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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할매, 마이 파이소

오천원 줄랑교~

by 진이

자갈치 할매


왠지 모를 강한 억양의 단어다. 한치 두치 쌓였을 세월과 한치 두치 쌓였을 웃음 그리고 눈물. 왠지 모를 감정의 단어다. 그러게 말이다. 자갈치와 할매의 단순한 결합인데도 말이다.


자갈치라고만 하면... 뭐...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알만 한 하나의 지명이다. 저마다 의미는 다르겠지만, 자갈치 할매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나와 같은 느낌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자갈이 많은 해안지형이라는 밋밋한 자갈치의 의미보다,

농어목에 속하는 어는 물고기의 이름이라는 말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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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자갈치라는 생선을 본 적이 있었던가?
꽁치나 삼치 친구 정도 되는 아이인가?
부산에서만 몇십 년을 살았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가…
할매

할매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이 더욱 큰 이유일 것이다.


자갈치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속에서 풍기는 바다내음과 생선 비린내, 걸쭉한 억양의 거친 목소리. 그리고 깊게 패인 주름. 그게 바로 자갈치 할매의 인상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부모님이 있고 내 친구가 있는 쉼터에 돌아왔다. 잔뜩 흐린 날씨는 결국 비로 변했고, 설날이라는 대목을 앞두고도 이렇게 한산한 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요새 날씨는 잘 안 맞는데”라며 그래도 설마 설마 하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내리는 비를 다 받아들여야 했다. 개중엔 온몸으로 거부하며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도 있고 비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유유자적하며 산책하듯이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설날이라는 마음속 여유가 만들어낸 것일까? 그야 알 순 없지만 준비해 둔 우산을 받쳐 든다. 그새 서울 물을 좀 먹어서 인지 귀에 들리는 조금은 낯선 할매들의 대화가 들린다.


“이거 억. 수록 맛있데이~”


금방이라도 “억” 하고 숨이 멎을 것 같다. 얼마나 맛있길래 억하고 숨이 넘어갈 듯이 말하는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빛바랜 양은 냄비에 약간 불은 라면을 그릇에 나눠 담고 있는 할매가 있다. 친구처럼 보이는 옆 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길바닥에서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해온 사이일 것이다. 김치도 없고 흔히 말하는 “다깡”도 없는 길바닥 한 구석에서 차려낸 진수성찬을? 내 눈길은 무심한 듯이 지나쳐 갔다. 억세기만 할 것 같았던 할매들도 이런 한산함 앞에서는 지쳤버렸나 보다. 뒤이어 들리는 “이번 대목에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대화에 괜히 모르는 척 고개를 더욱 숙이고 걸어간다.


“오천 원 줄랑교?”


뜬금없이 들이대는 어는 자갈치 할매가 고개를 돌리게 한다.


“여기 전부 삼천 원”이라며 단감을 팔고 있다.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감 한 줄 골라 볼까 하고 멈춰 서본다.


“오천 원 줄랑교?”


또 한번 들이댄다. 방금 까지 삼천 원이라고 하더니. 오천 원은 또 뭔가 말이다.


“전부 삼천 원 아니에요?”


그새 서울 물 좀 먹었다고 어색한 서울말을 던져보았다.


“다 삼천 원. 오천 원 줄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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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어디서 왔는지 또 다른 할매가 다가와서, 여기 비닐봉지로 포장된 것은 삼천 원짜리고 바구니에 담아 파는 것은 오천 원짜리라고 설명을 한다. 삼천 원짜리 감을 골라 담는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서 건넨다. 할매 배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잔돈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장 한 장 거친 손으로 펴낸 거스름 돈을 건네주면서,


“땡큐~”


참 짧은 단어로 손님에게 작별을 고한다. 어디서 익혁는지 제법 근사한 발음으로 “땡큐”을 말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다. 오래간만에 꾸미지 않고 웃어보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자갈치 그리고 자갈치 할매에 대한 인상을 떠올려 본다. 자갈치 할매에게서 느껴지는 바다내음 그리고 세월을 견뎌온 무던함, 능청스러움 그리고 툭툭 던지는 짧은 영어단어. 오늘처럼 “땡큐”라는 말이 정겹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자갈치 할매.


이 단어가 가지는 여러 가지 상념들을 접어 두고서, 잠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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