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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Feb 03. 2023

우리 함께 쓸까요?

2W 매거진 31호

올해 새운 작은 목표 중 하나는 2W 매거진에 빠짐없이 매달 투고하는 것입니다. 달이 바뀌고 새로운 테마가 발표될 때면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잠시 멈칫합니다. 머릿속은 어떤 이야기를 쓸까 찾는다고 분주하죠.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메모하다가 어렴풋이 뻗은 줄기를 발견할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창작의 희열'이라는 주제를 받고 제가 찾은 줄기에는 '글쓰기'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어요. 저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재미있어요.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면, 글을 쓰는 동안 제가 유일하게 '나'가 되는 순간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엄마' 어디 나가면 남편 성을 따서 '00상'이라고 불리니까요. 오롯이 내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써내는 것은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우리 함께 쓸까요?'라는 제목은 영화 'Shall we dance'에서 따 왔습니다. 원래 재미있는 건 같이 하면 즐거움이 배가 되잖아요. 그래서 아직 글쓰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누군가를 꼬시고 싶었어요. 쓰다 보니 글쓰기 예찬을 하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이 글을 읽고 '나도 써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제가 함께 손잡고 기쁨의 춤을 추어드리겠습니다.








나는 글쓰기가 좋다. 조각 같은 순간에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글로 아로새기는 시간이 너무나 눈부시다.


큰 아이가 유치원 마지막 학년일 때의 일이다. 유치원을 졸업하기 전 마지막 1년은 행사가 참으로 많다. 그중 하나가 운동회이다. '넨쵸(年長)'라 불리는 아이들은 행사의 중심이 되어 춤을 추기도 하고 몸으로 여러 형태를 만들어내는 체조를 하기도 한다. 그중에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릴레이'이다. 아직 작고 고사리 같게만 느껴지는 손으로 커다란 바통을 주고받으며 뛰는 경기. 모든 경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이다.


그때 나는 큰 아이 반에 임원을 맡고 있었다. 응원용 깃발을 만들어 세우고 응원술을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어 아이가 달리기를 준비하러 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인데' 하는 생각에 애가 탔다. '탕' 하는 소리가 온몸을 울리는 통에 깜짝 놀라 몸이 움츠러들었다. 입을 꾹 다문 아이들이 움츠렸던 몸을 쫙 펴며 주먹을 꼭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용감한 전사들처럼 보였다. '눈으로 새기고 또 새겨야지.' 누가 달리는지 적은 이름판을 응원하러 모인 부모들에게 보여주며 소리를 지르느라 사진 찍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순간의 공기를, 환성을, 느낌을 머릿속에 새기려 애를 쓰며 열심히 지켜보았다. 뒤만 돌아도 잊어버리는 기억을 열심히 붙잡느라 머릿속이 폭발할 것 같았다. 내려쬐는 땡볕 아래서 이름을 부르며 버럭버럭 소리 지르느라 달구어진 얼굴 역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운동회가 끝나고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시선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며 기억하려 애썼던 순간들을 꺼내보려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다. 마침 유치원에서 일 년을 마무리하며 만드는 문집에 실기 위한 글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하얀 바탕에 깜빡거리는 커서를 띄워 놓고 눈을 감았다. 조각조각 떠오르는 영상들을 글자로 바꾸어 탁탁 찍어냈다. 흥분해서 점점 빨라지는 응원술의 샥샥 거리는 소리, 너도나도 몸을 내 빼느라 서로 부딪혀 여기저기서 미안하다고 하는 소리... 뜨거웠던 열기와 아이들이 발로 땅을 힘껏 박찰 때마다 피어오르던 흙먼지도 기억해 냈다. 자꾸만 그날의 일들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글자로 바꾸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번쩍이며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달릴 준비를 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첫째가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뿌예진 눈으로 좇았다. 힘 있게 내달리던 아이가 옆 친구를 앞지르는 순간 '달려, 달려!' 하고 나도 모르게 일어나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날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 '아!...' 언제부터인지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뜨겁게 느껴졌다. 타이핑하며 쳐내는 글자가 뿌얘서 잘 보이지 않았다.


'환희'.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또 한 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 속에서 놀라움과 흥분에 정신이 없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즐거웠다.' 그때 아마도 나는 글쓰기라는 깊고 넓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세계에 퐁당 빠져들었던 것이 아닐까.


쌍둥이가 생기고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일이 바빠 잠시 글쓰기를 잊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갓난쟁이인 둥이들을 안고 수유를 하며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나의 존재가 녹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작아져 갈 때였다. 엄마가 아닌 '나'를 찾고 싶었는데 써 놓은 글을 읽다 보니 거기에 '내'가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져 있는 글 속에서도 보였다. 용을 쓰느라 땀범벅이 되어 줄줄 흘러내린 안경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 아이들을 눕혀서 놀려보겠다고 소리 나는 것은 죄다 가져다 흔들어 대는 나.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떠올렸다. 눈으로 보고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한 것들을 글자로 아로새길 때의 기쁨을. 


기쁨은 꼭 완벽한 글을 써서 완성했을 때만 오는 것은 아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을 탁 잡아채서 메모지에 휘갈겨냈을 때, 공들여서 썼다 지웠다 했던 글이 완성되었을 때 모두에서 찾아온다. 그것이 다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괴로운 기억들을 마주해야 할 때가 되면 힘이 들어 글자를 써내기가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그저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며 기억 속을 해메인다. 하지만 힘든 순간들과 마주하다 보면 그 안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것을 찾기도 한다. 


글로 아로새기며 느껴지는 느낌들은 시시 때때로 변화한다. 어떨 때에는 폭죽이 터지듯 '팡' 하고 순식간에 나타나 사라진다. 또 어떨 때에는 길고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게 어떤 것이든 그다음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쓴다. 자꾸만 들여다본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꽃을 이마에 주름을 만들고 잔뜩 찌푸린 눈으로 쳐다본다. 휙 불고 지나간 바람 속에서 느껴진 향을 찾아 이리저리 코를 킁킁 대기도 한다. 아이들과 놀 때에도 뭐라고 하는지 열심히 귀 기울이고 한번 더 눈을 맞춘다. 


글을 쓰면서 매 순간 꼭꼭 씹어 음미하게 되었다. 허투루 보내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눈이 부시다.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순간을 글로 바꾸어내며 희열을 느끼기를 바란다. 오래도록 그 벅찬 감각 속을 기쁘게 헤매기를.


우리, 함께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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