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우주론과 그 탄생에 얽힌 이야기
여러분들 중,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빅뱅 이론"이라는 시트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회 방송이 시작할 때마다 깔리는 노래는 빅뱅이론을 다음과 같이 한 줄로 설명한다.
이게 빅뱅 우주론의 전부다. 말 그대로, "아주 뜨거운, 고밀도의 상태였던 우리 우주는 약 140억 년 전,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팽창하고 있는 현재 우주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는 점점 작아질 것이고 충분히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는 아주 작은 공간에 에너지가 밀집된 고온 상태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전부였다면 아마도 빅뱅 이론은 피블스가 말한 '공허한 추측'에 불과했을 것이다. 빅뱅 이론이 진정한 가치는, "충분히 오랜 시간이 얼마나 오랜 과거를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때 우주의 에너지 밀도는 얼마였으며 온도는 몇 도였는지"에 대한 답 (맞는지 틀리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을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더 나아가 현재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에 있는 원소의 기원을 설명하고 나중에 얘기할 우주 배경 복사를 예측하였다는 점이다.
1930년대, 우리 은하 말고도 다른 은하들이 있으며, 그 은하들이 붙박이로 붙어 있는 공간 자체가 팽창함에 따라,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비례하는 속도를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이 확고한 사실로 자리 잡게 되자.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1946년, 러시아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는 프리드만 방정식이 기술하는 동적인 우주에, 우주의 팽창 혹은 수축과 무관한 공변 좌표상에서 물질이 균일-등방 하게 들어차 있는, "균일-등방 우주 원리"를 적용하여, 우주가 유한한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고온, 고밀도 상태로 생겨나 팽창을 시작하였다는, 후에 빅뱅 우주론 (Big Bang Cosmology)이라고 불리게 되는 시나리오를 제안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빅뱅 이론에서 말하는 팽창은 폭탄이 터진다거나 별이 폭발할때 일어나는 팽창 (팽창이 시작된 중심이 있는 팽창)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빅뱅 이론에서의 팽창은, 이전 글 '팽창하는 우주'에서 말한 대로 공간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며 팽창의 중심이 없다. 초기 우주의 고온, 고밀도 상태의 뜨거운 물질들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팽창하는 우주 안에서 점차 식어가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모습의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빅뱅 이론의 주장이다. 한편 가모프의 우주론이 나온 뒤 2년이 지난, 1948년 헤르만 본디, 토마스 골드, 그리고 프레드 호일 세 사람은 거의 독립적으로 또 다른 시나리오를 제안하였다. 정상 우주론 (Steady-State Cosmology)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제안한 우주론은 가모프의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팽창하는 동적인 우주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공변 좌표계상에서 균일-등방 한 물질 분포를 가지는 우주에서 더 나아가 관측되는 물질 밀도 분포가 시간적으로도 변하지 않는 우주 (공간적 균일-등방에 시간적인 균일성까지 더한 '완벽한 우주 원리'이다)를 가정하였다. 그래서 이름이 '정적인 (한결같은) 상태'를 가정하는 정상 우주론이다. 따라서 정상 우주론이 가정하는 우주 안에서는 팽창에 의해 감소하는 에너지 밀도를 보충하여 항상 같은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물질이 끊임없이 생겨나야 한다. 아래그림은 가모프의 빅뱅 우주론과 본디-골드-호일의 정상 우주론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정상 우주론에서는 우주의 물질밀도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상수이다. 즉 프리드만 방정식 (수식(8)과 (9))의 우변의 값은 상수가 된다. 그렇게 되면 방정식이 굉장히 간단해 지고 우주의 크기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허블상수 하나 만으로 정해진다 (빅뱅 우주론에 '빅뱅'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정상 우주론은 이미 현대 천문학에서 더이상 쓰이지 않는 모형이므로 이에 관한 수학적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정상 우주론은 파라미터가 하나인 단순한 모델이라서 관측과 비교를 통한 해석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속 관측과의 비교를 통해 그 불일치가 금방 드러나면서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1949년 3월 28일 프레드 호일은 BBC 방송에 출연하여 정상 우주론에 대한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대폭발 한 번으로 우주 안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났다는 이론도 있다지만 자신은 그 이론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양자역학 만들어낸 20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 중의 하나인 폴 디랙의 학생이었던 프레드 호일은, 헬륨보다 무거운 금속 원소들이 항성 내부와 초신성에서의 핵융합으로 생겨나는 과정을 밝혀낸 천문학자이다. 