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 人 4
신문에 소개되는 기업 뉴스는 부정 뉴스보다 긍정뉴스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부정적인 뉴스를 더 많이 기억합니다. 긍정적인 뉴스보다는 부정적인 뉴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뉴스는 확산 속도도 빠르다. 초기에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눈에 띄지 않게 무더운 여름 빠르게 확산되는 녹조처럼 소셜미디어에 퍼져 바로잡기 버거울 수 있다.
언론의 시각, 바로 프레임에 따라 뉴스는 부정뉴스가 되기도 하고 좋은 뉴스가 되기도 한다. 부정뉴스는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의 의도와는 다르게 의미가 부정뉴스로 왜곡돼 더블링 현상처럼 퍼지는 바이러스처럼 퍼지듯 빠르게 확산하는 예도 있다.
2011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무교동에 있는 회사 직영 쇼핑몰이 재단장을 홍보하기 위해 ‘하의실종’ 패션을 이벤트에 접목하게 시키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하의실종 패션은 미니스커트나 핫팬츠 등을 입은 여성의 짧은 하의가 상의 밑단보다 짧아 언뜻 보면 하의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여 만들어진 표현이다. 하의실종 패션은 2010년 전후에 큰 인기를 입었고, 언론에서는 지금도 짧은 하의를 입은 여자 연예인들의 스타일을 하의실종 혹은 하의실종 패션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의실종’이라는 새롭게 등장한 패션 신조어를 앞세워 화제성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유행을 좇는 패션 쇼핑몰을 알리는 데 적격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벤트의 제목은 ‘하의실종 종결자를 찾아라.’ 였다. 70년대 경찰들이 거리에서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듯이 무릎부터 하의까지 길이를 자로 재 5cm까지는 50%, 10cm는 60%, 30cm가 넘으면 90%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증정한다는 이벤트다. 할인율이 높은 탓에 참가자는 선착순 100명으로 한정했다.
보도자료가 배포된 후 온라인 뉴스에는 회사의 의도대로 할인율과 이벤트에 초점을 둔 기사들이 올라왔다. 팀원들이 이벤트 준비에 한창일 때 한 언론사에서 한 언론에서 ‘하의실종’이라는 이벤트가 선정적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그 보도를 시작으로 선정성 이벤트라는 비판 기사가 포털 온라인 뉴스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선정성 논란은 빠르게 확산했다. 최초 선정성 논란 보도 이후 몇 시간 만에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르더니 KBS 9시 뉴스에서도 내일 이벤트를 취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뉴스에 달리는 댓글 또한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 하의실종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관계자들이 이벤트 진행에 대한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에는 논란에도 ‘길거리에서 쉽게 눈에 띄는 패션 스타일이 왜 선정적이냐며 계획대로 진행하자’라는 의견과 ‘기획 의도와 달리 선정성 이벤트로 이미지가 나빠졌으니 취소해 논란을 가라앉히자’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선정성 논란의 기사 댓글에 당시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찌라시에 언급된 오너 관련 내용이 점차 확산하면서 이벤트는 결국 취소하기로 했다. 언론의 비판과 허위사실이 급속히 확산하는 속에서 이벤트를 강행한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벤트 취소 소식을 언론사에 전달했다. 행사 취소 소식을 전하면서 친한 기자들에게는 회사의 억울한 면도 하소연했다. 하의실종 패션은 요즘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이고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의 다리를 재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도우미 여성들인데 왜 하의 실정 기사는 선정성 논란 속에 이벤트가 취소됐다는 기사가 속속 올라왔다. 논란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쇼핑몰 재단장 소식은 기대 이상으로 홍보 효과를 누렸다.
하의실종 패션 행사를 취소한다는 소식은 쇼핑몰 홈페이지와 고객 문자 메시지로 전파해 행사 당일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그런데도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젊은 여성 몇몇이 친구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그분들에게 정중한 양해를 구하고 새로운 이벤트 참가를 권유해야만 했다.
행사를 취소하지 않고 밀어붙였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 아마 이벤트는 대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각 언론사의 카메라와 열띤 취재 경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행사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도 카메라 앵글은 선정적인 장면만 포착했을 것이다. 언론은 행사 전보다 더 많은 비판 기사를 쏟아 냈을 것이다. 선정적인 장면을 찍은 사진은 신문 지면과 온라인 화면을 장식했을 것이다.
