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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의 성배 (聖杯)

중원소가 없는 종족-3 항성

by astrodiary
holy_grail.jpg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1989)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과 같이 술을 나누었던 술잔, 즉 성배를 찾아 떠난다. 실제로 성배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잃어버린 가톨릭 유산을 찾으려는 십자군 원정의 주요한 동기였으며, 각종 설화나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이다. 많은 노력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성배'라는 단어 자체가 종종 이루어내거나 가질 수 없는 목표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천문학에서도 성배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있기는 하다. 어느 분야를 연구하느냐에 따라, 어떤 천문학자에게는 외계인이 사는 행성이 성배 일 수도 있고, 블랙홀의 모습 (2019년 실제로 사건의 지평선이 관측되었으니 더 이상은 아닐 수도 있겠다)이 성배일 수도 있겠다. 필자와 같이 은하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성배는 우주가 생겨난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으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별'이다.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처음에 굉장히 뜨거운 상태여서 원자를 이루는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가 분리되어 떨어진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차 우주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여 원자핵을 이루고 더 온도가 내려가면 전자가 원자핵과 결합하여, 드디어 원자라는 것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원자들은 주기율표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원자 질량이 가장 적은 수소와 그다음으로 적은 헬륨이다. 그다음으로 무거운 원소는 리튬, 베릴륨, 보론 (붕소), 그리고 탄소, 질소, 산소 등이다.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무거운 원소들이 생겨나야 할 것인데 실제로는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그 보다 더 무거운 원소는 자연적으로 생겨나기 힘들다. 왜냐하면 가벼운 핵자들이 뭉쳐서 무거운 핵을 만들려면 뜨거운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입자들이 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과정에서 전자기적 반발력을 이기고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다), 우주가 식는 속도는 아주 빨라서 가벼운 핵자들이 뭉쳐서 무거운 핵자를 만들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figure1_3.jpeg 핵자 하나당 평균적인 결합 에너지의 원자질량에 따른 분포 (Rolfs & Rodney (1988)).

또한 우주가 식는 과정에서 설령 무거운 핵자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서로 붙어 있는 정도가 약하면 금방 떨어지게 된다. 핵자의 결합 에너지를 계산해보면 위와 같은 결과를 얻는데, 결합에너지가 클수록 (Y 축값이 클수록)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가벼운 원소 (작은 X 축 값)의 경우, 주로 핵융합 (nuclear fusion)을 통해서 만들어지며, 철(Fe) 이후의 무거운 원소들은 주로 그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의 핵분열 (nuclear fission)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가벼운 원소들의 결합에너지를 보면 마치 톱니모양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리튬의 결합 에너지는 이보다 가벼운 헬륨의 결합에너지 보다 작다. 따라서 무거운 원소 리튬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헬륨보다 결합에너지가 적어 금방 붕괴될 확률이 높다. 베릴륨(Be)과 붕소(B)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그다음으로 무거운 원소인 탄소와 산소는 비교적 큰 결합에너지를 가지고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질 시간을 주지 않고 빨리 식는 우주에서 더구나 결합에너지가 약한 일부 무거운 원소는 자연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가 식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원소의 거의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있으며, 이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은 뜨거운 온도가 오래 지속되는 별 안에서 핵융합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결합에너지가 작은 중원소는 안정된 구조를 이루지 못하고 붕괴한다). 우주에서 최초의 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는, 중원소가 없는 수소와 헬륨만으로 이루어진 기체이다.


