책에 이혼결투클럽을 세세하게 묘사해 뒀다. 그레이스가 아이패드를 꺼내든다. 익숙한 듯 몇 번 터치를 하더니 둘에게 그림 하나를 보여준다. 우스꽝스러운 그림이었다. 케이지 같은 곳에 남자는 구멍 안에서 곤봉을 들고 있었고, 여자는 돌팔매 같은 걸 들고 남자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거예요?”
하나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네.“
“물론 지금은 형태가 꽤 다릅니다만. 목적은 같죠. 검은 눈 수도사가 시작한 그대로 말이죠.”
그레이스는 벙찐 두 사람 앞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수없이 만나온 반응이었으니까.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해서, 제 발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표정이란, 다 그런 것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이 많든 적든 유명했건 아니건 예쁘건 추하든 상관없다. 관계의 종말 앞에서는, 모두가 같다.
”물론 당황스러우시겠죠. 이해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러 왔는데, 격투시합에 나가라니. 그런데 창립자는 그게 방법이라고 봤어요. 괴로움의 격차를 줄이려고 정말 많이 시도했다고 해요. 그런데 줄일 수가 없었죠. 왜였을 것 같아요?“
”괴로움의 원천이 상대였기 때문에.“
대준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 대준을 하나가 힐끔 본다. 대준의 눈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나는 서류를 탁 내려놓고, 눈과 입이 잔뜩 일그러진 채로 말한다.
“네네. 이런 이야기를 들으러 시간 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에요. 그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저희는 이 일에서 빼주세요. 오빠, 얼른 일어나. 가자.”
“아니, 난 흥미가 있는데.”
가방을 싸던 하나는 대준의 말을 듣고 한참을 멈춰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모든 사고가 멈춰있다가 입을 연 하나는 ”진심이야?“라고 조용히 말할 뿐이다. 대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긴 침묵을 깬 건 역시 그레이스였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충분히 상의하실 시간들 드리고요. 흠... 아! 제가 중요한 걸 빠뜨렸네요.“
그레이스는 중요한 숙제를 두고 온 아이처럼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서랍장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낸다.
”이건 결투에서 이겼을 때의 특전입니다. 저희는 위자료라고 부르죠.“
서류를 건네받은 대준은 몇 장을 넘기자, 두 눈이 커진다. 서류에 적힌 금액에는 0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금액의 제목은 그레이스의 말 따라 최소 위자료였고, 설명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승자독식
“위자료는 두 분의 관계, 그러니까 상대의 의미를 돈으로 치환해 산정될 거고, 매회마다 달라집니다.“
“매회마다라니요?“
”네, 그건 클럽 운영에 대한 이야기라, 정식 가입하시면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그리고 승자독식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승자가 가져간다는 말입니다. 아이까지도.”
아이 이야기를 꺼내자, 대준과 하나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에게 아이는 없었다. 아이가 없어서 다행일까. 아니면 언젠가 그들에게 생겼을 아이에게 미안해할까. 어떤 방향이든 승자독식할 아이는 없었고, 그들은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돈을 치환되는지 화제를 돌렸다.
“위자료라는 거 다시 한번 설명해봐 줄래요?”
하나가 물었다. 하나는 자신이 너무 속물처럼 보이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언제나, 누구나 솔직하게 된다. 그레이스는 그런 하나의 반응이 익숙한 듯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위자료란, 상대의 의미입니다. 이혼소송에서 거는 재산 분할과는 개념이 다르고요. 관계의 생과 사를 걸고 결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가 종말되는 만큼 위로금과 축하금도 지급됩니다.“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하나는 물었다. ”지급된다고요? 누가 돈을 주는 거죠? “
”물론...“
그레이스가 그들에게 나눠주었던 서류와 같은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모든 위자료는 이 소셜클럽에서 지원합니다. 결투에서 이기시면, 이 위자료를 모두 가지실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