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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의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서성이는 당신에게

브런치 작가의 꿈

by astrodiary

영어로 Astronomy라고 하는 학문을, 동양에서는 '천문학'이라 부르고 있다. 다른 과학분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약학, 공학 등등)들의 이름과는 달리, 천문학에는 '글월 문(文)'자가 들어가 있다. 말 그대로 천문학을,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문자체계' (혹은 법칙이라 해도 좋겠다)를 찾아내고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이해한다면, 꽤나 적절한 이름이다. 또 천문학에서 '하늘 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문학'이다. '천'+'문학' (하늘을 그려내는 문학)이라... 낭만적인 이름이 아닌가? 게다가 천문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외계생명체와 블랙홀은 영화와 소설의 단골 주제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대중들이 천문학을 좋아하고 친근하게 느끼게 된 계기는, 아마도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라는 책의 출판이 아닐까 싶다. 책 코스모스의 맨 앞에 나오는, 칼이 그의 부인 앤 드류얀 여사에게 바치는 글은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낭만적인 문구 중의 하나다 (한국 천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신 고 홍승수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코스모스 한국어 판에 나온 문구를 그대로 옮겨 본다).


앤 드류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천문학자가 아니라, 문필가의 글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천문학은 다른 어떠한 과학분야보다 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과학이지만, 대중에게 비치는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선뜻 다가갔다가 기대와 달리 실망을 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저는 천문학자입니다"라는 대답을 하면, 열에 아홉은 눈이 커지며 "와 정말요?"라는 되물음과 함께 천문학에 관련된 몇 가지 '후속' 질문들을 해 온다. 여기서 나의 고민은 시작된다. "이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고요 , 우주의 크기는 460억 광년인데, 그 안에는 수 천억 개의 은하들이 있고, 각각의 은하 안에도 수천억 개의 별들이 있는데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호기심에 커졌던 사람들의 눈은 작아지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이 숫자들이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 있는 지구에서 '찰나의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사실 우주의 나이라는 것은 현재로부터 시작해서 우주가 아주 온도가 높고 아주 작았을 때까지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추정해 본 숫자에 불과하고, 우주의 크기라는 것도 우주가 얼마나 빨리 팽창해 왔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은하 안에 있는 수많은 별들은 각각 다른 질량과 덩치를 가지고 태어나서 각자 수명과 나이가 다르고, 생을 마감하는 방법도 다 정해져 있답니다. 은하에 가까이 가서 별을 일일이 셀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별들의 통계적 특성과 은하 전체의 질량을 비교해서 대충 별의 개수를 추정하죠"라는 부연 설명을 해 주면, 종종 "그래서 우주의 온도는 얼마나 높고, 얼마나 빨리 팽창하는데요? 그리고 별들의 일생을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리고 은하의 질량은 어떻게 재나요?"와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내 글이 천문학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천문학자들과 이들이 공부하는 천문학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천문학은 아름다운 밤하늘에 대한 경이로움과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저 밤하늘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진지한 과학적 질문을 가지고 이를 탐구해 가는, 낭만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최첨단에 있는 과학

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천문학은 꼭 수학과 물리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이 하는 학문이 아니며, 충분한 호기심과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문학자들이 하는 연구의 재미를 같이 느낄 수 있다

는 나의 믿음을 공유하기 위해 브런치에 '일요일에 만나는 천문학'과 '천문학 투데이'라는 연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만나는 천문학'은 천문학 이해를 위해 필요한 중요한 개념들을 알기 쉽게,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 (물리와 수학)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설명하려고 하며, '천문학 투데이'는 지금 천문학자들이 하고 있는 연구 중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을 골라 해설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 써 나갈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현실 천문학의 테두리를 향해 점점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다시 낭만적인 천문학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둘 다 괜찮다. 낭만적인 천문학을 좋아해서 막연하게 천문학을 동경해 왔던 사람들에게도, 정말 진지하게 천문학을 공부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실제 천문학이 무엇을 공부하는 학문인지 아는 것은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작가가 아닌 내가 용기를 내어서 쓰는 글들이, 낭만적인 천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지만 현실 천문학이 궁금한 당신을, 천문학의 '낭만과 현실' 그 사이 어디쯤으로 데려다 놓는 여행가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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