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들이 표본조사 (survey)를 하는 이유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삶을 사는 하루살이의 한 종류도 5분 이상은 산다고 한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30초를 사는 생물은 없었다. 하니, 그냥 '30초 살이 외계인'라고 해두자. 이제, 이 먼 곳에 살고 있는, 수명이 30초 밖에 되지 않는 외계인들 중에 어떤 호기심 많고 똑똑한 한 외계인이 태어나자마자 순간이동으로 지구를 방문하여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처음 보고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간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하며, 얼마나 오래 살다가 죽는지 이해하려고 시도한다고 생각해 보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별의 일생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처한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수명을 약 100년이라고 해보자. 현재 알려진 태양정도의 질량을 가지는 별들의 수명이 약 100억 년이라고 하면 우리 인간이, 별의 일생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30초 살이 외계인'이 인간의 생로병사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즉, 별이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쭈-욱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관측대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짧은 찰나의 인생을 사는 천문학자들과 30초 살이 외계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표본조사를 하는 것이다. 즉, 알고 싶은 집단 전체의 구성원 중 일부를 관찰하여 집단전체의 성질을 유추하는 것이다.
필자가 그 호기심 많은 30초 살이 외계인이라면. 우선 카메라를 들고 지구 여기저기를 다니며 (뭐 그 정도 편의는 봐주기로 하자), 닥치는 대로 사람들이라고 생각되는 대상들을 찍어 저장한 후, 저장된 이미지 자료를 분석해 (30초 안에 가능하다고 해보자), 대상의 크기(신장), 생김새 (팔다리 개수), 가시적 특성(피부색이나 주름상태)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것이다.
이제 이 자료들을 분석하기로 하자. 우선, 사람이라고 하는 대상은 '거의' 모두가 팔 2개와 다리 2 두 개 (외계인에겐 팔다리가 무엇인지 중요하진 않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찍힌 사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팔 2개 다리 2개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것만으로 사진에 찍힌 대상을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상의 크기는 좀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크기가 크고 어떤 사람들은 크기가 작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 만으로는 실제크기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외계인들도 실제 크기를 알고 있는 어떤 대상이 옆에 같이 찍혀 있으면 좋다). 또 가시적 특성도 조금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피부가 탱탱한 반면, 어떤 사람들은 피부가 쭈글쭈글하다 (아기피부와 주름진 피부는 지구인들에게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 외계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특성에 불과하다). 그리고 크기가 작은 사람들 (아기들)과는 달리 크기가 크지만 주름이 있는 사람들(노인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로 눈을 감은채 누워있거나 (숨을 거두었거나) 몸에 이것저것 (주사, 인공호흡기 등등)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발견된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특징들은 (팔다리 개수와, 크기, 피부주름) 피부색과는 크게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무작위로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만든 데이터베이스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관측되는 특성 (150-190 센티미터의 신장과 비교적 주름이 적은 피부)들에 주목을 해 보자. 사람의 일생에서 외형상의 두드러지는 변화 없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때가 20-50대라고 하면, 무작위로 찍은 사진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20-50대의 사람들일 것이고 그 사람들은 150-190 센티미터의 키와 비교적 주름이 없는 피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외계인은 인간들이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나이대의 신체적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상대적으로 뜸하게 보이는, 작고 피부가 탱탱한 사람들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피부가 쭈글쭈글한 사람들은 아마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이제 죽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외계인의 입장에서 어느 쪽이 탄생이고 어느 쪽이 죽음인지는 확실치 않겠지만, 생명체의 가장 큰 특성이 '성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작은 크기를 가지는 피부가 탱탱한 사람들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이 제일 그럴듯한 가정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관측된 자료들의 값이, 인류의 생로병사가 진행됨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을 모델링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이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서 천문학자들은 별의 진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위의 그림은 헤르츠스프룽-러셀 다이어그램 (HR-diagram, 천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도표이다)이다. Y축은 별의 광도(혹은 절대 등급)를 X축은 별의 온도(혹은 색)를 나타낸다. 태양계 주변의 수많은 별을 관측하여, 별의 광도와 온도를 재어 그래프 상에 점을 찍으면 위와 같은 그림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별들은 그래프상에 대각선의 좁은 영역에 분포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별들이 오른쪽 위에 떨어져 분포하고 있다. 많은 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주계열(main sequence)이라고 불리는 이 대각선 영역에서 보낸다. 천문학에서는 이들을 주계열성으로 부른다. 이 주계열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별은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 실제 별들이 어떠한 내부구조의 진화를 통해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물리적 특성을 가지는 영역에 존재하게 되는지 알려면 자세한 물리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만, 일단 많은 별들을 표본조사한 위와 같은 자료가 없었다면 항성진화의 모델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앞의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천문학에서는 항상 자료의 편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편향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자료수집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천문학에서는 점점 대형 서베이 프로젝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불가능했지만,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수의 천체들 (은하, 별)을 관측하고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별과 은하의 수명에 비해, 우리 육체의 삶은 찰나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도 우리의 사유(思惟)는 영겁(永劫)의 시간을 따라 흐른다. 이것이 천문학의 즐거움이자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