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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굽는 천문학자의 마인드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성간 발암 물질

by astro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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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바베큐 그릴에서 나오는 연기 (구글이미지) ; 우) 우주의 PAH 입자들 (https://www.astrochem.org/pahdb/iris/)

여름이다. 바베큐의 계절이 돌아왔다. 야외에서 바베큐를 하며 가족들과, 때로는 친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지만, 이와는 별개로 바베큐를 할 때마다, 필자의 머릿속을 한 번씩 맴돌다 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연기이다.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줄여서 PAHs), 한국어로 다환 (polycyclic) 방향족 (aromatic) 탄화수소 (hydrocarbons)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두 개 이상의 벤젠고리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의 총칭이다. 영미권의 천문학자들도 말이 꼬여 한번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니. 필자도 그냥 줄여서 PAHs로 부르기로 하겠다.


PAHs는 주로 유기물의 불완전 연소과정에서 생성되며, 주로 담배연기, 자동차 배기가스, 바베큐를 하며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연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중 일부는 발암성 물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에게 PAHs는 성간 우주먼지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화합물로서 은하 안의 별 생성과정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분자들이다. 그러니, 고기를 굽고 있는 천문학자가 그릴에서 나오는 연기를 바라볼 때 드는 생각은 여느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PAHs 얘기를 해 보겠다.


위의 사진 오른쪽에 있는 것은 발광 성운으로 별이 탄생하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많은 성간물질 중에는 PAHs들도 있다 (어떻게 우주에 PAHs 분자들이 생겨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천문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는 중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여러 종류의 고리모양을 하고 있는 분자들을 천문학자들은 PAHs로 통칭하여 부르고 있다. 그럼 천문학자들은 우주에 PAHs 분자들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행성상 성운 (HR도 상의 오른쪽 위에 주로 분포하는 늙은 적색거성의 이온화된 바깥층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복사로 인해 생겨난다)들을 적외선 스펙트럼으로 관측하던 천문학자들은 알 수 없는 모양의 스펙트럼 (위의 오른쪽 사진 중앙아래에 보이는)를 보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민을 하던 천문학자들은, PAHs 분자의 존재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고 (같은 천문학자이지만 필자는 아직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실험실에서 측정한 PAHs분자들의 스펙트럼을 참조하여 관측된 스펙트럼을 PAHs 분자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모든 천문학자들이 성간 PAHs 분자들의 존재를 믿고 있다.


천문학은 주로 관측된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 천문학에서, 이론적으로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고 먼저 생각을 하고 나서 이를 찾아낸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우주배경복사, 중성수소 방출선, 수냐예프-젤도비치 효과등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겠다). 행성상 성운의 적외선 스펙트럼을 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우주 공간에 바베큐 연기 속에 포함된 것과 똑같은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PAHs로 돌아가서, 천체 선복사에 관한 글에서 설명했듯이 분자들은 결합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구조적 특성을 지니게 되는데, 대표적인 특성은 진동과 회전이다. 특히나 PAHs와 같이 여러 원자가 복잡하게 결합하여 커다란 구조물을 이루는 경우, 외부의 자극에 의해 진동이 발생할 여지가 많고 (지진에 흔들리는 빌딩을 생각해 보자) 약간씩 다른 형태의 진동모드를 (빌딩의 경우, 수직, 상하, 대각선 등등) 야기하는 불연속적인 에너지에 해당하는 빛이 각 진동모드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고유의 주파수에서 방출선으로 나타난다. 크기가 각기 다른 여러 PAHs 분자들에서 나오는 약간씩 다른 주파수의 빛을 합쳐놓으면 위에 보이는 것과 같은 스펙트럼이 나타나는 것이다.


PAHs 분자들이 내는 복사는 여러 가지 쓰임새가 있는데, 별이 형성되고 있는 곳에서 나오는 강한 복사 에너지에 의해 자극된 진동모드들에서 나오는 방출선의 세기를 분석하면, 별 형성기작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복사 에너지의 세기에 관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러한 수많은 별 형성지역을 가지고 있는 은하의 별형성에 관해 중요한 정보 (얼마나 많은 수의 별을 얼마나 빨리 만들어 내는지)를 얻을 수 있다. 필자와 같이 은하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는 PAHs 복사는 유용한 도구이다.

potm2208a.png JWST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은하 NGC628 (credit: ESA/NASA PHANGS-JWST program)

위의 사진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적외선 필터로 찍은, '유령은하'라는 별명을 가진 나선 은하 NGC628이다. 핑크색 점으로 보이는 새로 생기는 별 집단들도 보이지만, 무엇보다 은하 안의 나선팔과 그 사이의 공간에 걸쳐 은빛으로 그물처럼 펼쳐져 있는 구조물들은 마치 달팽이 껍데기에서 보이는 구조를 닮았다. 이것은 바로 우주 먼지 안의 PAHs 분자들이 주변 에너지 (주로 별)에 의해 자극받아 진동하면서 방출하는 빛이다. PAHs 방출선에 예민한 적외선 필터를 사용하여 찍으면 위와 같은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위의 사진이 은하 안의 성간 먼지들을 보여준다면 가시광 영역의 파장으로 찍은 사진은 은하 안의 별들의 분포를 보여준다.

PAHs_galaxy2.png James Webb 과 Hubble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사진 (credit: ESA/NASA PHANGS-JWST team)

위의 사진은 같은 은하를 찍은 것이다. 대각선을 기준으로 좌측상단은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찍은 가시광 이미지이고 우측하단은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으로 찍은 적외선 이미지이다 (앞의 사진에 보이는 은색과의 색깔의 차이는 신경 쓰지 말자. 이미지 처리과정에서 임의로 정한 색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눈은 적외선의 색깔을 인지할 수 없으니까). 가시광과 적외선으로 찍어 겹쳐놓은 이미지는 천문학에서 파장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적외선에서 빛이 나는 그물 같은 구조물 (우주먼지가 방출하는 빛)은 가시광에서는 우주먼지에 가려 보이는 어두운 갈색 선들로 나타난다. 대신 가시광이미지에는 적외선 이미지에서 보이는 우주먼지가 사라진 빈 공간,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우주먼지들을 밀어내고 빛을 내고 있는 별들이 보인다.


천문관측에서 선택한 파장은 관측하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들 중 일부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다파장 관측이 필수적이다. 각각의 파장대에서 나오는 빛은 서로 다른 에너지 원들이 (별, 성간먼지) 각기 다른 물리적 기작을 일으킨 결과이므로, 알고 싶은 천체에 대해, 여러 파장의 필터를 사용하여 관측한 자료들을 모아 각각의 파장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측정하여 스펙트럼 에너지 분포 (spectral energy distribution, SED)를 만들고 나면, 몇가지 필요한 종류의 에너지 원을 조합하여 만든 이론적 모형으로 관측 자료를 모델링 할 수 있다.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런 방법 (SED modeling)으로 천문학자들은 천체들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쓰고 보니 얘기가 좀 길어졌다. 고기를 굽는 와중에 이런 잡생각을 너무 오래 하면 고기가 타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기서 이만 줄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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