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해피야. 가자
말 그대로 몰라보게 가벼워졌다.
한 손으로 가볍게 들리는 무게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 부산 가는 거야
발이 쑥쑥 빠져서 넘어졌던 거 기억나지?
너무 오랜만에 신나게 뛰어서 돌아올 땐, 걸었다가.. 안겼다가.. 했잖아
이젠 넘어질 일은 없겠지만....
들어주던 말던 부산 가는 짐을 챙기며 말을 이어갔다.
알아듣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버릇이 되어 버려서...
식탁 바닥에 반찬을 흘렸다.
후다닥 고개를 숙여 반찬을 주웠다.
둘째가 밥을 먹는 자리는 어느새 밥풀이며 반찬이 엉켜 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아~" 하고 짧게 내뱉었다.
식탁 아래, 누군가의 발 옆에 대기하며 떨어질 밥알과 반찬을 노리는 해피
가끔 경계를 넘어 검은 코를 들이밀며 날름 반찬을 "쑥" 해버리는 통에 애들도 울고, 나도 울고, 온 식구가 울고..
습관이 되어 버린 작은 행동들과 문득 떠오르는 작은 일들이, "부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것도 곧 익숙해지겠지.
처음 널 봤을 때 생각보다 커서 놀랬다.
강아지라고 했는데...
짖지 않는다고 하더니 날 보며 짖었다.
안 문다고 하더니...
그런데
한번 더 볼 때마다 조금씩 작아지더라.
지나가던 동네 아이들이 "삽살이"라고 부르던 날, 이발기로 빡빡 털을 밀며
"털 때문에 그런 거야. 넌 코카야 코카"
를 반복해서 말해줬다.
싫다고 몸부림치는라 훌쩍 두어 시간이 흐르곤 했다. 손길을 완전히 받아들이질 않아 더 힘들 었나 보다. 한바탕 힘을 쏟고 목욕까지 마치고 나면..
요렇게 작은 강아지인데..
"개"라니..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좁혀지는 거리를 의식하게 될 때쯤, 먼저 내 발아래 머리를 기대고 있는 모습이 어느새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소파에 올라가려 도움닫기를 하다가 넘어지던 모습이 시작이였을까..조금씩 흐려지는 두 눈과 일어 서기 위해 몇 번을 헛발질하던 모습들.
대소변이 묻어 동네 노숙 강아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그동안의 귀찮음을 떨쳐버리고
"오늘은 깨끗하게 털도 밀고 목욕도 하자"
고 했던 날.
그날 그렇게 털을 밀면서 좀 더 귀찮아할 걸 그랬나 하고 혼자 갈등했다. 한참이나 가벼워진 몸무게만큼 수북한 털들이 잘려나가며 맨살이 드러날 때..
앙상함을 넘어서 부서지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음식보다는 겨우 목을 축일 정도의 물만 마시던 며칠이 지나갔다.
해피야.
넌 알고 있었던 거지? 혼자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
5월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지던 여유 있는 아침.
누워만 있던 해피의 모습을 살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어 안심하며 배변 패드 위에 눕혔다.
머리와 몸을 쓰다듬다가... 금세 젖은 배변패드를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찾아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작은 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해피 자고 있어. 토닥토닥해줘. 잘 자~ 하고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어 잠을 잔다고 말했다.
토닥토닥 손을 놀리며 뜬금없이 던지는 둘째의 말
가족이야. 가족
어느새 첫째도 다가와 토닥토닥해주고 있었다.
더 늦출 수 없어 두 딸을 불렀다.
"해피 이제 하늘나라로 갔어"
"왜?"
뒤를 이어 두 딸들의 곡소리가 가득했다.
애견 화장터를 예약하고 식구들과 차를 타고 갔다. 마지막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연휴 아침에 떠나는 배려를 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해피와 마지막으로 함께 놀던 바닷가에 갔다.
해피야. 잘가. 고마워.
안녕을 고하는 짧은 말들을 남기고 돌아왔다.
일상은 또 그렇게 반복된다. 채워짐과 경이로움, 상실과 익숙함이 반복된다. 다만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대신 간간이 떠오르는 기억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나도 우리 가족들에게 채워질 수 있는 많은 기억들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