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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보고

다시 흘려보고 싶은 눈물

by 진이


조용히 찾아든 나른한 오후 시간이다. 느긋하게 밀어 두었던, 두엄더미 같은 빨래를 돌리면서 익숙한 인스턴트 커피를 음미한다. 세상 어는 바리스타도 맛보지 못했을 나만의 ‘한잔에 두봉지’ 진한 다방커피를 내온다. 한가하지만 그렇게 또 멋쩍은 외로움을 지워 버리려고 살짝 정신줄 놓은 사람마냥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랴, 요샌 사는 게 워뗘? “

“눈물 쏙 빠지게 힘든, 천천히 죽어가는 날들이지, 그런데 오늘은… ”


혼잣말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더 짙어지는 그리움들.


집에 돌아와서 뒤적 거리다가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이름 모를 어는 사진작가의 사진이겠지. 투명한 이슬 방울이 푸른빛 강아지풀위에 그렁그렁한 눈물인냥 매달려 있다. 마치 시원한 얼음 빙수를 한 입 가득 물면 전해져 오는 그런 시원함이 일어난다.


제목은 강아지풀의 눈물이란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렇게 깨끗한 눈물을 흘리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 사연 없이 하품하다 그저 흘러나오는 눈물처럼 의미 없지만 보는 사람이 사연이 많아서 ‘눈물’이라고 표현해 놓은 것 일까? 알 순 없지만 작가의 눈을 통해 드러난 강아지풀의 눈물은 아프기 보다는 투명한, 그리고 시원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오래전 심노숭이라는 선비가 ‘눈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써놓은 글이 문득 생각난다. 조선의 한 선비가 표현한 눈물과 지금의 사진작가가 표현한 눈물은 또 다른 맛이 난다. 그럼 내가 느끼는 눈물이란 무엇인가? ‘눈물’이라…….


흘려본지 오래된 것 같다. 술에 잔뜩 취해 업 되서 흘리는 눈물 말고…….

어디 한 구석이 까져 나가는 지도 모르고 술에 들떠서 ‘니나노 판’을 벌리곤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야 아들놈의 이런 행각을 모르시지. 아신데도 집안 대대로 흘러내리는 피의 진함이라 어찌 해볼 도리조차 없다고 생각하시겠지. 어느 순간이 지나면 술이 나를 마시고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면 가슴바닥에 쌓여있던 뭉클한 것이 솟아오른다. 최근이라면 나의 책상에 쌓여 있는 일거리들과 돌아오지 않는 회신 자료들하며, 멀리 보자면 구구단 못 외운다고 벌세우시던 선생님하며…. 구구하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 오래 살아오지 않았지만 쌓인 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민감하기 보다는 쪼잔 한 속이라 그렇겠지. 그러니 눈물 흘려도 그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알코올까지 혼합되어 있으니 영 순수한 눈물과는 다른 것이다. 그 속에는 내가 없고 술이 달구어 놓은 별 볼일 없었던 미지근한 감정들이 불쑥 얼굴을 내미는 것이고. 그럼 술 먹고 업 되서 흘리는 눈물은 눈물이라고 부르기에는 함량 미달인 것 같다. 당연하지. 가만히 떠오는 기이 있다.


20살 때, 기차 안에서 울던 일이 생각난다. 지방 사람이라 세련되지 못하게 기차간에서 훌쩍거리며 눈물 닦던 일이라…


막 대학에 들어왔다. 그리고 막 집을 떠나왔다.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지는 순간이다. 뭐, 긴 수학여행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에겐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 소년으로 집을 나가는 가출소년이 아니라 가출청년으로 전환되는 것. 부모 곁을 떠나는 일이 예상을 뛰어넘는 의미가 되었다. 이제 부터는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하는 훈련을 하는 나이다. 솔직히 무섭다.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힘이 빠져 버린다. 그래도 객기는 남아 있었다. 한동안 못 보게 될 가족과 친구들. 그냥 그러려니 했지. 보면 좋고 못 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쨌든 흥미로운 대학생활이니까. 여기 저기 신기한 곳을 쫒아 다니고 밤이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로 밤을 보냈다. 아침에 깨고 나면 멋쩍은 마음에 서로를 태양처럼 바라보며 피하려 하기도 하고, 이미 하늘 가득한 밝은 해를 대할 자신이 없어 해가 지는 오후까지 스스로 피해 있기도 했다. 반복되는 망나니 생활에 후천성 광합성 결핍증상을 보이게 되면서도 오히려 점차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파리하게 시들어가는 식물들도 한줄기 빛이라도 더 받기 위해 끊임없이 태양을 향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해도 될까?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은 태양의 따뜻함을 가진 내 가족이었다. 말뿐인 고상한 진리를 찾기 보다는 내 가족을 찾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결정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고생스럽게 긴 행렬을 이루며 명절 때 마다 고향에 찾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고생하더라도 찾아가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복잡한 서울생활과 마치 낭만을 즐기는 것처럼 온갖 폼 잡으며 노는 일에 지쳐버린 것이다. 그렇게 노는 게 지쳐서 한동안 집에서 또 놀았다. 한번 집에 내려오게 되면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깊은 아쉬움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집에 다시 돌아오던 날 그새 낯설어진 고향풍경들이 이상했다. 버스에 올라타 주위를 관광하는 외국인이라도 된 것처럼 익숙했던 것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변한 것은 단순한 거리의 풍경만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 얼굴이 변해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았는데 아버지 머리숱이 많이 줄어들게 보인다. 어머니 머리엔 흰머리가 보이고.


왜 보지 못했을까?


그동안 같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마음까지 들어온다.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는 걸, 그 시리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다시 짐싸서 올라오던 날 주책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모자로 가렸다. 감기 걸렸다고, 그래서 콧물 나서 훌쩍거린다고, 그렇게 말했다. 마중 나온 누나가 사준 빵하고 우유를 먹으면서 기차간에서 눈물을 닦아냈다. 모처럼 내려왔는데 감기 걸려서 어떡하냐는 말이 머릿속에서 내내 맴돌았다. 난 그날 감기가 걸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콧물이 아닌 눈물이 흘렀다. 나의 말은 무슨 뜻 이었을까?

가끔은 눈에서도 콧물이 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였겠지. 아마,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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