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人 9
20년 넘게 홍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었던 일을 하나 꼽으라면 미국 듀폰사와 코오롱인더스트리(주)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선택할 것입니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여론전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소송의 쟁점들이 언론에 알려지는 순간 또 다른 영업비밀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송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수년 혹은 십 년이 넘게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수년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기에 소송 이슈를 관리하는 것은 고난 한 업무입니다.
1조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시작!
듀폰은 2009년 2월 3일 코오롱인더스트리(주)가 자사의 아라미드 섬유 케블라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1조 원에 달하는 배상금 소송을 미국 버지니아주 법원에 제기합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미국 듀폰, 네덜란드 악조사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2005년 아라미드 상업화에 성공한 후 시장개척을 하고 있었습니다. 1조 원이 넘는 배상금액은 국내 산업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아라미드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코오롱 그룹은 카이스트에서 아라미드 연구를 하던 윤한식 박사를 후원해 왔습니다. 그리고 1984년 윤한식 박사가 아라미드 펄프에 대해서 물질특허를 획득했습니다. 아라미드 섬유는 방탄섬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불에 타지도 않고 총알이나 칼에도 잘리지 않는 쇠보다 강한 섬유입니다.
코오롱 그룹은 윤한식 박사의 연구를 토대로 상업화 준비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듀폰은 윤한식 박사가 자신들의 기술을 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 소송은 1993년 되어서야 끝이 납니다. 윤한식 박사의 기술의 독자성을 인정받아 특허소송에서 이겼습니다.
그 후 10년이 흐른 2005년이 되어서야 코오롱 그룹은 아라미드 상업생산에 성공합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아라미드 사업 확장과 미국 진출을 모색하던 시기에 듀폰이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참고로 듀폰은 아라미드 후발 주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소송을 통해 시장 진출을 늦췄습니다. 미국 정부도 군에 납품되는 아라미드 기술을 지키기 위해 듀폰에 힘을 많이 실어주고 있습니다. 1980년대 네덜란드 악조사가 아라미드 시장에 진입했을 때도 듀폰은 특허소송을 제기해 악조사의 시장 진입을 늦춘 전례가 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듀폰과의 소송 초기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첫째는 함정수사입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듀폰에서 퇴사한 마이클 미첼이라는 직원과 접촉하며 미국 진출과 아라미드 사업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실을 눈치챈 듀폰은 FBI의 협조를 구해 마이클 미첼의 집을 압수수색합니다. 마이클 미첼은 FBI에 기소되자 폴리 바겐 제도를 통해 형량을 경감 받습니다. 그리고 FBI와 듀폰에 협조를 하며 코오롱인더스트리 직원을 버지니아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합니다. 버지니아주의 한 호텔에서 마이클 미첼과 면담을 하던 코오롱인더스트리 직원들이 FBI에 체포되면서 이 소송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소송이 진행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됐습니다. 버지니아주는 듀폰의 아라미드 공장이 있는 곳입니다. 지역사회에 많은 기여와 기부를 하고 있는 듀폰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둘째는 컴퓨터 자료 삭제입니다. 소송이 제기되고 미국 법원이 증거 보존 명령을 내렸지만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임직원들의 컴퓨터 파일과 이메일 자료를 삭제한 것입니다. 일부는 아라미드 관련 자료도 있었지만 업무와 관련이 없는 임직원의 사적인 내용도 많았습니다. 미국 법원은 고의적으로 증거를 인멸하면 정도에 따라서 패소 판결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후 서버를 복원해 삭제된 파일과 이메일을 거의 다 복원해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패소 판결은 면했지만 버지니아주 법원은 의도적으로 관련 증거를 파괴했다고 판단하고 배심원들에게 불리한 추정을 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셋째는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미국과 한국에서 아무런 홍보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듀폰과의 소송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변호사와 PR대행사를 기용했습니다. 미국 PR대행사와 한국 지사는 언론을 통한 여론전이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매월 PR대행료는 수 천만 원씩 지급되는 데 PR활동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가끔 미국 법원의 판결문과 변호사의 주장을 번역하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와 애플은 엄청난 여론전을 펼쳤습니다. 전세계 언론들은 양사의 주장을 연일 보도하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후발주자였지만 애플과의 소송전을 펼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애플이 특허소송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아이폰의 기술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듀폰의 소송은 영업비밀에 관련돼 있어서 소송의 쟁점을 언론에 함부로 밝히 수 없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영업비밀이기에 법원 내에서 주장하는 양측의 주장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허는 기술을 공개하고 법으로 일정 기간 동안 보호를 받을 수 있기에 공개가 가능하지만, 영업비밀을 외부 공개가 되는 순간 그 효력이 감소되기에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법정 쟁점 이외의 것을 찾아 코오롱인더스트리 아라미드에 대한 홍보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9월 배심원 평결이 내려졌습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듀폰이 완벽하게 이겼습니다. 듀폰이 주장한 배상금 1조원이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코오롱 그룹은 판사의 판결에서 배상금액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배심원 평결 이후에도 그룹의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하지만 그해 11월 판사(로버트 페인)도 배심원 평결과 같은 판결을 내리면서 그룹의 위기감이 증폭됐습니다. 언론에서는 코오롱이 1조원 소송에 패소했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재판에서 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코오롱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음 해에는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법원에서 아라미드 판매금지 명령을 내립니다.
