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이드 스쿼드 프리뷰
히어로물은 원래 흥행보증수표가 아니였다. 근육질의 액션스타가 나와서 총을 쏘며 악당을 해치우는 것까지는 되지만, 가면을 쓰고 영웅이 되는 스토리에는 촌스럽고 유치하다는 인상을 줬던 것이
딱 2000년대 초까지다.
그 이후로부터 영웅물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왔다. 소재 고갈이라던 헐리우드에 마치 샘솟는 오아시스가 된 마냥.
그게 가능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어떤 영웅이라고 촌스럽지 않게, 세련되게 CG로 포장해줄 수 있는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각본. 캐릭터를 코믹스에서 영화화 버전으로 최적화해 이식에 성공한 스토리에 있다.
거의 최초로 샘레이미의 오리지널 스파이너맨 영화가 그랬고, 마블의 아이언맨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킥애스나 핼보이 최근에 나온 데드풀, 크로니클 등 비교적 저예산으로도 참신한 연출과 각본으로 사랑받은 영화들도 등장했다.
그리고 여기 히어로의 시조새이자 아메바인 슈퍼맨과 배트맨의 DC가 있다. 두 히어로 모두 이미 코믹스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과거가 있다. 영웅물이 유치하게 여겨졌던 그 시절에 - 거의 유일하게 블록버스터급 흥행에 성공한, 한마디로 잘나가던 형님들. 시대의 아이콘들.
이런 DC의 무비 유니버스가 심상치가 않다. 마블의 천문학적인 성공에 고취돼 기획을 시작했을 때부터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였다. 여러 영화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는다는 건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별 작품의 작품성과 유니버스와의 연결고리 사이에 평형을 맞춰야 한다. 자칫 하다가는 영화가 다른 영화의 예고편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아예 영화적인 재미를 깍아먹을 수도 있다.
마블은 마블 자체 스튜디오를 거느리고 있고 이 작업을 최대한 통일성 있게 끌고 갔다. DC는 어떨까. 영화 제작은 워너브라더스가 맡고 있다. 모회사인 타임워너가 DC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DC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고전 슈퍼맨 시리즈부터 팀버튼의 배트맨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모두 워너브라더스가 제작했다. 모두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영화들. 그런데 왜 지금 배댓슈 - 수어사이드 스쿼드 - 저스티스리그로 이어지는 DC 무비 유니버스가 걱정될까.
이미 뚜껑을 연 배댓슈와 이제 뚜껑을 열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아하니 그렇다. 배댓슈 때 그렇게 감독을 욕했더랬다. 그때까지는 확실히 감독의 연출 능력에 대한 의심이었다. 그런데 수어사이드 스쿼드에도 똑같은 장면이 그려질거라니. 연출을 무려 '퓨리'를 감독했던 데이비드 에이어가 맡았는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감독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마블도 연출자의 독립적인 크리에이티브와 스튜디오의 입장이 엄청나게 부딪힌다. 여기서 무엇보다 가장 우선인 것은 스튜디오의 입장이며 실제로 이 문제가 몇차례 공식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아주 부정적으로 말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에드가 라이트의 '앤트맨' 감독 하차도 그 연장선 상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잡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블 영화를 믿고 볼 수 있는 것은 영화가 항상 평타 이상을 치기 때문이다. 결국 마블 영화 세계관을 지배하는 마블 스튜디오가 옳았던 것이다. 그들이 고수한 입장과 방향이 관객이 바라는 것과 일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DC는 제대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배댓슈를 보면서 "과연 편집을 제대로 하긴 한걸까?"라는 감상이 떠오른다면 감독의 크리에이티브와 스튜디오가 부딪히는 흔적을 본 것이나 다름 없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그렇다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걸 보니 DC는 그 중재를 통해 영화 퀄리티를 최고로 뽑아내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가만 보면 DC는 비대한 대기업, 마블은 가벼운 스타트업 같다. 마블이 기업의 가치 아래 구성원들의 크리에이티브가 최대로 발휘되도록 장려한다면 DC는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어떤 수익분기점을 목표로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고 간섭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건 물론이다.
DC에게 지금 필요한건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배트맨을 맡겼을때 어떻게 제작을 지원했는지 다시 상기해보자. 어떻게 그런 명작이 나왔을까. 서둘러 지금 마블이 이룩해놓은 유니버스를 단번에 따라잡으려고 하다보니 결국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틀 뒤면 개봉이다. 언론 시사에서 나오는 평들이 심상치가 않다. 배댓슈의 악몽이 재현될 것인가. 연출 기술도 갖춰지고, 이미 검증된 스토리와 캐릭터. 특히 할리퀸은 개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인데. 이렇게 다 차려놓은 밥상 위에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면 위에 열거한 문제가 백퍼센트다. 어떤 명감독이 오더라도 제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환경.
제발 내 예측이 틀렸기를 바라며,
앞으로 나도 DC영화를 기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