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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성 종족의 진화

Hertzsprung-Russell diagram (HR 도표)

by astrodiary

기원이 된 연구를 수행한 두 천문학자 (Ejnar Hertzsprung 와 Henry Norris Russell)의 이름이 붙은 HR도표는 별의 진화과정을 이해하고 이론적 모형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도구로서, 아마도 허블의 이름을 딴, 팽창우주의 증거인 허블도표(Hubble diagram)와 더불어 천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도표일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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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HR도를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이다 (링크를 여기 걸었으니, 심심할 때 한 번 가지고 놀아 보기를 바란다). 광도와 반지름은 모두 태양의 값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위의 그림에 나온 값은 태양 광도의 6.6배, 태양 반지름의 0.51배이다. 별의 온도를 13000도로 하면, 이 별의 오른쪽 HR도 상에서의 위치는 붉은 x모양의 기호가 가리키는 곳이다.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HR도의 축에 대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위 그림의 오른쪽 패널에 나와 있는 HR도의 Y축은 별의 광도이며 로그 스케일로 표현되어 있다. X축은 별의 온도이다. 역시 로그 스케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보통 과학연구에서 볼 수 있는 도표들과 달리 오른쪽으로 갈수록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왼쪽으로 갈수록 증가한다.


원래 HR도의 Y축은 별의 절대등급, X축은 별의 '색깔'이었다. 등급이 로그 스케일에서 결정되는 양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절대 등급이 광도 (절대밝기)로 바로 환산될 수 양 임은 짐작할 수 있을터. 하지만, '색깔'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천문학에서 색깔은 두 개의 다른 파장대의 필터로 관측한 대상의 밝기 (즉 로그 스케일에서 두 개의 등급)의 비 (로그 스케일에서 등급의 차이)를 의미한다. 즉, 가시광선과 적외선 파장대에서 천체를 관측했을 때, 짧은 파장인 가시광에서의 밝기가 상대적으로 긴 파장인 적외선에서의 밝기에 비해 얼마나 더 밝은지 아니면 어두운지를 나타내는 양이다. 등급은 숫자가 늘어날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1등급 별이 6등급 별보다 100배 밝다), 천체의 색깔 (등급의 차이)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갈수록 증가하도록 표시하면, X축의 왼쪽으로 갈수록 (색의 값이 작아질수록) 천체들은 짧은 파장에서 더 밝고 X축의 오른쪽 갈수록 (색이 값이 커질수록) 천체들은 긴 파장에서 더 밝다. 그런데 색깔이 대체 별의 온도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흑체복사를 설명한 글에서 별은 흑체와 거의 비슷하다고 언급을 했다. 따라서 별의 온도는 흑체복사의 스펙트럼을 결정하는데, 온도가 높은 흑체일수록 짧은 파장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다 (흑체복사 스펙트럼에서 노란색의 파장에서 방출되는 에너지의, 붉은색의 파장에서 방출되는 에너지에 대한, 상대적인 값은 온도가 높아질수록 커진다). 즉, 두 파장에서 관측되는 밝기의 비 (로그스케일에서는 등급의 차이)로 결정되는 색깔의 값은 작아진다. 따라서 HR도에서 색깔로 표현된 X축을 온도로 환산할 경우, 색깔이 증가하는 방향 (왼쪽에서 오른쪽)은 온도가 증가하는 방향(오른쪽에서 왼쪽)과 반대이다. 원래의 HR도를 좀 더 관심 있는 물리량인 광도와 온도로 바꾸어서 표현할 경우, 위의 그림과 같은 형태가 된다.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이제 우리는 HR도의 축을 이제 별의 광도온도로 해석할 수 있다.


HR도에 보이는 초록색 사선들은, 같은 크기 (반지름)의 별들이 가질 수 있는 광도와 온도값을 나타낸다. 주어진 반지름에 대해서 별의 광도가 크면 온도도 높고, 반대로 광도가 낮으면 온도도 낮아진다. 같은 광도의 별인 경우 커다란 별은 별의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를 가진다. 흑체복사 함수를 주파수에 대해서 적분해 얻은 광도밀도 값 (온도의 4승에 비례한다)에 구로 가정한 별의 표면적을 곱하여 얻어지는 별의 광도는, 별의 온도의 4승, 별의 반지름의 2승에 비례한다. 따라서 반지름을 주어진 상수값 (태양 반지름)으로 고정하고, 광도와 온도의 관계를 표현하면, HR도 상의 보이는 초록색 선들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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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HR도 상에서 별의 진화경로 (https://namu.wiki). 우: 하늘에서 가장 밝은 25개의 별 (https://apod.nasa.gov/apod/)

20세기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인 항성 진화 모형에 따르면, 별의 질량과 화학 성분이 정해지면, HR도 상에서 별의 일생을 시작하는 (중심에서 핵융합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곳이 결정된다 (좌측그림에 영년 주계열, zero age main sequence, 이라고 불리는 영역). 질량이 큰 별일 수록 온도와 광도가 높다 (HR도의 좌측 상단). 이제 항성 진화 모형을 사용하여 계산을 하면 매시간 별의 HR도 상에서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핵융합에 쓰이는 중심에 있는 수소가 고갈되기 시작하면 별의 내부구조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중심에는 핵융합의 결과로 수소보다 무거운 헬륨이 생기고 바깥층에 있는 수소가 타기 시작하면서, 에너지가 고갈된 중심부는 수축을 하기 시작하고 수소가 타고 있는 바깥층은 서서히 팽창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수소가 연료로 쓰이고 있어서 별의 광도가 크게 변하지는 않은 대신 별의 크기가 늘어나므로 결과적으로 별의 온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HR도 상에서 별들은 우측으로 평행이동을 한다.


그러다가 중심이 수축하여 밀도가 늘어나고 헬륨 핵융합을 시작할 만큼의 온도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별은 이제 HR도 상에서 위로 이동하게 된다 (광도가 증가한다). 이제 중심의 헬륨이 핵융합을 하기 시작하면 별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별은 다시 HR도 상에서 좌측으로 이동한다. HR도 상에서의 자세한 진화 경로는 항성 진화 모형에 따라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중심과 바깥층에서의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시점, 그리고 생성되는 에너지의 양,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별의 구조적인 안정성, 등등의 여부에 따라 별은 HR도 상에서 대략 위의 좌측그림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경로를 따라 진화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HR도 상에서 서로 다른 진화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별들은 실제로 약간씩 다른 색깔 (이제 색깔은 온도를 의미한다)을 가진다. 눈으로 색깔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진을 찍어 보면 위의 오른쪽 그림처럼 약간씩 다른 색을 띠고 있다.


별은 언제 보아도 예쁘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중의 어떤 별들은 곧 수명이 다해 사라질 운명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을 마감할 것인지는, 항성 진화 모형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태어났느냐 (어떤 질량을 가지고 일생을 시작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이렇게 별의 운명은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되니, 별의 탄생과 죽음은 우로보로스에 나타난 꼬리를 물고 있는 뱀과 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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