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와 어린 딸들의 시간

통곡의 시간,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다

by 진이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당연하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혼자서 시뮬레이션해보며 사무실로 복귀한다.




쭈뼛거리며 사무실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훤히 다 보이지만 노크를 한다.

팅팅

철재 프레임의 경망스러운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sticker sticker
어 왜?
sticker sticker
집에... 좀.... 일이 있어서.... 먼저 좀 퇴근하겠습니다.
sticker sticker
가~ 근데 무슨 일인데?
sticker sticker
집사람...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그래가지구.... 애를 봐야 해서...


일 년에 2~3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하는 안사람의 직장 회식 날이다. 몇 주 전부터 미리 시간 약속을 했기에 오늘은 꼭 일찍 가서 안사람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동안 호기롭게 말만 뱉어내고 번번이 '회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은 이제 그만 해야 하니까.


부랴부랴 책상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해 간다. 어린이집에서 '꼴찌'로 남아 있지 않게 좀 더 서둘러야 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첫째는 다행히 끝에서 두 번째로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미션 클리어.

둘째는 첫째 손을 잡고 여유롭게 찾아갔다. 이제 들어가서 이유식을 만들고 목욕을 시키면 연달아 두 번째, 세 번째 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다.


아내가 보고 싶다.


결국 통곡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유식에 들어갈 당근을 다지는 동안 첫째의 폭풍 잔소리와 요구사항에 안절부절못하며 내 마음도 조각조각 나고 있었다.

너 자꾸 이러면 엄마한테 다 이른다

내 안의 '피곤에 쩔은 악마'가 나올랑 말랑~~


둘째는 조리대 앞에 있는 내 두 다리 붙들고 머리를 사이에 집어놓고 '꺼이꺼이' 울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와 간간이 해석 가능한 '엄마', '아빠' 두 단어가 반복된다.

어찌어찌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고 목욕물을 받으며 세 번째 미션을 준비한다.


아내가 보고 싶다


둘째를 업고 첫째와 노래를 부른다. 무한 반복되는 '악어때'를 부르며 거실을 하염없이 걸었다.

책 읽어 달라는 첫째와 세 권만 읽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한 권, 한 권 돌파하고 있으면 어느새 둘째가 책을 들고 와


이거

하고 책을 툭 던진다. 말이 다소 짧은 경향이 있는 것은 아직 20개월이 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내 기분 탓이 아니겠지..


아내가 보고 싶다


목소리는 점점 갈라지고 광활한 거실을 걸으며 다리가 풀려갈 즈음 첫째가 고맙게도 잠들어 준다. 이쁜 것~

눈치 빠른 둘째는 외동딸 놀이를 시작하기에 이제 '징징' 거리지 않고 내 옆자리에 착석한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삑삑삑'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아이도 미소가 번진다


늘상 이런 일을 혼자서 처리, 아니 버티고 있는 아내님.


사실 '안사람 회식이라 아이를 봐야 해서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나올 때, 동료들 얼굴 보기가 겸연쩍었다. 늘 야근과 예고 없이 다가오는 회식을 함께 하는 동료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컸으니까.

그런데...

아내는 늘 날 기다려 주고 있었다. 어린 두 딸들과 '통곡의 시간'을 매일 매일 지내면서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귀가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인데 누가 더 편하고 누가 덜 편하겠는가. 아직도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안사람의 몫이라고 미루고 있던 내 모습을 나에게 들 킨 하루였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더 생겨나고,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자라난다.

그동안 잘하지 못해던 말을 전해 본다.


당신은 늘 고맙고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 옆에 있는 당신을 사.. 쿨럭.. 음.. 사.. 쿨럭..


감기인가? 기침이 나서.. 안되겠네.. 이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