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아침 해가 밝아오는 게 이상했다.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온다. 때가 되면 뭐라도 좀 먹어야 하고, 먹은 것이 없는데도 화장실은 가야 하고, 잠을 자야 하다니…… 좀 괜찮아질 때까지, 내 마음이 좀 나아질 때까지, 배도 안 고프고 화장실도 안 갈 수는 없는 걸까. 어떻게 엄마하나 없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똑같을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마냥 흘러가는 시간들이 야속했다. 그나마 친정 식구들과 함께일 때는 위안을 받았다. 함께한 추억이 있고 기억할 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연대감 때문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있을 수 있는 만큼 더 오래 있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아침이 언제나 찾아오듯 나의 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돌아온 미국에서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무기력감과 괴로움이 나를 맞이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게 위안이 되어주질 못했다. 그 감정들은 곧 아픔과 분노로 바뀌어, 종잇장 찢기듯 마음이 한 장씩 갈기갈기 찢기는 듯 아파왔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이런 말이었구나. 왜 자만했을까. 왜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 여겼을까.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원망할 사람도 분노할 대상도 없는 완벽한 이 상황이 한스러워 누구라도 붙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왜.
왜.
왜.
왜 우리 엄마냐고.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냐고. 준비할 시간이라도 좀 주지.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데려갈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이곳에서도 시간은 지체 없이 흘러갔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른 체 나는 분노했다. 종종 엄마가 앉아있던 소파에 몸을 던져두고선, 엄마의 흔적을 좇았다. 예전에는 미소를 머금게 했던 엄마의 자취들이 이제는 오열의 매개체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때 왜 난 매번 미래를 기약했을까. 아. 왜 진작 몰랐을까. 행복은 찰나와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그것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받기만 했던 사랑을 돌려주지도 못한 채 맞이한 이별이라 분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내 분노의 대상은 언제나 남편이었다. 남편 때문에 온 미국행이니까. 조금 더 한국에 있고 싶었는데, 첫째를 위해서 돌아와 달라던 남편이니까. 그렇게 분노의 화살은 남편에게 향했고, 남편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나를 남편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받아주었다. 어느 날부터는 나의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밤이면 화가 들끓고 아침이 오면 체념한 듯, 모든 것을 달관한 듯 고요해졌다. 그맘때쯤 남편은 밤이면 침묵하고 아침이면 조심스레 다가와 내 얼굴을 살폈다. 지금은 하이드인지, 지킬인지 세세히 봐야 한다며 요리조리 돌려보며 안아주곤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밤은 찾아왔고 나의 분노는 번번이 터져 나왔다. 터져 오른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아 새벽 네다섯 시쯤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가끔씩 엄마가 꿈에 나왔다. 꿈에서조차 엄마는 손에 쥐어진 것들을 내게 챙겨주셨다. 어쩜 꿈에서 조차 베풀어줄까.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이 피폐해졌갔다. 나의 참을성은 바닥으로 떨어져, 아이들의 작은 실수나 칭얼거림에도 불같이 화가 났다. 아이들은 우는 엄마를 달래느라, 화가 난 엄마를 무서워하느라 예민해졌고, 울타리가 되려고 노력하던 남편마저 앙상해져 갔다. 엄마가 싫어하시겠구나. 이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많은 걸 놓쳐가는 날 보면 엄마가 많이 속상하시겠구나.
“속상하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봐, 진아.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것들 말고. 혼자. 혼자만의 속 깊은 이야기들…… 그런 걸 써 내려가면 정리가 되고 곧, 마음이 조금씩 후련해지더라.”
20대, 여전히 감수성 풍성하게 터져 올라오던 날 달래주며 엄마가 해 주신 이야기였다. 그렇게 20살이 지나서도 종종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나는, 불현듯 엄마의 말이 떠올라 그날부터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읽거나,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나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