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 전파 간섭계가 열어젖힌 행성 형성 연구의 새로운 장
2014년 겨울에 접어들 무렵 필자는 네덜란드에서 박사후 과정 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막 운용을 시작한 세계 최대의 밀리미터 전파 간섭계인 알마 망원경에 관련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매주 회의를 하던 어느 날 회의를 주관하는 리더가 오늘은 회의를 할 수가 없다며 다들 모여 보라고 한 뒤 이메일을 통해 관계자들에게만 공유된 그림 한 장을 보여 주었다. 바로 위의 그림이었다. 이를 본 모두의 입에서는 '와...' 하는 나지막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2003년경 건설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드디어 가동을 시작한 알마 전파 간섭계가 천문학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위의 그림은 HL Tauri라는 별 주위에 생긴, 나중에 행성을 이루게 될 가스와 먼지 입자들이 별 주위로 모여들면서 생겨난, 원시 행성계 원반 안에 있는 먼지 입자들이 내는 빛을 알마 전파 간섭계로 관측하여 얻은 이미지이다. 전파 간섭계는 여기저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놓인 여러 대의 전파 망원경 나온 신호를 연결하여 해상도를 높이는 관측 기법을 활용한 망원경이다 (전파 간섭계의 원리는 "이게 진짜 된다고?"에 나온 내용 참조 바람). 망원경들을 멀리 떨어 뜨려 놓을수록 공간 분해능이 좋아져서 대상의 더 자세한 구조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결과로 얻어진 위의 원시 행성계 원반은 전에는 분해능이 좋지 않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바로 여러 개의 동심원 모양으로 보이는 어둡고 밝은 무늬들이다. 밝은 부분은 먼지 입자들이 모여 빛을 내는 곳이고 어두운 부분은 먼지 입자들이 없는 곳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이와 같은 원시 행성계 원반은 오늘날 여러 별들에서 관측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밝고 어두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먼지 입자들은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분포할 수가 있을까?
천문학에서 우리가 연구하는 거의 모든 대상은 유체이다. 이 유체들이 가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불규칙한 움직임이다.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 가끔 아래와 같은 궤적을 볼 수 있다.
이는 비행기가 유체인 대기를 뚫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기체 주변에 생기는 나선형 소용돌이이다. 이와 비슷하게 원시 행성 원반 주위를 공전하는, 나중에 행성이 될 덩어리 주변에도 이와 같은 소용돌이가 생길 수 있다. 그 결과 덩어리가 지나가는 궤적에 있는 먼지 입자들은 깨끗이 치워 지는 반면 공전하는 덩어리 주변에 생기는 소용돌이는 주위의 먼지 입자들을 가두어 먼지 입자들의 밀도를 높인다. 그렇게 되면 별을 중심으로 한 먼지 입자들의 분포에 동심원 모양으로 명암의 차이가 생기게 되고 먼지 입자들의 내는 빛 역시 동심원 모양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 중의 하나이며 관측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또한 관측된 동심원의 개수가 꼭 행성의 개수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행성이 여러 개의 동심원을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알마 망원경 이전에는 행성 형성에 관한 자세한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세한 동심원 구조를 통해 알아낸 행성 운동 역학, 먼지가 내는 빛을 분석하여 얻은 별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른 원반의 온도 분포, 그리고 이를 통해 유추한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영역 등과 같은 자세한 정보를 알고 나자, 비로소 행성 형성 연구는 탄력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불과 10여 년 전과는 달리, 구체적이고 관측으로 검증이 가능한 행성 형성 시나리오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나리오들을 바탕으로 우리 태양계의 행성들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한 연구도 진척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천문학은 예로부터 관측이 이끌어가는 학문이다. 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게 될 때마다 사람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그 아이디어가 또다시 새로운 관측현상을 예견하고, 또 새로운 관측결과가 이를 확인해 주고, 거기서 또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되고...
어느 순간 우리는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했다고 믿고 있지만, 그 믿음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천문학은 호기심 많은 젊은 과학도들에게 싫증 나지 않는 장난감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