1920년대 이미 별의 에너지원이 중심의 핵융합 (가벼운 원자들이 충돌하면서 무거운 원소로 합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질량차이가 아인슈타인의 E=mc^2에 의해 에너지로 변환되는 물리적 과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던 상태였으므로 우주에 있는 원소들은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와 헬륨으로부터 시작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따라서 우주론은 우주 안에 있는 수소와 헬륨의 형성 과정과 성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항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합성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였던 호일이 평생을 바쳐 주장했던, 고밀도의 뜨거운 우주를 고려하지 않는 정상 우주론의 틀 안에서는 공간의 팽창에 맞추어 끊임없이 생성되는 수소로는 고온 고밀도의 초기 우주에서 핵융합을 통해서 헬륨을 만들어 낼 방법이 없었고 (항성 안에서 헬륨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충분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물질이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은하들의 개수는 관측되는 은하들의 개수 밀도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온 고밀도 환경에서 우주가 식으며 내는 우주 배경 복사가 확인이 되면서, 정상 우주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 호일이 약간은 조롱 섞인 "대폭발 (Big Bang)"이라는 말을 써가며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 했던, 가모프의 우주론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이론이 되었고 아이러닉 하게도 호일이 붙여준 "빅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빅뱅 우주론"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빅뱅 우주론을 만들어낸 조지 가모프는 시간에 따라 팽창 혹은 수축하는 우주를 기술하는 프리드만 방정식을 유도한 알렉산더 프리드만의 학생이었다. 조지 가모프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재능이 많은 과학자였는데,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도 뛰어나 후대 유명 과학자들에게 과학자의 꿈을 심어준 대중과학 교양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필자도 학창 시절 그의 책 '미스터 톰킨스 시리즈'와 '1,2,3 그리고 무한'을 읽으며 자랐다). 가모프가 그의 학생 랠프 앨퍼의 박사과정 학위 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발표한 일련의 초기우주의 핵합성에 관한 논문들이 빅뱅 이론의 기반이 되었다.
시간을 돌려 무한히 먼 과거로 간다면 우주는 아주 작은 크기를 가진 고온의 불덩어리와 같은 상태였을 것이고 그 온도는 한계가 없었을 것이다 (우주는 양자 역학이 정의하는 플랑크 스케일보다 더 작은 상태로는 존재할 수 없으니 사실 우주 온도의 상한은 있다). 더 먼 과거로 갈수록, 우주가 더 작아질수록 온도는 한 없이 계속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뜨거운 우주에서는 입자들이 운동에너지가 커서 서로 충돌하는 일이 빈번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달라붙어 무거운 입자를 만들 수가 있다 (별에서 일어나는 핵합성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온도가 어느 정도 이하로 떨어지면 입자들은 더 이상 활발히 충돌하지 못하고 핵합성이 일어나는 빈도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문제는 불덩어리와 같던 우주가 식는 과정에서 어느 온도에서 원소합성을 멈추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입자들의 질량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E=mc^2) 그 에너지에 해당하는 온도를 유추할 수 있다 (E=mc^2=kT, 여기서 k 는 볼츠만 상수이다). 예를 들어 전자의 질량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약 60억 도에 해당하며, 전자보다 1800배 무거운 양성자, 중성자의 질량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약 11조 도가 된다. 현재 알려진 물질의 기본 단위인 쿼크들이 모여 원자핵을 이루는 입자인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고 또 다른 기본 입자인 전자들은 광자와 광자가 만나 소멸하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표준 이론을 받아들이면, 우주가 11조 도이상으로 아주 뜨거웠을 때 큰 운동 에너지를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던 쿼크들은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양성자, 중성자를 만들 수가 있었을 것이고 광자들은 서로 충돌하여 전자들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입자들이 높은 온도의 우주에서 열평형 상태에 있으면, 동시에 그 반대의 과정도 같은 빈도로 일어난다. 