코오롱은 그룹 차원에서 홍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법원을 자극할 수 있는 듀폰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더라고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기술이 순수 국내 연구로 시작됐음을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출입 기자들을 상대로 아라미드 공장 프레스 투어를 진행 한 것입니다. 당시 프레스킷에는 윤한식 박사의 아라미드 개발 히스토리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상업화 과정에 대한 내용 등 아라미드에 관련된 자료들을 대거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구미 아라미드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직원들은 수십 차례 실패를 이겨내고 우리 힘으로 아라미드 상업생산을 시작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또한 듀폰의 견제에 대해 말 못하는 울분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은 언론은 아라미드에 대한 이해는 물론 코오롱의 입장에 많은 공감을 나타냈습니다.
이후에도 출입 기자들과 자리를 가질 때마다 윤학식 박사의 연구성과와 십수 년간 윤박사를 지원한 코오롱의 인연에 대해서 설명하며 공감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2012년 8월 30일 미국 버지니아 동부 법원(판사 로버트 페인)이 코오롱인더스트리에게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판매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국에 있는 아라미드 공장의 가동도 멈추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국에 있는 생산시설에 대해 가동 중단 명령을 내리고 회사 서버에 있는 아라미드 영업비밀 자료 삭제를 명령한 미국 법원의 판결문에 국내 언론은 비판적이었습니다. 담당 판사였던 로버트 페인이 듀폰을 변호했던 로펌 출신 변호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판 기피 신청을 하지 않은 판사의 도덕성도 한국 언론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 판결 이후 항소심이 시작됐지만 한국 언론은 미국 듀폰과 1심 법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반대로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억울하게 소송을 당하고 있다는 동정심도 갖게 됐습니다.
1조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결말!
항소심이 시작됐지만 언제 종결될지 모르는 지루한 법정 대치 상황이 지속됐습니다. 그리고 2014년 미국 항소심은 1심 법원의 판결이 일부 잘못됐고, 판사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재심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실상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다시 1심으로 넘어온 소송은 2006년 듀폰과 코오롱이 합의를 하면서 8년 만에 종료됩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듀폰과의 합의금 2천860억 원과 미국 검찰이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모의 협의에 대한 벌금 910억 원을 내고 아라미드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기업들의 영업비밀 소송이나 특허 소송은 대부분 합의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980년대 후반 일진그룹의 공업용 다이아몬드 기술 특허소송도 결국 합의로 마무리됐습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도 약 66천억 원의원의 합의금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이 6000억 원이 절대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소송을 통해 애플을 위협하는 스마트폰 2인자라는 이미지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송전에서 제가 느낀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입니다. 상대가 있는 싸움에서는 여론을 움직여야 합니다. 여론이 돌아서면 싸움에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여론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고, 내 목소리를 전파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현장의 목소리는 항상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듯이 공장이나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실제로 듣게 해주는 것이 홍보팀이 10번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큰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지만 땀은 펜보다 강한 법입니다.
셋재, 반복적인 메시지로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상대가 나쁜 놈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시 저를 포함한 코오롱 홍보팀은 기자들을 만나 아라미드 국산화 과정과 소송의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공감을 이끌었습니다. 이런 공감은 1심 법원이 생산금지 명령을 내렸을 때 기사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