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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생겨난 우주, 그리고 그 속의 우리

Steven Weinberg (1933-2021)

by astrodiary

오늘은 (7/23)은 20세기 물리학의 거인 스티븐 와인버그가 4년 전 세상을 떠난 날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각자 마음속에 좋아하는 스타들을 하나 둘씩은 품고 산다. 물리학에 국한해서 얘기하자면, 일반 대중에게 까지도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내가 열광하던 스타에 대한 느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TV로 보며 자란 세대이다. 따라서 아무리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의 플레이를 보고 그들의 위대함에 관한 얘기를 들어도, 마이클 조던을 떠올릴 때와 같은 정도의 흥분을 느끼기는 힘들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20세기 소립자 물리학의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위대한 물리학자이다. 위대한 물리학자라고 해서 꼭 일반 대중에게 까지 위대한 사람 취급을 받은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위대한 물리학자들 중 몇몇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우리 보통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우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고, 그 소수의 물리학자들이 쓴 책이나 강연과 조우한 어린 학생들 중 어떤 이들은 그것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기도 한다. 하니, 적어도 그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정해준 위대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에게는, 스티븐 와인버그가 1977년에 쓴 그의 첫 대중 과학 교양서 "처음 3분간" (1980년대에 전파과학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번역본)을 읽었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다. 사춘기를 살고 있던 필자에게, 우주의 기원과 현재, 그리고 운명을 얘기하는 그 당시 최고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말 그대로 마블 무비에 나오는 "히어로"였다. 이 책을 시작으로 "시간의 역사"를 비롯한 다른 물리학 책을 읽기 시작한 필자는 결국 우주를 이해하는 천체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니, 필자가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내뱉은 짧은 한숨에는 사람의 죽었을 때 느끼는 단순한 안타까움 이상의 감정이 들어있었다.


그의 책 "처음 3분간"은 필자가 지금 다시 읽어도 유익한 전문적인 지식들이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 지식들 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알 수 있는, 이 책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하나 있다. 이 책에서 스티븐 와인버그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면 할수록,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해야 할 별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즉, 우주는 우리의 존재와 무관하다. 우리가 생겨날 예정이었든 아니든, 우주는 그냥 어쩌다 생겨났고 진화하는 와중에 조건이 맞아 생명체가 생겨났을 뿐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다른 책은,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를 들 수 있겠다. 그 책에서도 인간은 별 다른 큰 의미가 없다. 그저 유전자가 발현하는 대상이고 그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는 전달자 일뿐이다.


이 두 책들이 인간의 존재의미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거나 혹은 나아가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일부의 견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책들이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천동설을 믿던 인류를 세상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어내었듯이, '과학을 함에 있어서, 인간의 주관적인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에 입각해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도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며 항상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도록 충고하지 않았는가.


어릴 적 영웅이었던 한 사람이 사라졌고, 그가 마지막으로 쓴 물리학 교과서를 가지고 언제 기회가 되면 만나서 사인을 받고 싶었던 필자의 소망도 무위로 돌아갔다. 그와 나를 연결해 준 책 "처음 3분간"도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느라 잃어버리고 없다 (새로 살 수도 있지만, 그 책은 더 이상 같은 책이 아니다). 하지만 추억은 남는다. 그래서 오늘 머릿속에서 꺼내 여기에 적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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