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하는 우주: 허블-르메트르 법칙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

by astrodiary
hubbleylemaitre.jpg (좌) 에드윈 허블 (우) 조르주 르메트르 (https://abcienciade.wordpress.com/2011/11/22/lemaitre-versus-hubble/)

2018년 10월 26일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안건하나가 상정되었고 78퍼센트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팽창하는 우주를 시사하는 은하들의 거리-적색편이 관계에 붙여진 '허블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바꾸자는 안건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에드윈 허블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변호사가 될 뻔했지만, 천문학으로 인생의 커리어를 바꾼 사람이다. 한 편 조르주 르메트르는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인 동시에 천문학 연구를 하는 천문학자였다. 이 둘은 현대 천문학의 근간인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하였다. 1929년 허블이 발표한 연구결과가 널리 학계의 인정을 받아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발견한 사람은 허블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나, 사실은 그 보다 약 2년 앞선 1927년, 르메트르가 팽창하는 우주모델에서는 은하들의 거리와 적색편이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어야 하며 실제로 이것이 관측사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처음 주장하였다. 하지만, 르메트르의 연구는 허블의 연구에 묻혀 오랜 시간 동안 마땅히 받았어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성향과 가톨릭 신부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연구결과를 천문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저널에 출판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제 천문학계에서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불리는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가 어떻게 발견되었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적색편이 (z)는 관측되는 흡수선이나 방출선의 파장이 실험실에서 잰 파장보다 더 길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플러 효과에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적색편이는 실험실에서 잰 파장과 관측된 파장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수식(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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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원의 관찰자에 대한 상대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아주 작은 경우, 도플러 효과의 원리를 고려하면, 광원의 속도와 적색편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 (z=v/c). 따라서 적색편이 값을 재면 광원이 관측자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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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경 미국 애리조나의 로웰 천문대. 베스토 슬리퍼라는 천문학자는 은하들에서 오는 스펙트럼을 관측하던 도중 은하 안의 별이나 가스 속에 들어 있는 특정 원소의 존재 때문에 생기는 흡수선적색편이를 일으키는 정도가 굉장히 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은하 안의 별들을 관측해서 얻은 스펙트럼에서 보이는 적색편이를 속도로 환산하면 약 시속 20킬로미터 정도인데 반해, 슬리퍼가 관측한 은하들의 적색편이를 속도로 환산하면 평균 시속 570킬로미터 정도였고 희미한 은하들 (즉, 먼 은하들)을 관측할수록 적색편이를 통해 얻어낸 속도는 점점 커졌다. 그 당시 우리 은하 외에 다른 은하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도 논쟁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 은하 안의 별들의 적색편이와는 너무도 다른 커다란 적색편이 값을 가지는 천체들의 존재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결과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OSC_Astro_26_05_HLaw.jpg 은하들의 거리-후퇴속도 관계 https://courses.lumenlearning.com/towson-astronomy/chapter/the-expanding-universe/

슬리퍼의 적색편이 값을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허블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광도 관계를 이용하여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재어, 은하들의 거리와 적색편이 사이에 선형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1929년, 그리고 더 먼 거리의 은하들을 포함하여 1931년에 발표한다 (위의 그림). 하지만 이보다 2년 먼저, 1927년 이론 천문학자였던 르메트르 역시 슬리퍼의 자료와 허블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은하들의 거리과 적색편이 사이에 선형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더 나아가, 그의 팽창 우주론 모형에 따르면, 그것이 팽창하는 우주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주장하였으나 연구결과를 프랑스어로 발표한 저널이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관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그 중요성이 알려져 나중에 (1931년) 비중 있는 천문학 저널에 영문번역을 실을 때에도 연구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전부다 제대로 번역해서 출판하지를 않았다. 이 때문에 허블이 우주의 팽창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허블은 그의 관측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우주팽창과 연결을 짓지는 못했다), 사실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가 우주의 팽창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은 르메트르였다.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는 우주의 팽창과 직결되는 관측인 만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우주 팽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의 물리적 거리공변 거리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집을 비유로 들어 생각해 보자. 여러분들이 집안 거실 소파에 앉아 있고 집안의 모든 가구들은 집안에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다. 그런데 집이 갑자기 두 배, 세 배로 커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내 주변에 있는 가구들이 모두 내게서 멀어질 뿐 아니라 가구와 가구사이의 거리도 멀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은 내가 집안의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안방에 있던지 간에 내 주변의 모든 가구들은 집이 팽창함에 따라 내게서 멀어진다. 이때 가구와 가구 사이의 거리는 늘어나지만 팽창하는 집 전체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는 가구들의 집안에서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부엌의 식탁은 여전히 부엌 안에 있고, 화장실 세면대는 여전히 화장실 안에 있다). 집이 팽창함에 따라 늘어나는 나와 가구들 그리고 가구와 가구들 사이의 거리는 오로지 집이 몇 배나 커졌느냐에 달려있다. 천문학에서는, 이렇게 집 (우주)이 팽창 혹은 수축함에 따라 변하는 나와 가구(은하)들, 그리고 가구들과 가구들 (은하들)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 거리"라고 부른다. 한편, 집의 팽창 혹은 수축정도에 비례해서 같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자의 눈금을 가지고 잰, 집안에서의 정해진 위치에 따라 결정된 붙박이 가구들 (은하들) 사이의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공변거리"라고 부른다. 아래의 격자 그림에서 r은 물리적 거리를, x는 공변거리를 나타낸다. 공간이 팽창을 함에 따라 공변거리를 재는 좌표계도 같이 팽창하므로 공변거리는 공간의 팽창 혹은 수축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양이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는 시간에 따라 공간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양을 나타내는 변수 a(t)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주목하자. 우주의 팽창 혹은 수축과 상관없는 공변 거리를 x라고 하면, 물리적 거리(r)는, 공변 좌표계 상에서의 거리 (공변거리) x에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공변 좌표계의 눈금 간격에 해당하는 a(t)를 곱한 양으로, r=a(t)x이다. 바로 이 변수 a(t)가 우주의 팽창과 수축을 기술하는 프리드만 방정식에 등장하는 미지수이다.

