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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소(蘇) 간 우주론 경쟁

상향식(bottom-up) 대 하향식(top-down) 구조 형성

by astrodiary

지난번 글에서 잠깐 얘기한 대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의 우주 안에 있는 별, 은하, 은하단과 같은 천체는, 물질 분포의 불균일성에 의해 촉발된 중력불안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1965년, 거의 완벽한 흑체복사인 우주 배경 복사의 존재가 확인되자 물리학자들은, 광자와 입자들이 높은 온도의 플라즈마 가스 (고체, 액체, 기체에 이어 물질의 네 번째 상태로 기체 상태의 물질이 높은 온도에서 이온화되어 전자가 분리된 상태) 상태로 존재하는 초기우주 상태의 물질 분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팽창하는 우주에서 이 물질분포의 요동이 자라나서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의 구조를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질요동이 자라나기 위한 중력불안정을 결정하는 진즈질량 (이 보다 작은 질량의 중력 섭동은 수축하여 천체를 만들지 못한다)은 물질 섭동이 중력불안정을 통해 수축하여 만드는 구조물의 최소 질량이므로 우주초기에서 진즈질량을 아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진즈질량이 태양질량의 10의 6승 배 정도라면 우주 초기에 구상성단 정도 혹은 그 보다 큰 질량을 가지는 구조물들이 중력수축으로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진즈질량이 태양질량의 10의 12승 배 정도라면 우주 초기에 은하보다 훨씬 큰 은하단 정도 규모의 구조물들만이 형성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우주 초기에 처음 생겨난 구조물들이 주로 질량이 큰 은하단 인지 아니면 그 보다 훨씬 작은 은하 들인 지에 따라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의 모습 (은하들의 공간 분포)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 둘 중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우주구조 형성을 이해할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재미있게도 그 당시 냉전 관계에 있었던, 미국과 소련의 물리학자들은 이 두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경쟁을 하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제임스 피블스 (201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소련을 대표하는 선수는 야곱 젤도비치라는 물리학자였다 (둘 다 20세기 물리학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이다). 피블스는 작은 질량의 구조물 (은하)들이 먼저 생겨나서 병합과정을 거쳐 큰 구조물 (은하단)을 형성한다는 상향식 (bottom-up) 구조 형성론을 주장하였고, 젤도비치는 큰 질량의 구조물(은하단)들이 먼저 생겨나고 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분열하면서 (진즈질량은 온도와 밀도에 따라 변하므로 큰 질량의 구조물이 식는 과정에서 진즈질량이 작아져 작은 질량의 구조물들이 생길 수 있다) 작은 구조물(은하)들이 형성된다는 하향식 (top-down) 구조 형성론을 주장하였다.


어떤 것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관측된 많은 은하들의 공간 분포를 통계적으로 정량화하는 것이다. 1960-1970년대에는 이를 뒷받침할 많은 수의 은하 관측이 힘들었지만, 점점 자료가 모이면서 천문학자들은 하향식 구조 형성론 (큰 구조가 먼저 생겨나고 그 안에서 작은 구조들 만들어내는 과정)이 예견하는 은하 분포는 관측된 은하 분포와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가까운 은하단내의 은하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면, 은하들이 중력에 끌려 은하단 중심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은하단이 이미 먼저 형성이 끝난 은하들의 병합 (상향식 구조형성)에 의해 성장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관측된 은하들의 대부분은 은하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훨씬 많은 은하들이 은하단 밖에 분포한다). 은하들이 공간상에 무리 지어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집중도 거리 (clustering length)를 재어보면 관측된 은하들의 집중도 거리가, 하향식 구조 형성론에서 예견하는 것보다 현저히 작다. 즉, 하향식 구조 형성론에 따르면, 은하들은 먼저 생겨난 큰 은하단 안에서 나중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은하들의 공간 집중도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은하단을 따라 커다란 거리에 걸쳐 유지되는 반면, 실제 관측에서 은하들의 공간 집중도가 유지되는 거리는 그 보다 짧다. 또 은하단의 나이가 은하들보다 어리다는 점도 하향식 구조 형성에 불리한 관측 사실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관측적 사실에 기반하여, 오늘날 많은 천문학자들은 상향식 구조 형성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젤도비치가 하향식 구조 형성론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주장한, 비등방 수축 (삼차원 공간에서 세 축 방향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수축이 아닌, 한쪽 방향으로 먼저 수축이 일어나는)이 만들어내는 팬케이크 혹은 필라멘트 모양의 구조물은, 우주 내의 물질 구조의 위상학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현대의 은하 형성 이론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중요한 관측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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