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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그냥 한잔 했어요

by 진이

슬픈 일이 있나요? 술 풀 일인 건가요?

아님 그저 기분이 좋아 술 한잔 한건 가요?

붉어진 뺨 위에 후욱 후욱 내뿜는 숨이…


"아~ 소주에 고기 구워 드셨군요"


오늘은 들고 나온 지갑이랑 핸드폰은 잘 챙기셨나요? 당연히 정신줄도 놓지 마시구요. 너무 자주 주위를 둘러보지는 마시구요. 내려야 할 곳은 방송에서 나오니까요. 그리고 그런 소리는 신기하게 잘도 들려요.


앗! 자리에 앉지는 마세요.

그럼 바로 취침이니까요. 옆에 앉은 이름 모를 분에게 '나 고기 먹었어요' 하고 자랑하고 싶겠지만 좀 자제하시고요.

요즘은 베지터리언이 대세라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알죠~


Are you vegetarian?


No. I'm korean.


혼자 웃지 말아요. 진짜 이상해 보여요.


오늘 하루 이렇게 지하철에 실려가더라도 본인의 뿌리는 잊지 말자고요. 자리가 텅텅 비어 있더라도 두 다리에 힘 불끈주는 것 잊지 마요. 당신은 아직 튼튼합니다. 아직 자율 적으로 숨도 쉴 수가 있고요. 졸린 눈을 부릅뜨고 정류장을 노려 볼 시력도 가지고 있답니다. 까짓, 겨우 1시간 30분 거리일 뿐인걸요.


자자자~ 눈에 싸ㅡㅇ커풀 만들지 말고요. 피곤한 것 보다 느끼해 보여요. 전 당신이 조금 피곤해도 이렇게 우뚝 서서 가는 게 좋아요. 갈아탈 역이 점점 다가오네요. 이때가 첫 번째 관문이에요. 한정거장인데 졸음이 몰아치고요 없던 자리도 갑자기 나타난답니다. 자칫 자리에 앉았다가는 아이고.... 택시비만 휴~ 신호위반 벌금은 잘못 했다고 뉘우치기라도 하지. 이건 쌩돈 뱉어낸 것 같아 속이 쓰리답니다. 아쿠~ 이렇게 중얼 대다 보니 벌써 갈아 타야 할 서울역이네요. 잘했어요. 1차 관문을 무사히 넘겼네요.


숨 몰아쉬고. 흡!

갈아탈 때 깨끗한 모습으로 가는 거예요. 그렇죠. 최대한 시끄럽게 북적이는 곳으로 가서 내가 아닌 듯하는 거예요. 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킁킁.. 음 이 사람들 뭘 먹었는지 하여튼 지대로 먹었네요. 달콤한 냄새와 기름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냄새를 가져왔어요. 역시나,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 사람들 위아래로 훑어 보는 거예요. 여기에 안 볼 때 손가락질도 괜찮아요. 물론 들키면 안 되어요. 들키면 그 자리에서 아닌 척 디스코 한판 해야 해요. 그럼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하는 거 알죠? 눈이 점점 감기네요. 다리도 아픈 것 같고. 잠시 몸을 눕히고 쉬고 싶은 그 기분 저도 알죠~ 어허. 눈 떠요. 깜박하면 취객일 뿐이에요. 오늘 기분 좋게 매너 좋게 나왔잖아요. 으구 으구 고개 똑바로 해요. 다른 사람 문자는 왜 보려고 해요.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다고요. 그래요 아까처럼 심호흡! 흡!


아~~ 고개. 고개 제자리. 전화소리 엿듣지 말아요. 같이 웃지 말고요. 민망하잖아요. 아직 가야 할 시간이 30분이 족히 남았네요. 슬슬 술기운 몰아내야죠.

아뇨. 아뇨... 지금 거칠게 심호흡하란 말은 아니에요. 입 다물 구요. 코로 깊은숨을 마시고 다시 깊은 숨을 코로 내 쉬고요. 사람들이 한적해질 때까지는 조금 불편해도 참는 거예요. 앞자리의 청년 건드리려고 하지 말아요. 참 힘겨워 보이잖아요. 밥은 먹고 다녔을까요. 갑자기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네요.


이런… 우리 동지 잖아요.


허연 얼굴에 속았네요. 우리처럼 1차관문을 못 넘기고 자리에 앉아 잠들었군요. 이 시간엔 택시. 기사 아저씨랑 잘 이야기 해봐요.

잠깐. 이사람아! 장갑도 벗고 목돌이도 벗고 가네그랴. 몸이 뜨거워서 그런건 알겠는데 그나마 벌건 얼굴 감추지도 못하잖아요. 아직 빠지지 않은 고기냄새와 소주 냄새는 생각안하는거에요?

에휴~ 어쩔 수 없죠. 잘 들어가요. 밖에서 자면 입돌아가요.


남 걱정 하지 말구요. 집에 도착하기 전 쉼 호흡하는 거에요. 코로 깊은 숨 들이 쉬고, 옆 사람 눈치 못채게 입으로 길게 빼내세요. 입안에 남아있던 알콜 냄새를 날려버려야죠. 기왕이면 졸고 있는 남자 앞에 가세요. 그렇죠. 응용 동작! 손가락질. '나는 취하지 않았고 여기서 졸고 있는 이 청년이 마셨습니다' 라고 표현하는 단계. 이거 참 술먹고 지하철좀 타 보셨나 보네요. 아차차~ 좋다고 입밖으로 소리내 웃으면 안돼요. 아~ 에러네요. 벌써 눈치들 챈 것 같은데요. 문앞으로 자리 옮기시구요. 지하철 노선도 뚫어지게 보세요. 심각하게요. 이제 목적한 도착지까지 두 정거장. 쫌만 더 힘내자구요.

홧팅.


길다란 그림자가 지는 화려한 가로등 조명들 아래 집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하지요. 돌아가 두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곳이에요.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는거죠. 자~ 묵직하고 저력있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나는 딱 한잔 마셨고.. 안마실려고 했는데 억지로 먹일려고 해서 너무 힘들었어. 나는 집까지 걸어와서 다리가 퉁퉁 부었고…"


"조용해. 자"


"네~"



술 마시고 '자기'를 흘리고 오던 날 지하철에서

메모해 두고서 잊어 버렸던 끄적거림.


내 모습이 아닌 듯 말하지만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내 모습.

자기 객관화..

이거 안좋은 것 같아..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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