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칭 포 슈가맨>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잡지에서다. 매주 사보던 영화잡지. 이미 그때부터 예기치 않게 스포(?)를 당했고, 스포를 당한 이상으로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봐야 할 목록에 올려다 놓고,
3년이 지났다. 영화잡지를 살 때의 난, 대학 4학년이었고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른 채 조금씩 발로 툭툭 건드려보고 있던 때였다. 뭐, 거창한 꿈도 없었고 흘러가던 대로 흘러간다면 뭐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인드였던 것 같다.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난, 이제 대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었고, 생활패턴도 성격도 조금은 바뀌었다. 내가 생각했던 부분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런 생각에 휩싸일 때면 항상 결론은 하나였다.
이게 인생이지.
나답지 않게 서론이 길었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의 내용은 바로 우리의 그런 인생을 비치고 있다. 우리의 영혼을.
서칭 포 슈가맨.
영화는 로드리게즈라는 아티스트의 여정을 따라간다. 사실 아티스트의 여정이라기보다 그의 삶을 보여주는 식이다. 훌륭한 앨범을 만들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카메라 앵글은 마치 추리 영화라도 찍는 듯 이리저리 관객을 몰고 간다.
미국에서는 망했지만 남아공에서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은 후 다큐멘터리는 이제 영화가 된다. 그의 팬들이 그를 찾기 위해 쏟은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그를 찾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앨범 서평에 그를 찾아달라는 메시지를 싣고, 심지어 노래 가사에서 단서를 찾아다녀보지 않은 곳,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신상 때문에, 그는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있었고 팬들은 그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그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로드리게즈가 30년 전, 만들었던 앨범은 30년의 세월을 지나, 그리고 남아공의 팬들이 그를 쫒은 지 3년의 세월을 지나 그 두 가지 세계가 비로소 만나게 된다.
사실 영화였다면 역대급 스포가 될 수 있는 '죽을 줄 알았던 가수가 알고 보니 살아있었다'라는 팩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화 홍보 시놉시스에도 그렇게 쓰여있을 정도니까.
진짜 중요한 건 이제 시작이다. 남아공에서 큰 인기를 끌던 30년의 시간 동안, 로드리게즈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냐는 것이다.
영화의 말미, 낡은 벽돌집의 작은 창을 오랫동안 비추는 카메라. 가만 보니 창 안에서 어떤 사내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고 있다. 그가 누군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 뒤, 천천히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사내, 바로 로드리게즈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오랫동안 비춘다.
인터뷰를 앞둔 그의 모습이 흥미롭다.
"이건 편안하게 해야 해요. 잠깐, 질문이 뭐라고 했죠?"
잔뜩 긴장한 듯 연신 물을 들이켜는 로드리게즈.
인터뷰가 시작된다. 그가 남아공에서 인기가 있었던 걸 알았는지,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그 30년의 시간 동안 뭘 했는지.
"단순노동을 했어요. 뭐, 철거라든지 집을 짓는 거라든지 그런 거죠."
아마도 디렉터는 이 순간, 그의 30년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규정하고 싶었을 거다. 슈퍼스타가 돼서 이룰 수 있는 모든 부와 명예 대신 고작 단순노동이라니.
그 일이 즐거웠냐고 묻는다. 로드리게즈는 뜻밖의 답을 한다.
"그럼요.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일이잖아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냥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 한 말이겠니 그랬다. 하지만 그는 실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었고, 그의 진의는 이제까지 했던 그의 행동들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에 대해 한 증언 속에 있었다.
노동자의 편에 섰다는 것만으로 명예를 얻고 역사 속에서 인정받은 셀레브리티들이 많다. 로드리게즈는, 그 자신이 노동자였다.
미국 내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디트로이트의 수많은 아프리칸즈, 그리고 멕시칸. 그는 그들과 함께 자라며 생활하며 그의 노래에 이념, 아니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난 수많은 무대에 섰어.
그 무대 앞에서 사람들을 보니, 한 가지를 깨닫게 되더라.
우리는 모두 같다는 걸
그가 인종차별 정책에 억압받던 남아공에서 인기를 끌게 된 건 필연이었을까. 그가 실패한 음악가라는 이름에도 감사하며, 하루 품삯 노동을 고귀하게 여긴 건 가식이 아니었나.
가식이 아니었다. 그는 진짜였다.
그의 평생이 그것을 증명했다.
영화의 마지막, 그를 잘 아는 동료의 증언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그는 우리 영혼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남아공에서 그를 정식으로 초대한 후, 그는 말 그대로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어딜 가든 환영받았고, 투어는 성공리에 끝났다. 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왔다. 로드리게즈의 딸이 한 표현에 따르자면,
마차에서 호박으로 변한 순간
마치 명예와 부가 자신에게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듯. 그는 다시 디트로이트에 돌아와,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그 세계에서 다시 짐을 옮기고 폐기물을 치우고 집을 지으며 노동자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노동을 고귀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건 로드리게즈가 음악을 통해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던 사실이었다.
높은 자리의 정치인이든, 쓰레기를 줍는 노숙자이든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얼굴색이 하얗든 검든
사람은 다 똑같다는 사실.
그가 음악을 통해 유명해졌다고 해서 다른 삶을 살지 않은 건, 이 삶이 저 삶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 모든 삶은 고귀하다는 걸 그는 알리고 싶었다.
원래 사람은 몸을 쓰며 생존해왔다. 노동의 가치를, 그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몸은 힘들지만, 그것은 정직하다. 조금 더 편해지려고 마음먹는 순간, 욕심이 생겨나고 그 욕심이 지금 이 세계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편하다는 건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부를 얻을수록, 누군가는 착취당한다. 마치 로드리게즈가 남아공에서 수많은 음반을 팔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수익은 0원, 모든 돈이 악덕 음반사의 손에 들어간처럼.
로드리게즈는 그 모든 시스템을 벗고, 인간 본래의 삶을 살고자 했다.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그는 그런 면에서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자신의 메시지를 음악을 담고, 그 메시지를 실천하는 예술가. 그리고, 그의 삶은 우리 영혼이 조금은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그 소박한 진심과 사람을 향한 애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드리게즈.
그는 지금도 디트로이트의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세계에 사는 그 간극에 조금의 후회도 있고,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어떤 무언가가 로드리게즈가 살았던 30년과 극명히 대비되면서,
난 내가 추구해야 하는 영혼이 어디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