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으로 이어진 반페이지 짜리 논문

한네스 알벤으로부터 시작된 자기유체역학

by astrodiary
MHD.gif 한네스 알벤의 1942년 네이처 논문의 전문

천문학에서 대상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방법 중 가장 유용하고 많이 쓰이는 것은 "유체역학" 방정식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천문학적인 상황"에서, '평균자유거리 (자유롭게 움직이는 기체 분자나 원자, 광자 같은 입자들이 다른 입자와 충돌하기 전까지 움직인 통계적인 평균 거리)'는 대상의 크기에 비해 아주 작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천체를 이루는 수많은 개개의 "입자" (가스나 광자가 될 수도 있고, 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이 될 수도 있겠다)들은 얼마 못 가서 다른 입자들과 충돌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천문학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개수의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유한한 개수의) 입자들로 이루어진 집합을 '연속적인 양'으로 생각하고 유체방정식을 이용하여 성간 가스나 광자, 심지어 별들의 운동을 통계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유체역학 방정식에서 유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정식은, 뉴턴의 운동방정식 F=ma와 기본적으로 같다. 단지 개개의 입자들의 질량 m 대신에, 유체의 밀도 (유체는 개개의 입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연속적인 양이므로 입자 개개의 질량은 의미가 없다)를 사용하는 점만 다를 뿐. 그렇다면 유체의 밀도에 가속도를 곱한 양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좌변의 항은 힘 (F)이 아니라 "힘의 밀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힘의 밀도라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 답부터 얘기하자면 압력의 위치에 따른 변화를 나타내는 pressure gradient (압력 구배도)이다. 압력은 "단위 면적당" 작용하는 힘이다. 따라서 압력이 위치에 따라 변한다면 "단위 거리당" 압력의 변화량을 나타내는 압력 구배도는 "단위 부피당" 힘 (힘의 밀도)을 의미하는 양이된다. 즉 유체는 압력 구배도에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여기에 더해서 유체의 물질 밀도 분포가 만들어내는 자체중력이 유체의 운동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고려하면, 압력 구배도에 유체의 자체 중력이 가하는 힘 (유체밀도에 자체 중력장이 만들어내는 가속도를 곱한 양)을 추가한, 좀 더 복잡한 유체역학 방정식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유체를 움직이는 힘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1942년 스웨덴의 물리학자 한네스 알벤 (Hannes Olof Gösta Alfvén)은 유명한 과학 저널 네이처에 "전자기-유체역학적 파동의 존재"라는 제목으로 "다섯 단락과 일곱 개의 수식"으로 이루어진 반페이지 짜리 논문을 발표하였다 (위의 그림은 알벤의 논문 전체를 보여준다). 이 논문은 오늘날 천문학에서 널리 쓰이는 "자기유체역학"의 시발점이 된 연구로 알벤에게 1970년 노벨물리학상을 안겨 주었다. 이 논문에서 알벤은 보통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는 유체가 아닌, 전도성이 높은 유체 (예들 들면 국소적으로 전하를 띤 이온화된 기체)를 상정하고 이 유체 주변에 자기장이 있는 경우를 고려하였다.


자기장 내에서 움직이는 전도성이 높은 기체는, 자기장의 영향하에 있는 전하의 흐름(전류)과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자기장 안에 놓으면 자기장의 힘을 받아 움직인다는, 고등학교에서 배운 물리법칙을 떠올리면, 자기장안에서 움직이는 전도성이 높은 기체에 작용하는 힘은 압력 구배도와 자체 중력뿐 아니라, 자기장이 가하는 힘까지 포함하게 된다. 여전히 유체는 유체이므로 유체역학 방정식을 따르지만, 자기력의 영향까지 고려한 "자기유체역학" 방정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위의 논문에 나온 다섯 번째 수식의 좌변은 유체 밀도에 가속도를 곱한 양이고, 우변은 이와 균형을 이루는 압력 구배도 (grad p)와 자기장에서 흐르는 전류(i)에 작용하는 힘 (i x B)/c 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장의 뱡향과 유체운동 방향사이의 특정한 (간단한) 관계를 고려하면, 이 유체를 통해 전파해 가는 파동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고 (일곱 번째 수식) 이렇게 얻은 수식에 태양의 물리량을 집어넣으면, 초당 60 센티미터로 전파하는 파동을 추론해 낼 수 있는데 이것이 태양의 흑점이 발생하는 구역이 태양 적도 부근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속도와 대략 비슷하다는 언급을 하면서, 태양의 흑점은 자기유체역학의 결과로 생겨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며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지금 봐도 다루려는 주제의 한계 설정이 명확하며 논지가 확실하고 깔끔한 논문이다.


자신이 어느 주제에 대해서 어디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고 어디서부터 모르는 것인지를 아는 것은 과학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한 미덕중의 하나이다.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해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거나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경우를 지금 와서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몰라서 그랬던 경우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많은 말을 하기보다 되도록 생각을 오래 한 후 정제된 말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사족)

알벤의 논문은 반페이지 짜리의 짧은 논문이지만 이에 영향을 받아 나온 후속 연구들은 페이지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유명한 천문학자 찬드라세카르가 젊은 시절 인도를 출발해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도중에 배 안에서 풀어낸 백색왜성의 한계질량에 관한 2 페이지짜리 논문이 있다 (이 역시 찬드라세카르가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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