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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도 그렇다

끊지 않고 풀어내기

by 진이

악! 소리 난다.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머리끈들이 분노마저 불러온다.


내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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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뭐 그렇다..


특별히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하고 입술이 앵두 같은 그런 딸을 바라는 건 아니야..

옆집 누구네 딸이네 조카네 사촌이네 하며

3살에 까막눈에서 벗어나고 줄줄이 구구단을 외우고 영어를 넘어 중국어까지 하는 그런 딸을 바라는 건 아니야..

혹시 아빠한테 할 말이 있는 거야?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거야?

몰래 비타민이라도 까먹은 거야?

없으면 왜 그러는 건데.. 응?

아빠가, 우리 딸들한테 떡을 달래 밥을 달래.

다른 것도 아니고 정리 하나만 해주면 되는 건데..

응?


벌써 다 풀렸네.

몇 번 구시렁거리고 나니까.. 이렇게 풀려 버리네.



아빠가 잔소리하는 사이에 나란히 널브러져 잠들어 버린 두 딸들아...

산발이 되어버린 머리 스타일에, 끝에만 살짝 걸려있는 머리끈들이 금방이라도 쑥 빠질 것 같네.

일찍 찾아온 더위에 당당히 맞서며, 내복에 장갑에 털모자를 꺼내 입은 노숙자 느낌의 딸들아...


잠든 모습이 왜 이리 예쁘니


듣던 말든 아빠는 잔소리가 끊어지지 않는구나.

잔소리가 술술 풀려나오는구나.


엉키고 설킨 머리끈을 풀면서 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렇다.


원하지 않았는데 엉키고, 어느새 설키는 관계들에 당장이라도 끊어내 버리고 싶은 날 선 감정들.

그 감정들이 부딪혀 만든 날카로운 파편에 끊어지고 상처 난 자국들.


아빠는 그런 자국들을 남기고 싶지 않아.


풀어보자.

풀다 보면 풀리겠지. 더 힘들 때도 있겠지. 시간도 더 들겠지. 당연하지.

그래도 풀어보자.

머리끈이 풀리듯이 그렇게 어느 순간 다 풀릴 거야.


자니?

그래 아직은 몰라도 좋아.
사람 사이도 그렇다. 우리 서로 잘 풀어보자. 잘 자라.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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