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사진

외로움을 이겨내던 순간들

by Lulina

자신의 성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였던 성별. 다행히도 나는 나의 생물학적인 성별인 ’ 여성‘을 좋아한다. 엄마가 어릴 적 사주셨던 책들 중에 인체에 관한 백과사전이 있었는데, 책이 찢어져 뜯길 때까지 보고 또 봤었다. 그 책에서 가장 신기했던 그림은 여성의 몸 안에 아기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신비롭던지, 내 몸 안에서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매력적이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나의 성별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런 내가 자라 어느덧 저출산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난 아이를 하나가 아닌 무려 셋이나 가지고 싶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동생이 둘이나 있던 시끌벅적한 친정집이 정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 후, 혼자 몰래 임신을 계획했다. 일 년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와 다소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라, 아이 셋을 꿈꾸었던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와 반대로 장거리 연애가 아쉬웠던 남편은 신혼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 했다. 미안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나의 철저한 ‘계략’ 덕에 우리는 한 달 만에 아이를 가졌다.



임신 후 내 몸은 점점 백과사전에서 보던 D형을 닮아가고 있었다. 인생은 내게 환상을 품게 해 준 백과사전과 참 많이 달랐다. 아이가 커질수록 몸은 힘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일단 잠자는 게 불편해졌다. 몸이 무거워 어떤 자세로 누워도 불편해졌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수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져 갔다. 살은 터지기 시작했으며, 체력은 급격히 떨어져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감을 느꼈다. 내가 봤던 책에는 없던 이야기들. 그런 내 몸의 변화와 함께 미국에서의 삶이라는 환경적인 변화는 나를 혼란스럽고 외롭게 만들었다. 지인이 없던 미국에서의 삶. 자동차가 없으면 활동반경이 좁아지던 삶. 아파트만 나가면 마주치던 노숙자들.(그들이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러웠다.) 너무나 따갑던 텍사스의 날씨. 그렇게 내 삶은 주거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하루의 일과 역시 단순해졌다. 그렇게나 달콤하던 끝을 모를 휴가는 지루해졌고, 여유롭게 음미하던 오후 세시는 남편만을 한없이 기다리는 외로움의 시간이 되었다.


‘무얼 하며 시간을 채워갈까.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삶이라니…… 이벤트를 만들자. 즐거움을 찾아가자. 무언가 이 작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렇게 나는 목요일마다 버겁지만 환상 가득한 D형 몸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처음 찍는 사진들. 삼각대를 펴고 사진기 앞에서 쭈뼛거리며 포즈를 취하자니 어찌나 민망하던지, 민망함들이 입술에서라도 사라지길 바라듯 끊임없이 뱃속 아이에게 말을 걸어댔다. 혼자가 익숙해져 가던 내게 조금은 덜 외로웠고, 위안이 되던 순간들이었다. 포즈가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질 때쯤 우리는 제법 친해져 있었다. 뱃속의 그녀는 나의 말벗이었고,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고, 많은 시간과 사건들을 공유하는 소중함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 초기 미국생활은 더 다이내믹하고 다양함으로 물들었겠지만, 그녀와 함께 한 순간들도 내게 의미 있던 순간들이었다. 남편과 아이 덕분에 나는 나의 환상을 마주하지 않았는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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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