이벤트에 ‘선정성’ 프레임이 덧붙여지지 않았다면 행사 당일에는 미니 팬츠, 미니스커트 차림의 젊은 여성들의 쇼핑몰 입구에 줄을 섰을 것이다. 쇼핑몰 인근의 거주민들과 사무실 직원들도 쇼핑몰에 몰려든 인파에 흥미를 느끼고 쇼핑몰을 찾았을 것이다. 이벤트에 참가한 젊은 여성의 밝은 웃음과 하의실종 패션은 주요 언론사 유통 면에 보도됐을 것이다.
회사는 선정성 논란에도 이벤트를 강행하려고 했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패션 회사에서 하의 패션을 진행하는 것이 문젯거리가 될 것이 없고, 법적으로도 문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이벤트 공지가 나가고 참가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화제성 있는 이벤트가 ‘선정성 이벤트’라는 프레임으로 보기 시작하자 비판 기사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포털 뉴스사이트 실시간 댓글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은
한 네티즌은 "대놓고 성(性)을 상품화하는구나"라며 "할인권 받으려면 노출하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고 비판했다. "자로 무릎부터 하의까지 길이 재는 것은 상품권 주니까 넘어갈거면서 만일 거기가서 구경하고 있으면 성희롱이라고 고소하겠지"라며 해당 행사에 참가할 여성들을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
"최근 트렌드를 잘 반영한 행사 아니겠냐"라는 댓글과 또 "행사 참여하는 여성들에게 돈에 눈먼 여자들이라고 욕하지 말라. 연예인들은 뭐 특별해서 그들이 입고 출연해서 돈받으면 패션종결자고 일반 여성들이 입으면 노출에 환장한거냐"며 하의실종 이벤트를 옹호하는 댓글도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룹의 오너를 언급하는 댓글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모 연예인과 관련된 지라시 내용을 언급하는 댓글이 빠르게 늘어나자 회사에서도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이벤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가쉽성 댓글이 소셜미디어로 확산되기 시작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도 있었다. 결국 아쉬움을 가득 안고 수 주일 동안 준비한 이벤트를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생기업이나 오너 이슈가 얽히지 않은 기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벤트를 강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노이즈를 통해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쇼핑몰 재단장 행사를 마치고 팀원들 사이에서는 다음에는 남자 복근을 보여주는 행사를 기획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둥근 원 팩의 아저씨 배를 가진 사람에게는 10%, 식스팩 초콜릿 복근을 가진 남성들에게 60%의 할인율을 제공해 주자는 것이다. ‘하의실종 패션’이 언론의 선정성 논란 보도로 취소된 데 아쉬움을 가진 팀원들은 여성의 노출과 남성의 노출에 여론은 각각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알아보자며 다음 행사아이디어를 보탰다. ‘초콜릿 복근 이벤트’는 결국 아이디어로만 남아있다.
사실 하의실종 패션은 스페인 패션 브랜드 ‘데시구알’에서 아이디어를 채용해 온 것이다. 트레디한 감각을 자랑하는 ‘데시구알’은 매년 속 옷차림의 매장 방문 고객 10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해 50% 이상의 할인율을 제공해 준다. 속 옷차림의 여성들이 데시구알 매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나 매장에서 쇼핑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단골로 소개됐던 뉴스였다. 그해 2월에는 대만에서는 여성들이 상의는 잘 갖춰 입고 하의는 속옷만 입은 채 지하철을 타는 이벤트를 벌였다. 관련 뉴스는 국제뉴스를 통해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다.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는 하의실종 패션을 입은 연예인들의 사진이 하루에도 몇 장씩 소개되고 있지만, 대기업이 기획하는 하의실종 패션은 ‘선정성 논란’으로 확산했다. 한 명의 잘못은 아니다. 대기업이 여성의 대상으로 한 하의실종 패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이런 화제성 이벤트를 하지 않더라도 사업에 문제가 없는 대기업이 여성의 노출 패션을 대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한 의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언론은 기업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졌다. 또한 언론은 통제가 불가능하고 기업의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는 없다.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라도 내부가 아닌 외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검토해야 한다. 하의실종 패션은 ‘흥미와 재미’에만 초점을 맞추고 여성들이나 성 이슈에 대한 관점은 소홀했었다. 기업의 활동을 외부에 공개할 때는 다각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봐야만 한다. 특히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있거나 대중의 이목이 쏠려 있는 기업이라면 더욱 신중히 다각적인 프레임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홍보는 미디어와 여론이 기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미디어의 시선을 유도해야 한다. 기업이 원하고 제시한 프레임을 통해 언론이 현상을 보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의도한 프레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 다각적이고 치밀한 검토해야 한다. 긍정이슈든 부정이슈든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