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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Aug 16. 2022

너 좀 멋졌어!

다음날 비가 온다고 뉴스에서 한창 시끄럽던 날이었다. 바람이 꽤나불어서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구름 낀 흐린 하늘과 신나게 춤추는 나뭇잎들에 여름이 다 간 듯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방학을 맞아 아이 넷이 집구석에서 티격태격하는 통에 혼이 다 빠져나가려는 걸 꼭 잡아내느라 눈앞에 닥친 걸 해결하느라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생인 첫째나 둘째는 그나마 말이 조금이라도 통하니 뭔 일이 있으면 노느라 정신 팔려서 닫힌 귀에 콕 박히도록 외쳐주면 어찌어찌 해결된다. 문제는 2살 둥이들. 엄마한테 매달리고 몸 위로 달라드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내 말은 필요할 때는 듣고 그렇지 않을 때는 쌩~. 게다가 둘이서 노는 시간은 짧다. 짧아. 


둥이 맘 친구는 나에게 아이들이 조금 크면 같이 노느라 엄마는 거들떠도 안 본다고 했었다. 덕분에 자기 할 일도 하고 편했다고 했는데... 그때는 언제인가? 둥이가 태어나서부터 기다렸는데 쥐뿔. 그런 순간 비슷한 때조차 오지 않는다. 그날 역시 둥이들을 달고 땀 때문인지 줄줄 흘러내리는 안경을 연신 올려대며 계속해서 아이들을 향해 입을 놀리고 있었다.


"엄마!!! 매미!! 매미!!!!!"


정원에서 둥이들과 놀겠다며 나가 있던 첫째가 현관문에다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허구한 날 보는 매미가 뭐 대단하다고 저러나 싶어 심드렁하게 왜 그러는지 물었다. 이번에도 맨날 잡던 기름 매미(유지매미) 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 아직 허물을 벗지 않은 매미가 있다는 게 아닌가!?


'??!!'


원래 벌레를 싫어해서 몸에 작은 애벌레가 하나 붙어도 얼음이 되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매미의 경우 일본에 와서 보니 여름이라는 한 계절 속에서도 나오는 시기별로 다른 이름과 울음소리가 신기하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지금껏 딱 한번 본 매미의 탈피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웠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집 정원에 이제 곧 탈피할지도 모를 매미가 기어 다닌다니!!!!!!! 사진을 찍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으나 둥이들이 떨어져 주지 않은 탓에 첫째를 불러 제대로 찍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전화기를 맡겼다. 


"제대로 탈피할 수 있게 매달리기 쉬운 곳으로 옮겨줘" 


이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첫째는 정원에 있는 나무 난간 위에 올려줬다면서 찍어 온 사진을 보여줬다. 동글동글 구슬 같은 눈망울에 모난 곳 없이 둥그스름한 몸이 귀엽기까지 했다.



기름매미의 탈피 전 모습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거세지고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듯 하늘이 시커먼 구름들로 꽉꽉 채워졌다. 둥이들이 언제쯤 떨어질까 저녁을 먹으면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드디어. 때가 왔다. 둥이들이 밥을 다 먹고 누나와 할머니와 놀기 시작했다. 남은 밥을 잽싸게 먹어치우고는 미리 가지고 왔던 전화기를 챙겨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니 어디 있다는 건지. 어림짐작으로 찾은 곳에 내가 기대하던 모습은 없었다. 밥을 먹던 첫째를 불러내어 대체 어디다 놔주었냐고 되물었다.



난간 너머에 숨어 있었다!



"여기 있네"


망설임 없이 내미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 탈피를 준비하는지 나무 난간에 꼭 붙어 있는 녀석이 있었다. 찾기 힘든 곳을 찾아 숨어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멀리서 보면 얼굴이 빼꼼히 보이는 것이 앙증맞았다. 뭘 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있는 모습이 탈피 직전 같았는데 눈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땅 속에서 4년이나 웅크리고 있다가 나와서 허물 벗을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매미를 당황하지 않고 보자마자 안전한 곳으로 옮겨준 첫째도 기특했다. 벌레를 좋아하는 첫째는 단지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끌려서 쫓아다닌 것이 아니라 특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칭찬해줬다.


그날 밤은 소낙비처럼 갑자기 후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가 많이도 내렸다. 내심 저녁에 봤던 매미가 탈피를 잘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기상이변으로 너무 덥고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기도 해서 탈피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거나 다 나와서도 날개가 마르지 않아 어른 매미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를 본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 매미 잘 나왔어!"


눈을 뜨자마자 확인하러 간 첫째의 기쁨에 들뜬 목소리가 걱정했던 내 맘  싹 씻어줬다.


'캬아~ 매미야 너 좀 멋진걸? 첫째 너도 최고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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