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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그 불그스러운 물이 가슴에 배어온다

터놓고 먹어봅시다

by 진이

스름한 국물이 보글보어 넘치고, 흘러 넘치는 국물을 따라 고추,마늘 등등 여타의 조미료가 애타게 눌러 붙는다. 여기에 투명한 빛을 내는 수제비는 꼴깍 침을 삼키게 한다. 빠질 수 없는 소주 한잔을

캬~


들이켜 주어야 비롯소 국물을 떠먹을 시기가 온다. 칼칼한 국물 한 모금에 데워진 몸은 석고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핏기를 가져다 준다. 다시 한잔을 들고

캬~


이제 가슴으로 감자탕 그 불그스러운 물이 배어온다. 수제비 한입 떠넣고 찰지게 돌아가는 그 식감이란~ 눈치보지 않고 자기 그릇에 떡하니 올려 놓는 두툼한 등뼈. 젓가락으로 들기에는 팔이 너무도 아픈 딱 그정도의 뼈다귀라야 한다. 두손으로 잡고 뼈마디마디에 숨은 진짜 고기맛을 찾는 것이다. 조금은 지저분해보이는 식당을 찾아들어 역시나 조금은 지저분해 보이는 식탁위에 한 솥가득 감자탕이 익어가는 소리를 내는 저녁. 그 저녁에 가슴에 품어 두었던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처음 감자탕을 즐기게 된 것은 아마도 서울에 오면서 부터인 것 같다. 사촌 형님을 따라 한없이 배고파 보이던 친구들을 대동하고 감자탕 골목으로 들어갔다. 수 많은 원조집들을 뒤로 하고 "더줄께" 소리에 금방 자리를 잡았다. 수북하게 쌓인 뼈다귀와 또 그위에 쌓인 당면과 시래기들. 그릇이 넘치는 풍경에 흐믓한 미소. 부모님 세대처럼 배고픔을 아는 세대가 아닌데도 입들이 많아서 인지 각자 무던히도 먹어됐다. 어찌생각해 보면 굵은 감자가 통으로 들어가고 등뼈를 발라먹어야 하는,왠지 세련되지 않아보이는 모습이, 걸쭉한 국물처럼 걸러지지 않은 사투리에 촌티를 벗지 못한 파릇파릇한 시골 아이들의 거친 억양과 잘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감자탕은 학생이란 처지에 추렴하기 알맞아 감사하게 먹을 수 있는 고마운 먹거리 였다.


학생시절을 벗어난 지금. 그때와 비교하면 살림살이가 좋아져 까짓 감자탕쯤이야 하며 폼 좀 잡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 하루 쫏기듯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각자 소주잔 하나씩 들고서 채우지 못한 실적과 미운놈 이야기로 안주삼아 떠들어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둘러앉아 체온으로 데운 술한잔과 마음으로 손잡아 줄 사람이 없다.

변함없이 고유한 맛으로 몇십년을 이어온 원조집이라며 자랑하는 곳들은 많은데, 그자리에 같이 감자탕 국물로 속을 데우고 술한잔 기울여 터놓고 말할 사람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애들아~ 잘 들 살고는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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