이 최초의 별이 만들어지고 나서 그 수명을 다하고 폭발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별 내부에서 생겨난 중원소들이 방출되고 나면 이 이후에 생겨난 별들은 작은 비율이긴 하지만 중원소를 포함한다. 천문학에서는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중원소의 (천문학자들은 '금속'이라고 부른다) 포함 여부에 따라 항성종족을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금속함량이 큰 종족-1 항성과 금속함량이 적은 종족-2 항성, 그리고 금속함량이 말 그대로 0 인 종족-3 항성이다. 종족-1 항성은 은하가 만들어진 후 은하 안에서 별이 여러 번 생겨나고 죽는 과정을 거친 곳에서 태어난 별로 금속함량이 높은 반면, 종족-2 항성은 은하가 만들어질 당시 같이 생겨난 별로 상대적으로 금속함량이 적다 (그래도 금속 함량이 0은 아니다). 하지만, 종족-3 항성은 우주가 생겨난 후 수소와 헬륨 만으로 이루어진 기체 ("원시가스"라고 부르기도 한다)로부터 최초로 생겨난 별이기 때문에 금속 함량이 0이다.


이 종족-3 항성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지만 실제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후보들은 발견이 되었지만, 종족-3 항성이라고 확인되지는 않았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은하와 그 안의 별들을 생각해 보면, '최초의 별'은 우주의 진화과정의 한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존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와 달리 성배의 존재는 과학적으로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다시 말해 성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항성 종족-3으로 불리는 이 '최초의 별'은 어떤 이유로 천문학자들에게 그렇게 흥미롭고 중요한, 하지만 찾기 힘든 성배와 같은 존재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냉각함수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분들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보시길 바란다).

cooling.jpg 충돌에 의한 이온화 평형을 이루고 있는 가스의 냉각함수 (Andrew Benson 2010)

위의 그림은 중원소가 없는 원시가스(실선)와 태양과 같은 함량의 중원소를 가지는 가스(점선)가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방출하면서 식는지를, 가스의 온도에 따라 계산한 냉각함수이다. 우선 중원소가 포함되어 있는 가스(점선)는 원시 가스에 비해 에너지를 훨씬 많이 방출한다, 즉 빨리 식는다. 가스가 식는다는 것은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린다는 말과 같고, 운동에너지를 잃어버린 가스는 자체 중력에 의해 수축하여 별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가스의 온도는 중력섭동에 의해 가스가 수축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질량인, 진즈질량을 결정한다. 빨리 식어서 온도가 낮아진 가스는 진즈질량도 작다. 따라서 작은 질량으로도 수축하여 별을 만들 수 있다. 반면 더디게 식는 가스는 온도도 상대적으로 높아서 진즈질량도 크다. 즉 수축하여 별이 되는 경우 질량이 큰 별로 탄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온도가 10의 6승이 되는 가스를 생각해 보자. 이 가스가 중원소가 포함된 가스라면 중원소가 없는 원시가스 보다 30배는 빠르게 냉각될 것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원시가스는 냉각이 더뎌서 온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원시 가스에서 최초의 별이 생긴다면 큰 질량의 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질량은 보통 태양 질량의 수백 배에서 천배에 까지 이른다).


이렇게 큰 별은 우리 주변에서 관측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별의 질량이 저렇게 크면, 폭발적인 에너지 생성과 별의 구조 불안정으로 생겨나자마자 금방 수명을 다해 폭발해서 잔해만 남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족-3 항성을 찾을 유일한 희망은 가까운 은하에 있는 별 중에서, 과거 최초의 별이 폭발하고 그 잔해로 남아 (어두워진) 금속 함량이 거의 없는 오래된 별을 찾거나 아니면 적색편이가 아주 큰 멀리 있는 은하 안에 있는 밝은 (하지만 겉보기 등급은 어두운) 별을 찾아서 그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중원소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는가?


하지만 무거운 종족-3 항성의 존재가 관측으로 확인되면, 보통 별과 태양 질량의 수백만에서 수억 배나 되는 거대 질량 블랙홀 사이의 질량 간극을 매울 수 있는 중요한 중간자로서, 거대 질량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씨앗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천문학자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일부 천문학자들은 모래사장에서 금붙이를 찾는 심정으로, 최초의 발견자라는 영예를 얻기 위해 이 성배를 찾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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