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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와 분자들의 지문

천체복사의 종류 (3): 방출선과 흡수선

by astrodiary

지금까지 전자기복사흑체복사,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의 천체복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두 가지 천체복사의 공통점은 연속복사 (continuum spectrum)라는 점이다. 즉, 에너지 밀도가 넓은 주파수 영역에 걸쳐 연속적으로 분포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연속복사와는 다른 선복사 (line emission)에 관해 알아보기로 하자. 선복사는 연속복사와는 달리, 굉장히 좁은 주파수 영역에서만 검출되는 빛이다. 게다가 때로는 방출선으로, 때로는 흡수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천체의 분광관측이라 함은 대부분 이 선복사를 관측하고 해석하는 일이며, 양자물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는 빛을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가지는 광자로 해석하기로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천문학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선복사를 원자 또는 분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연속적인 내부 에너지 구조와 광자 사이의 상호변환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결과, 광자와 상호작용하는 원자와 분자들의 에너지에 따른 고유한 주파수를 가지는 빛 (선복사)이 생겨나게 된다. 마치 원자와 분자들의 지문과 같은 이 선복사는 (1) 천체의 거리를 재는데 쓰이기도 하고 (원래 관측되어야 하는 주파수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관측되는지 그 차이를, 적색이동으로 해석하여 거리를 유추한다), (2) 방출선인 경우, 복사가 방출된 곳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물리적, 운동학적 상태를 유추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3) 연속복사가 같이 관측된 경우 연속복사 스펙트럼 상에 보이는 흡수선을 통해, 흡수를 일으키는 (우리와 연속복사를 일으키는 광원사이에 있는) 원자나 분자가 존재하는 곳의 물리적, 운동학적 상태를 유추하는데 쓰인다. 방출선과 흡수선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선복사가 생기는 원인을 제공하는 원자와 분자의 에너지 구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원자와 분자의 에너지 구조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는 이 원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원자들이 모여 있어 복잡한 에너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분자보다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에너지 구조를 가지는 원자를 살펴보기로 하자.


원자는, 중심에 있는 양의 전하를 띠는 원자핵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과 그 원자핵을 껍질처럼 둘러싸고 있는 음의 전하를 띠는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실험을 통해 밝혀진 원자의 크기는 보통 1억 분의 1 센티미터에서 10억 분의 1 센티미터 정도 된다. 역시 실험을 통해 밝혀진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 크기의 1만 분의 일 정도 된다. 원자는 마치 '자전'하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원자핵과 그 원자핵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는 전자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으로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차이점은, 전자들의 자전과 공전의 성질을 결정짓는 값 (각 운동량)은, 행성들의 자전 속도와 공전궤도 값처럼 별다른 제약 없이 연속적인 값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전자들의 자전과 공전 상태 (이제 에너지 상태라고 말해도 되겠다)는 불연속적이다.


분자의 경우, 원자들이 결합구조에 따라 진동과 회전에 따른 에너지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역시 불연속적인 양이다. 원칙적으로 가능한 모든 불연속적인 에너지 상태는 빛으로 변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므로 에너지-광자 변환으로 생겨난 빛도 아무 주파수 값이나 가질 수는 없고, 특정 주파수 주변의 영역에 걸친 값만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빛이 선복사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이다).


kirchoffs_laws_KL.jpg 출처: https://www.e-education.psu.edu/astro801/book/export/html/1549

방출선이 생기는 이유

우리 주변에서 보는 물질들의 밀도 (1g/cm^3, 즉, 1 세제곱 센티미터 안에 약 10의 24승 개의 수소원자들이 들어있다)에 비해 우주 공간의 밀도는 거의 진공 (1 세제곱 센티미터 안에 수소 원자 하나정도의 밀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낮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다루는 공간은 (10의 18승에서 21승 cm 정도에 이르는) 엄청나게 크고, 극히 작은 밀도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개개의 미약한 신호도 큰 공간에 걸쳐 합쳐지면 커다란 신호가 될 수 있기에, 천문학에서는 1 세제곱 센티미터 안에 수소 원자가 100-1000개 정도만 되어도 밀도가 큰 가스 덩어리로 간주한다.


이제 밀도가 제법 큰 가스 덩어리 (위 그림의 맨 오른쪽) 안에 있는 원자들 (거의 대부분이 수소원자들이다)을 생각해 보자. 이 원자들을 이루는 전자들의 궤도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분포를 가지고 있고, 특정 에너지 e1에 해당하는 전자 궤도의 상태 (n1라고 하자)와 특정 에너지 e2에 해당하는 전자 궤도의 상태 (n2라고 하자) 사이에는 늘 천이 (transition)가 일어난다. (n1에서 n2로 천이가 되기도 하고 n2에서 n1으로 천이가 되기도 한다). 높은 에너지에서 낮은 에너지로 천이가 일어날 때 그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빛이 방출되는데, 이를 방출선이라 부른다. 이렇게 높은 에너지에서 낮은 에너지로의 천이가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전자들이 이온화 (원자핵에서 완전히 분리) 되었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높은 에너지 준위로 재결합을 하면 자연스레 낮은 에너지 준위로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보통 별이 새롭게 생겨나는 곳에서 나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이온화를 일으킨다.


둘째. 이온화될 정도의 강력한 에너지가 주변에 없을 경우. 다른 무엇인가가 (원자핵에 속박되어 있는) 전자들의 궤도를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려놓아야 할 것이다. 천문학에서는 이를 여기(勵起)시킨다고 하는데. 전자의 상태를 여기 시키는 대표적인 기작은 다른 입자들과의 충돌이다.


이렇게 이온화 후 재결합이나 충돌에 의한 여기에 의해 나오는 빛은, 각각의 원자마다 전자들의 에너지 분포가 다르기 때문에, 마치 지문과 같은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게 된다.


흡수선이 생기는 이유

흡수선이 생기기 위해서는 반대의 일이 일어나야 한다. 즉 낮은 에너지 준위에서 높은 에너지 준위로의 천이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어디선가 에너지를 빌려와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가스 구름 뒤에 연속 복사를 하는 밝은 광원이 있고 그 광원에서 나온 빛이 가스 구름을 지나는 과정에서, 특정원소의 전자 궤도를 여기 시킬 수 있는 주파수 (에너지는 주파수에 비례한다)에 해당하는 광자를 여기 시키는데 써버리면 된다. 그 결과로 배경광원의 연속 복사 스펙트럼에는 이제 흡수선이 생기게 된다 (위 그림의 중간). 방출선과 마찬가지 이유로 흡수선 역시, 특정 원소마다 지문과도 같은 고유의 주파수를 가진다.


실제 관측되는 선복사는, 그 복사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나 그 주변 물질들에 관한 다양한, 물리적 (예를 들어, 온도와 밀도), 운동학적 (예를 들어, 회전하는지 혹은 무작위적 운동을 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귀중한 관측자료이다. 이제, 약간 지루하지만, 천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천체복사에 관한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다음 주에는 다른 주제로 얘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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