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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자본의 함정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리뷰

by ASTR

흔히 영화 제작자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 기대작일수록, 돈을 많이 들이고, 돈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영화 퀄리티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영화 워크래프트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 영화 제작사의 오판을 되뇌었다. 명색이 영화 제작사이면서 영화 제작을 망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이게 다 돈 때문이다.




대기업을 한번 떠올려보자.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매우 큰 기업이면 좋겠다. 조직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하나의 프로젝트에도 굴리는 돈이 매우 많다.


어떤 유능한 직원이 훌륭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이 결정 한번에 수억이 왔다갔다하는 경우라면, 그 윗선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사원이 대리에게, 대리가 과장에게, 과장이 부장에게, 부장이 임원에게, 임원이 대표에게 받는 그 결제라인이 결국 모든 의사결정을 굼뜨게 만든다.


속도만이라면 사실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처음의 순수하고 창의적이였던 아이디어는 실무자가 아닌 또 누군가의 개입으로 누더기가 되기 일수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큰 특징으로 꼽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게 아니라 윗사람의 입맛에 맞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이같은 문제가 똑같이 드러난다. 감독의 역량 위에 제작사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다.


워크래프트의 던칸 존스 감독은 "더 문"이라는 획기적인 SF영화를 연출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 뒤로 상업영화로 "소스코드"까지 성공시켰다. 평단의 지지와 상업성까지 고루 갖춘 감독이라고, 그렇게 인정돼왔다.


던칸 존스가 연출한 세번째 영화 워크래프트는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다. 액션은 호방했고 게임 원작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관이 흥미로왔다. 기본 원작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로튼토마토 19%를 찍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매끄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군데군데 편집이 거친 부분이 눈에 확 띌 정도였으니. 게다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욕심을 냈다. 투자를 할때와 마찬가지로 영화도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여러 바구니에 나눠담아야 한다. 그게 관객을 배려하는 방법이다.


배댓슈나 엑스맨, 워크래프트 모두 역량이 대단한 감독을 모셨다. 아무리 못만든다고 해도 영화가 이상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매력적인 스토리 소스. 배우들의 연기. 이 모든게 갖춰진 상태에서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면 그건 제작사의 잘못이다.


영화가 기대만큼 잘 안뽑히면, 쉽게 감독 탓을 한다. 배댓슈 때도 그랬고, 이번 워크래프트가 개봉하면 던칸 존스에게도 그럴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너머 영화 제작 가운데 감독과 제작사와의 갈등도 그 영화를 망친 큰 원인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자본 영화일수록 감독의 연출 능력도 능력이지만, 자신의 이야기와 의도를 윗선에 관철시키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올해 개봉했던 기대작들의 실망스런 결과물을 줄줄히 보고나니, 그 이야기가 더 수긍이 간다.


그런면에서 그 의사소통 결정 시스템을 잘 구축한 마블스튜디오의 사례가 눈부시다. 마블의 색깔을 통일성 있게, 퀄리티를 평준화하기 위해 감독의 창조성을 인정하면서도 제작사가 깔끔하게 개입한 사례.(앤드맨의 에드가 라이트 하차 사건 빼고)


워크래프트를 거대 자본 없이 만들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던칸 존스가 어떤 이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자기의 영화 세계를 펼쳤다면 어땠을까.


이런 대기업 같은 문제들이라니. 영화를 보고 나오니 문득 그런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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