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품으로 돌아가던 중에
북적거리는 지하철 안 풍경은 역시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녀지간이 있고 그 옆에 멀뚱하게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아빠
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결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가끔 참 쑥스러움을 잘 타는 아이 같을 때가 있다.
창동에서 수원까지 가는 길이라 이들 가족들을 쭉 지켜 볼 수도 있을것 같다. 딸이 크면 어머니의 친구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티격 태격하는 것 같으면서도 싫지 않은지 한시도 쉬지를 않는다. 아니지, 이들 모녀는 이렇게 수다로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역시나 그 옆엔 멀뚱하게 아버지가 한두번씩 옆을 돌아다 보곤 한다. 가끔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눈을 움직이며 몇번씩 지나온 것과 지나갈 정류장을 세어 보기도 한다.
쑥스러운 소년처럼.
싸우는 것 같으면서도, 어머니의 표정은 해바라기 마냥 밝게 피어있다. 옆에 있는 무뚝뚝한 남편보다, 어쩌면 더, 어린 자식을 의지하며 살아 왔을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들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귀에 쏙 들어온 모녀의 이야기가 있다.
"엄만 친구 없어? 나가서 친구들이랑 좀 놀아"
"있었는데 너 키우느라 친구도 없어졌어. 니가 내 친구 해주면 되지"
아이들 뒤치닥거리로 정신없이 보냈는데, 어느날 전과 다르게 시간이 유독 더디게 흘러 가는 순간이 와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자식들.
그렇게 문득 장성한 아들, 딸은 자기 살길을 찾아 가고 덩그라니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해하기도 할 것이다. 그 덩그라니 남은 집안에서 이 시간을 함께 보내줄 누군가가 그리울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잔소리를 늘어 놓을 수 있는 딸아이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한 아들 보다는 딸이 더 살가울테니까. 물론 곰같은 딸이라면 타는 속을 어찌하겠냐만은..
한참을 가서야 아버지가 입을 뗀다.
내리자. 어서
한 정거장 정도 남은 것 같은데 '벌써 일어나는냐'고 어머니의 눈길이 남편의 등뒤를 훑는다. 심술이라도 났는지 뚱한 아버지의 모습. 사실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주고 받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더 익숙한 부모님들의 대화 방식이다.
이제 막 지하철에 올라선 사람들에겐 '싸우는 거 아닙니다' 라며 설명해줘야 할까?
수줍은 소년과 함께 하는 어머니!
버리지 말고 꼭 데리고 다니세요. 아버지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보이니까요.
서울역을 좀 지나자 한결 한가로운 지하철 풍경이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수원으로 이사온 누나의 집에 잠깐 올라와 계신다. 아들집보다는 훨씬 맘 편하게 계실거다. 우리 어머니도, 우리 큰누나도 이제 친구처럼 지낼 그런 시간이 가까워져 가고 있는게 보인다. 어는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도 누나처럼 어머니와 끊임없는 대화를, 서로를 이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될까..
엄마는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항상 밥을 남겨 주었으니까
엄마는 아픔을 모르는 줄 알았다
아프다고 말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서 알았다
엄마도 배고팠구나
엄마도 아팠구나
어머니 기억속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타령같은 잔소리가 변주를 하며 들어온다. 오늘은 잔소리가 싫지 않다. 좀 더 가까이 있을때 한번 더 손을 잡아 드리는 것이 왜 이렇게 쑥스러울까.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잠들었다.
아직도 수줍은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