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인 13 준비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의 결말
최근 우리나라는 기업의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대주주이자 최고 경영자가 언론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이 낯설지 않습니다.
2022년 말 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이 대전 프리미엄 아웃렛 화재 사건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근로자 7명이 사망한 중대 재해였음에도 현대백화점은 명성에 큰 훼손 없이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넘겼습니다.
반면 2022년 1월 HDC그룹 정몽규 회장은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사과했음에도 진정성을 의심받으며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 6월 광주시 학동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지며 9명의 사상자를 냈기 때문입니다. 7개월 동안 2번의 중대 재해가 발생해 15명의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안전관리가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이은 중대재해로 인해 HDC그룹의 기업가치는 60% 넘게 하락했습니다.
현대백화점과 HDC그룹 모두 총수 일가의 회장님들이 직접 나서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기업의 책임이 큰 위기 상황에서 사과가 가장 좋은 전략입니다. 부정적인 이슈 상황에서 기업의 사과는 이슈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거나 이슈를 정당화하는 전략에 비해 이슈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조직의 책임이 높은 위기가 발생하면 조직의 진심 어린 사과는 다른 어떤 커뮤니케이션 전략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기업의 사전 명성과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위기 발생 후 명성과 위기인식에 미치는 효과 연구. 홍보학 연구 김윤진 and 이현우. 2011).
기업의 책임질 부분이 있는 이슈는 신속하고 빠른 사과가 가장 좋은 전략입니다. 또한 최고 경영자의 사과는 그 무엇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 경영자가 나섰을 때는 마지막 보루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쟁에서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다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꺼내 추가로 쓸 전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최고 경영자가 나서야 한다는 이유로 준비없이 나서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전면에 나설 때는 상황과 문제 파악을 명확히 하고 사과의 대상과 본인의 책임과 자세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피해자 앞에 혹은 국민과 언론 앞에 어떤 메시지를 보여줄 것인지,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철저히 준비한 후에 카메라 앞에 서야 합니다. 전략없이 준비되지 않은 사과와 대응은 오히려 위기를 키울 수 있습니다.
위기를 키운 CEO의 위 기대응
세계 제2위의 석유기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 British Petroleum)은 준비되지 않은 채 최고 경영자가 위기상황 전면에 나섰다가 기업의 이미지와 명성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최고 경영자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준비없이 언론 앞에 섰기 때문입니다.
2010년 4월 20일 밤, 멕시코만 마꼰도 광구에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심해 유전을 탐사중이던 시추시설 팁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호가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시추 작업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른 현장으로 이동을 하루 앞두고 폭발사고가 난 딥워터 호라이즌 호는 심해로 사라졌습니다.
이 폭발사고로 현장에 있던 123명 중 11명이 죽고 17명의 다쳤습니다. 65일 동안 힘겹게 완성한 시추시설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여기에 바다 밑 유정과 시추시설을 연결하는 파이프에 구멍이 뚫리면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바다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닷속 1,500m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을 막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첨단 장비가 모두 동원되어 몇 달간의 작업 끝에 겨우 원유 유출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새어 나온 원유의 양은 수십만 배럴로 알려졌습니다. 사고 발생 초기 하루 1,000~5,000배럴의 원유가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했지만 한 달 후에는 12,000~25,000배럴, 6월에는 35,000~ 60,000배럴이 유출 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원유 유출 피해가 빠르게 확산하고 예상보다 많은 원유 유출이 계속되면서 환경 대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커졌습니다. BP는 기름유출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매일 600만 달러, 한화 약 67억 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했습니다. 또한 야생동물, 해변 상점, 관광업체 등의 피해에 대해서도 보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1989년 알래스카 연안을 오염시킨 엑손 발데스호 기름유출 사건 이후 원유 시추와 관련된 회사들이 방제 비용을 부담하라는 법을 제정했습니다. 미국은 해안경비대까지 투입하며 기름띠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비용은 고스란히 BP와 석유 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의 소유주인 트랜스오션이 법적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BP는 사고 후 85일 만인 7월 15일 유정에 대형 차단캡을 설치해 원유 유출을 겨우 막을 수 있었습니다. 로봇 잠수정 등 우주탐사에 비견될 만한 첨단 기술을 모두 동원한 후에야 겨우 임시방편으로 원유 유출을 막은 것입니다.
사고 당시 BP는 위기대응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선정하지 않고 최고 경영자인 토니 헤이우드가 직접 나섰습니다.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헤이우드는 사건 해결을 위해 사고 현장을 찾아 지휘하고 언론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헤이우드는 "기름띠 제거작업을 비롯해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것"이라며 "합당한 피해보상 요구를 최대한 존중하는 등 이번 사태 해결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회사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언론은 연일 최고 경영자를 취재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아닌 토니 헤이우드는 사고에 대한 기술적 분석은 뛰어났지만, 여론을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헤이우드는 몇 번의 잘못된 방언으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헤이우드는 원유 유출 사고로 인한 환경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 “멕시코만은 매우 넓은 바다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 유출된 원유는 매우 적은 양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마꼰도 광구에서 새어 나온 원유가 시커먼 파도가 되어 해안가를 뒤덮고, 원유를 뒤집어쓴 펠리컨의 참혹한 사진과 해안가로 나와 죽음을 맞이한 돌고래 등 해양 생물들의 안타까운 사진을 본 전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가 문제를 가볍게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물론 최고 경영자인 헤이우드는 회사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BP는 방제비용 뿐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양의 기름유출로 생업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앨라배마주의 어민과 해산물 유통업자, 식당업자들에 대한 피해보상과 폭발 사고로 다친 직원들에 대한 보상 등 회사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예상할 수 없을 정도 불어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헤이우드는 원유 유출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고 해안가 주민들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제일 바라는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이번 사태가 빨리 정리되기를 나보다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언론과 인터뷰를 합니다. 여론은 헤이우드가 문제의 해결보다 자기 삶을 빨리 되찾고 싶어 한다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부정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결국 헤이우드는 사고 3개월 후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BP는 방제작업과 소송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해 처했습니다.
헤이우드는 사고 해결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사고 초기 미국 NBC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원유 유출 차단에 2~3개월이 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동원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동원해 결국 원유 유출을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수습을 위한 그의 노력은 언론이 전한 메시지에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이라도 앞뒤 맥락이 다 잘린 채 왜곡되어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3~4주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제 발언에 사과드립니다” 헤이우드는 뒤늦게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지만 이미 본인의 명성은 물론 회사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된 뒤였습니다.
책임이 명확한 상황에서 기업이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여론입니다.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고 화난 여론을 달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쳐야 합니다. 위기관리 경험이 부족했던 헤이우드는 커뮤니케이션 전략 없이 섣불리 언론 앞에 섰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솔직해야 하지만 부정적인 여론이 큰 상황에서는 비난의 칼끝을 무디게 만드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법적인 논쟁을 위한 전략은 여론 재판이 끝난 뒤에 짜도 늦지 않습니다.
회사의 잘못이 명확한 상황에서 최고 경영자의 사과는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고 경영자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CEO가 언론홍보와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했던 전력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CEO를 대신해 언론과 커뮤니케이션할 대변인을 사전에 선정해 놓아야 합니다.
종종 임원이 되고 나서 언론홍보나 대외 커뮤니케이션 조직을 거느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경험이나 지식이 없지만, 임원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실무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본인의 생각을 관철하는 기업도 꽤 있습니다. 평판을 쌓는데, 수년간의 노력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그 평판은 한순간의 말실수로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또 무너진 평판을 다시 회복하는 데는 처음 평판을 쌓는데 공들였던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