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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Feb 08. 2023

재빠르고 날렵하게 뒤돌아보지 말고

매주 수요일 우리 집엔 한 주 전에 주문한 야채며 비품들이 배달되어 온다. 첫째가 갓난쟁이이던 시절 몸조리를 위해 오신 친정엄마와 벚꽃잎을 맞으며 산책하던 길이었다.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한국어로 떠들어대던 중에 뛰어든 일본어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생협(생활협동조합의 줄임말)의 일종인 000 소속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서 있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다니기 힘들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야채를 비롯한 먹을 것과 비품들까지 없는 게 없다는 설명까지. 쉼 없이 쏟아내는 본새가 한두 번 설명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게다가 말은 왜 그리 잘도 통하는지. 그러고 보니 맨 처음 소개할 때 어린아이가 있다고 했었다. 팔랑대는 나의 귀는 고민하지 말고 얼른 신청하라고 들먹였다. 그때 이후로 주에 1번 주문한 것들이 도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도착한 물건들 속에는 마감일까지 넋 놓고 있다가 허겁지겁 주문한 물품들 외에도 웬만한 잡지 두께는 되는 전단지가 끼워져 있다. 알록달록한 색감에 온갖 먹을 것들이 찍혀 있는 전단지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딱 좋다. 다음 주에는 뭘 시킬까 보고 있을 때였다. 생선가게 앞을 그냥 못 지나가는 고양이처럼 뭐라도 건질까 싶은 두 살 난 쌍둥이들이 다가왔다. 한창 '이거 뭐야'가 유행하고 있어서 사진마다 갈키며 묻느라 바빴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앞을 왔다 갔다 하며 집어내는 사진을 설명하며 보느라 내 눈과 입은 분주했다.


"자동차!"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 사진이 잔뜩 올려진 페이지가 나오자마자 쌍둥이들이 소리쳤다. 자동차만 보면 흥이 올라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이었다. 


"여기는 장난감 나오는 페이지가 아니야. 쵸코가..."


설명을 하며 넘어가려는데 귀여운 손가락 끝이 하얗게 되도록 누르고 있는 곳이 있었다. 파랗고 빨갛고 노란 포장지에 포장되어 있는 쵸코가 보였다. 아이들을 위해 탈 것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딱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칸센과 소방차, 경찰차, 버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먹고 싶다며 꺼내달라는데 사진 속 쵸코를 집어낼 능력이 있을 리가 있나. 쵸코를 받는 날에 사주겠고마 약속을 하고는 서프라이즈로 줘야겠다는 생각에 몰래 주문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비닐에 쌓인 물건들이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후적 거리기 위해 발소리도 우렁차게 달려드는 쌍둥이들의 눈을 피해 자동차 그림이 그려진 작은 상자를 감추었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짠~ 하고 내어놓을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놀다 지쳐서 잠을 자려고 할 때나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가자고 때를 부리는 경우 아이들을 진정시키려면 눈을 끌만한 것이 필요했다. 나는 자주 먹을 것으로 꼬시고는 하는데 그럴 때 쵸코만 한 것이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탈것 모양이면 말 다 했다. 밸런타인데이까지는 일주일도 넘게 남아있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숨겨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랜만에 기온이 올라가 따뜻한 날이었다. 둘 다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첫째와 둘째의 등굣길 배웅을 할 수가 없었다. 오전부터 노느라 바빴다. 이불로 미끄럼틀을 만들어서 점프를 하기. 장난감 서로 가지고 논다고 티격태격하기. 티브이 보기. 중간중간 우유도 마시고, 주스도 마셨다. 점심시간도 아직 오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지쳐갔고 점점 떠드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안 되겠다 싶었다. 여기서 잠이 들면 저녁잠이 늦어지고 그렇게 되면 내 시간이 줄어들 터였다. 이때다 싶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소방차와 전철이 그려져 있는 쵸코 상자를 꺼내왔다. 반쯤 감긴 눈을 하고 느려터진 손놀림으로 장난감을 움직대고 있던 쌍둥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둘은 각자의 좋아하는 모양을 골랐다. 바로 까먹을 줄 알았더니 장난감이라도 되는 듯이 가지고 논다고 신이 났다. 껍데기가 붙은 채로 붕붕. 껍데기를 벗기고 자꾸만 녹는 쵸코를 부여잡고 붕붕. 둘이서 뭐라고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놀던 쌍둥이들이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입가에 시커먼 수염을 만들어놓고서 하나를 더 달란다. 그럼 그렇지. 하나로 만족할 너희들이 아니야. 이번에도 좋아하는 그림을 고르게 해 주고는 마지막이라고 못을 딱 박았다. 밥은 안 먹어도 과자는 꼭 챙기는 아이들이었다. 자꾸 먹다가는 밥이 과자가 될 판이다.


뒤돌아서 식탁 앞에 펼쳐 놓은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길래 또 서로 장난감을 뺏고 있나 싶어 돌아보았다. 문득 선둥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엄마, 자동차가 없어."


"방금 전에 가지고 놀았잖아. 어쨌어. 거기 옆에 없어?"


선둥이가 앉아 있는 곳 주변으로 장난감이 뒤엉켜 나동그라져 있었다. 같이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에 다가갈 때였다. 양손 가득 자동차 장난감을 든 후둥이가 뒤돌아서 쫓기듯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왔다. 손에 들고도 모자라 겨드랑이에까지 장난감을 끼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잔뜩 가지고..."


필사적인 표정으로 서둘러 나오던 후둥이가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 야무지게 쥐고 있는 작고 까만 물체가 보였다. 순간 급하게 후둥이가 일어나 나온 자리를 살폈다. 


'아...'


쵸코 자동차의 껍데기가 구겨진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선둥이가 여전히 자동차가 없다고 중얼대는 걸 보니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잽싸게 그쪽으로 가면서 후둥이의 손에 들려 있던 쵸코는 입에 넣어줬다.


"쉿, 아무 말하지 말고 먹어"


알아들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귀에다 속삭이고 떨어져 있던 쵸코 껍데기를 주워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상하다. 자동차가 어디로 가버렸네. 발이 달려서 혼자 달려갔나?"


진짜 모르겠다는 듯이 오버 액션을 하며 찾는 척을 하다가 얼른 가서 쵸코를 더 집어왔다. 


"할 수 없지. 없어졌는데 대신 다른 거라도 줘야겠다."


자기도 달라고 쵸코를 연발하며 달라드는 후둥이에게 네가 뺏어가서 하나 더 준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재빠르게 손에서 낚아챘는지 선둥이는 뺏긴 줄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버릇처럼 마지막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쫙 벌려서 앞으로 내민 작은 손바닥 위에 쵸코를 얹어주었다. 뭐 대단한 상이라도 주는 것처럼. 받아가는 후둥이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입 옆에는 급하게 자기 입 크기 만한 쵸코를 쑤셔 넣고 먹느라 쵸코물이 흘러넘쳐 길이 나 있었다. 


후둥이는 누가 가져갈까 봐 손바닥에 얹힌 쵸코 껍데기를 얼른 벗겨 한입에 쑤셔 넣었다. 


"정말 대단하다."


번개처럼 재빠르고 날렵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 강한 의지로 제 몫을 하나 더 챙긴 후둥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세워줬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붕붕 대고 있는 선둥이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까 봐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걸 한 번에 다 먹냐."


아우. 날렵한 아이 쵸코 하나 더 준 꼴이 되었지만 이게 어딘가. 울고불고하지 않고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는가. 그럼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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