Screenshot 2025-12-27 at 12.46.31 PM.png created by Jyotirmoy Guha (Nuclear and Particle Physics with Cosmology, Volume 2)

물리적 거리과 공변 거리를 이해하고 나면, 아래와 같이 허블-르메트르의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쉽게 유도할 수 있다. 아래의 수식(15)에 있는 (x2-x1)항을, 수식(14)을 이용하여 치환하면, 수식(16)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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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수식 (17)에서 허블 상수는 시간의 함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a(t)가 시간의 함수이므로). 현재 우주의 허블 상수 값은 대략 70 km/s/Mpc 이지만 점점 먼 우주로 갈수록 (적색편이가 증가할수록) 그 값이 변하며 그 변하는 양상은 우주모형에 따라 다르다 (프리드만 방정식을 풀어 얻는 a(t)의 시간에 따른 변화가 우주 에너지 밀도의 우주 임계밀도에 대한 상대적인 비율을 나타내는 오메가 값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앞선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나중에 얘기할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상대적인 성분 비율에 따라 a(t)가 변하는 양상은 미세한 변화를 보인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적색편이가 거의 0인 은하들을 상대로 관측을 했기 때문에 적색편이에 따른 허블 상수 변화를 고려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지만 (말 그대로 상수라 해도 무방했다), 먼 우주에 있는 초신성을 대상으로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조사하려면 적색편이에 따라 변하는 허블상수를 제대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우주 모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일이라서 거리-적색편이 관계는 우주 모형에 들어가는 변수들의 값을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관측 자료이다 (아래그림 참조).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은 바로 먼 우주의 초신성에 대해 이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조사하여 우주의 가속팽창 (관측결과는 가속 팽창을 유발하는 우주상수가 들어간 우주모형을 지지하였다)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돌아갔다.

epn_fig2.jpg 초신성의 거리(y축)-적색편이(x축) 관계 (Riess et al 1998, Perlmutter et al. 1999)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 자체도 중요한 결과이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은하의 거리-적색편이 관계가 우주의 어느 방향의 은하를 대상으로 하던지 똑같이 관측된다는 사실이다. 어느 방향을 보든지 내가 관측하는 천체가 나에게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는 그 천체까지의 거리에 비례한다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 아래의 1차원 우주를 가정한 그림에서 은하들은 관측자로부터 멀어지고 있으며 그 멀어지는 속도는 거리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관측자가 어느 곳이 있던지 상관없이, 모든 곳에서 공간자체가 팽창하는 경우 물리적 거리와 공변거리를 이용한 위의 수식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다. 관측자가 좌표 0 (관측자 O) 와 1 (관측자 O') 의 위치에 있는 경우 모두, 관측자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비례해서 은하들의 후퇴속도는 증가한다. 하지만 어느 뱡향을 보아도 은하들의 후퇴속도가 거리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는 경우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관측자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우주의 중심에서 일어난 폭발로 은하들이 날아가는 경우이다 (아래그림에서 관측자가 좌표 0에 위치한 경우). 차이점은 은하들이 붙박이로 붙어있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것과는 달리, 이 경우는 멈춰있는 공간 안에서 은하들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우주는 중심이 있으며 우리가 그 중심에 있다고 가정하면 현재 관측되는 거리-적색편이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지동설에 의해 태양계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사실 태양계에서 지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확인할 방법은 아직 없다). 따라서 관측자가 어느 곳이 있던지 상관없이,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던지 동일한 거리-적색편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팽창의 중심이 없이 모든 곳에서 공간자체가 팽창하는 우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우주 팽창의 핵심이다.

Screenshot 2025-12-28 at 11.03.50 PM.png created by Jyotirmoy Guha (Nuclear and Particle Physics with Cosmology, Volume 2)

우주는 팽창한다. 이것을 돌려 말하면, 과거의 우주는 지금보다 작았을 것이고 과거로 계속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젠가 우주의 시작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연스러운 의문을 품게 된다. 1931년 르메트르는 아마도 "우주가 아주 밀도가 높은 상태에서 하나의 양자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빅뱅 우주론의 아이디어가 처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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