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
나에게도 남들처럼 파란만장한 출산 스토리가 있다. 나의 또 다른 환상인 자연분만은 역아인 첫째로 인해 산산이 무너졌다. 갑자기 터진 양수에 진통을 1도 못 느낀 나는, 아이가 역아가 아니었다면 자연분만에 성공했으리라. 수술로 아이를 만난 나는 남들이 겪는 산통 대신, 출산 후 30일 동안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신세를 졌었다. 그 삼십일 동안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몸무게가 10kg나 빠지며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한국에서의 출산이었다면 달랐을까. 미국에 온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행인 것은 한국에서 엄마가 와 계셨다는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나의 엄마. 이 낯선 공간에 엄마가 살며시 스며들어, 일순간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그녀의 딸이어서……. 그렇게 나는 안정을 찾았다. 엄마는 산후관리사 수업을 이수하시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셨다. 젖몸살이 올까 봐 마사지도 열심히 배워오셨는데, 정작 나는 젖몸살은커녕 복통에 쓰러져 있었다. 첫 손주에 대한 마음보다야 첫 딸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겠지. 엄마는 가슴을 매일 쓸어내리며 딸을 지켜보느라 애만 태우셨다. 속상한 엄마 얼굴 사이사이로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쏟아져 내렸지만, 무력한 나는 따뜻한 엄마이기보다 어리광 피우고픈 딸이 익숙했다.
한 달이 흐르고 몸이 나아진 나는 베테랑 엄마에게서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었다. 다가올 고생할 나날들이 안타까웠던 엄마는 아이를 내게 잘 맡기지 않으셨고 아이는 점점 할미 손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태어난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효도는 다 했으니, 니 욕심으로 키우지 말아라. “
잘 키우라며 아이를 다독이는 손등에서 엄마의 세월이 묻어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엄마의 하루가 지나가는 게 가슴 아팠다. 엄마의 말씀은 나에게 각인되어, 아이를 마주하는 순간마다 다짐하게 만들었다. 존재만으로 감사하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