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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TR Jun 20. 2016

우리는 아주 조금씩 미쳐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세상이 그렇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개념조차 모호하고, 우리 대다수는 그 경계 즈음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다.


"저 사람은 좀 이상해."

라고 단정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이상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이지 못할뿐. 남들의 눈에는 어디인가 이상하거나 나사가 빠져있는 사람들이다.



우울증이나 망상 같은 정신병리학적으로 분류되는 어떤 증상 뿐만 아니다.


어딘가에 중독되어 있고, 지나치게 집착하며, 강박적으로 밀어붙인다. 새벽녁 선 잠에서 깬 다음 잠에 들지 않는다. 불안하고 불안하다. 어떤 트라우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꺼려진다. 요동치던 감정이 어느새 느껴지지 않는다. 기계처럼.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또 어딘가에 의존한다.


엄격하게 봤을 때, '정상'의 범주에 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사회가 만들어둔 정상이란 테두리 안에 억지로 자신을 구겨넣고 '정상인'처럼 자신을 꾸며놓았을 뿐이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담았다. 우울증과 망상증에 시달려 약물에 의존해야만 하는 남녀 주인공.


"난 너보다 덜 미쳐서 다행이다"라는 남자의 대사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보다 비정상적이고 부적응자들을 보며 신경질적인 불안을 잠재우고 있는지 모른다.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별 것 없다. '방아쇠'가 있었느냐의 차이일뿐, 우리는 언제나 미칠 준비가 되어있다. 실질적으로 같은 영역에서 조금 더 나아간 차이이다. 두 남녀가 얻은 상처는 종류와 형태에 상관없이 우리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것들이다.



로맨스 영화의 껍질을 한 이 영화는 결국 비정상의 인정을 이야기한다.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나의 트라우마, 내가 약간 미쳤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이 정신과 상담 같이 까다로운 과정을 영화 속에서 따뜻하게 담아냈다. 우리가 모두 약간씩 미쳐있다는 사실과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극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린다.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다.

가만히 내 안의 심연을 바라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이상한지, 내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내 안의 우울과 불안과 히스테리의 얼굴들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쓰고 있는지. 정상인 코스프레에 지쳤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5점 만점의 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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