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변했지만 가끔씩 그리운 날들 (10월 어는 날)
학교 도서관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어느 날의 메모.
많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마음속 여유가 있던 날들 이었던 것 같다.
그때로 돌아가라면, 뭐...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다시 열어보는 일기장처럼 전과는 조금은 다른 나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덥다.
여기 창문 사이로 비치는 풍경엔 반팔 소매가 주종을 이룬다. 자판기에서 뽑아낸 차가운 깡통을 얼굴에 문질러 본다. 한낮에 열기가 아직 내 얼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정적만 가득한 걸 알게 되어 고개를 들어보니,
방학 끝 무렵에 시원스럽게 울던 매미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걸 알았다. 짙어진 푸르름이 전보다 무게 있게 주위를 감싸고 있어 이제는 가을이 와 있는 걸 알게 되고 왠지 모를 아쉬움이 더해 온다.
사람들의 행렬이 뜸해지고 나무벤치에 앉았다.
그림처럼 눈앞에 그리운 풍경이 그려진다. 아니 기대한다. 거기에 귀뚜라미 악단을 덧붙인다. 고작 음악이라고 해봐야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는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네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같은 곡만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선다.
부르고 답한다.
날개를 비벼서 내는 것인지 아니면 다리를 비벼서 소리를 내는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무엇을 비빈 든 간에 악기를 연주하듯이 자신의 몸을 이용하니까 장르를 따지자면 아카펠라가 될 것이고 장소에 따라 독창도 있고 듀엣도 있고 합창도 있다. 다른 누군가의 화답을 기대하며 그치지 않고 부르는 노래.
만약 혼자서 노래하는 귀뚜라미가 있다면 이놈은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노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외로움을 즐기려 우는 것일까?
이 모든 풍경이 점점 드러나는 딱 그만큼, 가을 한가운데로 점점 들어가고 있다.
혼자라서 편한데 눈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내게서 멀어져 갈 때 사람이 그립다는 말이 가슴속에서 의미를 가져왔다. 누구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요즘 사는 게 어떻냐고 수다를 떨어보고 싶어 진다. 딱히 누굴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할 것 같은 이런 기분은 도대체 뭘까? 아직 듣지 못한 귀뚜라미 소리에 벌써부터 이렇게 마음이 설렌다.
조급해졌던 마음이 이렇게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는 걸 보면, 아직 철이 덜든 내 모습에 내가 위로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런 느낌들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 일까?
글쎄… 무거워진 가을 하늘의 무게 탓이겠지.
聞蟋蟀 /鄭蘊 (문실솔 /정온)
通宵喞喞有何情 (통소즉즉유하정)
喜得淸秋自發聲 (희득청추자발성)
微物亦能隨候動 (미물역능수후동)
愚儂還昧待時鳴 (우농환매대시명)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듣고서
밤새 귀뚜르르 우는 것은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맑은 가을에 스스로 소리 내 울 수 있는 것이 기쁜 것이구나
미물 또한 계절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데
못난 나는 어리석게도 때를 기다려 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