하지만 우주의 온도가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는 쿼크들이 묶여있는 결합 에너지에 해당하는 온도보다 낮아지면, 양성자나 중성자를 다시 그 구성 입자들로 부수기가 어려워 진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운동에너지가 부딪혀 서로를 부술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 따라서 이미 생겨난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부서져 쿼크들로 돌아가는 빈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그때까지 생겨난 양성자, 중성자들 비율 (1:1)은, 온도가 떨어지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굳어진다 (천문학에서는 '얼어붙는다'는 표현을 쓴다). 이제 온도가 11조 도 아래로 떨어진 우주에서는 새로 생겨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없지만, 우주의 온도는 여전히 높아서, 양성자와 중성자는 전자와 중성미자와의 충돌을 통해서 일어나는 약한 상호작용에 따라 서로 변환을 한다 (베타 붕괴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양성자가 중성자가 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우주의 온도가 양성자와 중성자의 질량차이 (중성자가 약간 더 무겁다)를 온도로 환산한 값인 약 10억 도 가까이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양성자가 중성자가 되는데 필요한 (중성자가 약간 더 무겁기 때문에 에너지를 요구한다) 에너지 공급이 원활치 않아, 중성자를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중성자의 개수는 양성자 보다 상대적으로 점점 적어진다. 그러다가 약 10억 도 밑으로 온도가 떨어지는 시점에서 생겨날 때는 1:1이었던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는 약 7:1로 '얼어붙는다'. 이렇게 생겨난 양성자는 수소 원자핵이 되고, 중성자는 양성자와 같이 헬륨 원자핵을 만드는데 쓰인다. 이 모든 일이 우주가 생긴 지 약 3분 안에 일어났으며 (스티븐 와인버그의 '처음 3분간'이라는 책이 다루는 주제가 바로 우주 탄생 후 3분 동안 일어났던 이 물리적 과정들이다) 이렇게 고정된 양성자와 중성자의 성분비는 관측된 우주 안의 수소와 헬륨의 성분비 외에 몇 가지 다른 원소들의 성분비도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아래 그림).
여기서 실제 가모프의 박사과정 학생 랠프 알퍼의 학위 논문 주제였던 초기 우주의 온도에 관한 계산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랠프 알퍼, 조지 가모프, 로버트 허만의 1967년 논문에 나온 계산이다). 그 결과로 여러분들이, 빅뱅이론이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우주 초기의 수소와 헬륨의 핵합성이 일어나기까지 왜 3분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도대체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것들을 알아냈는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까지 소개했던 수식을 바탕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한 계산에 관심이 없으면 건너뛰어도 좋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주는 계속해서 식어간다. 양성자와 중성자 형성이 끝나서 그 성분비가 고정되고 난 후, 온도가 10억 도 아래도 떨어진 우주에 있는 수소 원자핵과 헬륨 원자핵은 전자들과 결합하여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가 되기도 하고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에 붙었던 전자가 떨어지면서 도로 수소 원자핵과 헬륨 원자핵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계속 식어가는 와중에 우주의 온도가 훨씬 더 낮아지게 되면, 수소 원자핵에 전자가 달라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과정에서, 전자를 떼어내는 과정 (에너지를 요구하는 과정이다) 보다 전자가 달라붙는 과정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식어가는 우주 안에 있는 광자들의 평균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 낼 만한 여력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오면, 모든 전자가 모든 수소 원자핵에 달라붙어 수소 원자들을 형성하는 시기가 온다. 그러면 마침내 광자들은 더 이상 우주에 가득 찬 수소원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수소원자에 붙은 전자들을 떼어내느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 없이, 수소 원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원시 불덩어리였던 우주에서 빠져나와 우주 공간을 전파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되는데, 이것이 바로 나중에 얘기할 우주 배경 복사이다.
우주 배경 복사에 관해 소개를 하기 전에, 기왕 불덩어리였던 우주 초기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으니, 식어가는 우주에서 어떤 상황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 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