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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봉다리' 케리어

그 왜 있잖아.. 노란 봉다리.. 큰 거.. 그거

by 진이

노란 대형 비닐봉지 하면 뭐가 생각날까?

난 바로 대답할 수 있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한때 길바닥을 휩쓸었던


*-마트 봉다


직장인으로 시작하던 첫날,

신입사원 연수원에 들어갈 때 나의 든든한 캐리어로, 교육을 받던 동안은 개인 사물함으로, 별 사고 없이 무사히 수료하던 순간 다시 나의 캐리어로 변신해준 고마운 존재다.


처음 노란 비닐봉지에 갈아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넣을 때

양말 한 짝에 긴장감 한 짝 챙기고, 캐주얼 한 벌에 기회와 선택에 대한 갈등과 약간의 두려움을 넣어두고, 모이는 장소를 프린트해둔 종이를 집어 넣으면서 몰래 희망도 넣어 두었다.


함께 챙겨 두었던 긴장감, 갈등, 두려움, 그리고 희망.

그 노란 비닐봉지에 챙겨두고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신입사원 연수원 교육 기간(그땐 그게 꿀 인지도 몰랐지만…)동안 아침에 눈을 뜨면 반장-동기중 가장 늙은이, 그래봐야 30살-을 따라 구보를 했다. 12월 추위 속에 트래이닝복을 입고 떡진 머리를 하고 나왔다. 첫날의 말끔한 얼굴들은 사라지고 더욱 인간다워진 동기들의 모습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걸 느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밥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졸린 건 당연한 거고. 졸지 말라는 교관, 아니 인사팀 선배의 말이 있었지만 교육 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한없이 강사의 이야기에 긍정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얼핏 해드뱅을 시도하는 듯해도 꿈에서라도 열심히 강의를 듣는 것이라고 변명해본다. 가끔은 살짝 풀린 눈으로 아이컨텍도 시도한다. 이런 게 교육의 효과인 듯하다. ‘차라리 일을 하게 해줘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지난 일들은 다 그렇듯이 시간은 훌쩍 가버렸고 연수원을 수료하던 날에 발견했던 노란 비닐봉지 속의 커다란 빵.

뭐지? 이 거대한 빵은?


이렇게 커다란 빵을 난 가져온 적이 없었는데… 이리저리 생각을 돌려 보니 버스를 타고 연수원에 오던 날 아침 대신 나눠주었던 빵이었다. 거의 일주일을 그렇게 숙성과정을 거치고 이제 막 봉지를 찢고 나올 만큼 잘 자라 준 것이다.


다시 노란 비닐봉지 속에다 가져왔던 옷가지를 챙기고 함께 가져왔던 감정들도 다시 챙겨 두었다. 같은 숙소를 쓰던 102호 동기들에게 원조 받은 와이셔츠 두벌에 동기들에 대한 마음도 집어넣었다. 이제 친해져서인지 나의 캐리어를 보고 한 마디씩 한다.

그거 쓰레기야?


부풀어 오른 빵까지 위에 올려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제 친해졌다 이거지~


돌이켜보면 그때 노란 비닐봉지 안에 내가 담아 왔던 꿈들로 지금 이 시간을 걸어오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자신의 부서로 혹은 다시 찾은 자신의 꿈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동기들도 있다. 그 동기들도 자신만의 꿈을 나처럼 자신만의 노란 비닐봉지 안에 담아 두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 일에 파묻혀 한숨에 묻혀 갈때면, 문득문득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내가 있는지, 관연 대체 불가능한 업무를 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때도 있다. 이런 생각마저 사치스러운 한가로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에 노란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을 꾼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노란 비닐봉지에 꿈을 담아 두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얼 담아 두었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는 새 전형적인 “아저씨” 가 되어 버렸지만, 숨길수 없이 불쑥 튀어나온 배만큼이나 낯선 나의 꿈 봉지를 떠 올려 본다. 그 속에서 예전처럼 유통기한을 넘긴채 숙성되고 있을 꿈을 꺼내 놓으려한다.


입버릇처럼 되새겨 본다. 좋은 세상이 올 거니까 난 더 행복해질 거다. 남들 몰래 꿈을 담아 두는 비닐봉지도 있고 말이다.

힘내자! 직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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