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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l 11. 2023

헤맴의 끝에서

도중에 하산해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제 곧 해가 진다며 경고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빠른 길로 가겠다고 통행금지 팻말이 있던 곳을 지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참을 헤매다가 버릇처럼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10분?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은데 겨우 10밖에 흐르지 않았다고? 고개를 들었다. 시커먼 나뭇잎들 사이로 점점이 반짝이는 별들이 보일락 말락 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별빛이 살짝씩 들어 희미하게나마 앞이 보일 것 같다. 등산을 할 때면 늘 시야가 뻥 트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곳은 왜 이렇게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는지. 


등산이라면 꽤나 해 봤다고 자신했다. 대학교 다닐 때는 등산 동아리에 들어서 수업도 빼먹고 산을 탈 정도로 돌아다녔다.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산은 잊지 않았다. 사내 동호회를 만들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주말이면 산을 탔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호기를 부리는 성질머리라고나 할까. 어쩌면 나를 달달 볶은 수환이 문제일 수도 있다. 개새끼. 오랜만에 거하게 쏜다는 말에 나갔더니만. 안부를 주고받다가 수환은 희령의 소식을 전했다. 그녀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술 때문에 혀가 꼬여 제대로 들리지 않는 발음 사이로 그날의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너 씨... 그러면 안돼. 왜 애 이거를 그렇게 만들고 어? 참나. 그날... 내가 뒤에서 야. 너 모르지? 봤다고 내가. 뭐냐. 쵁임을 지던... 가 "


수환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눈앞에서 흔들어대며 말했다. 사방에 침을 튀며 히죽대는 그놈의 얼굴을 갈겨주고 싶었다. 


"그거 너... 살인.. 살인죄..."


나는 급하게 일어나 수환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


희령은 수환과 결혼한다고 했다. 한 때 나는 그녀가 내 목숨보다 소중했다. 그녀의 옆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붙어 다녔다던 눈꼴시려운 녀석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혹을 떼어내기로 했다. 웃긴 건 내 옆에 그녀가 있게 되었는데 자꾸만 다른 곳에 눈이 가던 사실이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니 금세 식상해졌다. 


수환은 나에게 인생 끝내기 싫으면 가평 유명산에 올라갔다 오라고 했다. 죽은 그녀의 전남친 - 내 동기이기도 했던 이름이 뭐더라 - 에게 사과를 하고 오라던가. 결혼할 여자의 죽은 남친은 왜 신경 쓰고 지랄인가 지랄이. 여전히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그의 등판을 밀어내던 감촉이 기분 나빴다. 마시던 술잔을 그대로 두고 산을 향했다. 어쩐지 그놈이 산 근처에서 부를 때 느낌이 이상했다. 나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멀리 보이는 불빛을 따라 길인지 뭔지도 모르는 곳을 헤쳐 찾아왔다. 낡았지만 구석구석 손길이 가 있는 작은 통나무 집이 보였다. 그림처럼 굴뚝으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람이 사는 게 분명했다. 이런 산속 깊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니. 애써 눌러놨던 무서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사람을 납치해 와 죽이는 연쇄살인범이라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와 갇힌 정신 나간 소위 ‘미친놈’ 이라든지. 온몸에 소름이 돋아 돌처럼 굳어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되돌아갈까 망설이는데 주인의 머릿속은 안중에도 없는 뱃떼지가 꼬르륵하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생각해 보니 밥이라곤 아침 먹은 게 다였다. 안주를 먹기 전에 술만 들이켜다 나와버린 것이 후회스러웠다. 얼른 올라갔다 내려와 그놈과의 관계를 청산하려 했다. 서너 시간이면 될 일이었다. 


잠시만 들렀다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면 되지 않겠는가.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몸을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맛있는 냄새가 콧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뱃속이 아까보다 더 요동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통나무집의 문을 열심히 두들겨대고 있었다. 이런. 부끄럽지만 배가 고프다. 아무도 나오질 않는다. 굴뚝의 연기가 나오고 있다.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살그머니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열려 있었다. 


“여보세요. 누구 안 계세요?”


난로 앞에 있는 식탁 접시 위의 복숭아가 탐스러워 보였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에 내가 다 놀라서 혼자 펄쩍 뛰었다. 


“저기요.”


본 적 없는 커다란 복숭아를  나도 모르게 만지고 말았다. 매끈한 핑크빛 어린 살색의 둥그런 그것은 탱글 했다. 불빛을 받아 투명한 털이 송송 나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입만 깨물어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서 만지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묵직한 그것은 물컹한 느낌이 나면서 붉으죽죽한 것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악!”


뭐지? 나도 모르게 던져 버린 것을 쳐다보다가 쳐들고 있는 손에 시선이 갔다. 붉은 것이 잔뜩 묻어있다. 피? 순식간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역시 뭔가 이상한 거였어. 급하게 들어온 문으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어? 뭐야. 먹을게 제 발로 찾아 들어왔네?”


번뜩이는 눈빛의 사내가 문을 닫으며 나를 향해 씩 웃었다. 그의 반달모양을 한 입이 시커먼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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