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맞춰 생명을 키워 간다는 것
거실 한구석에 파프리카 모종 2뿌리를 심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이...
어색하고 미숙한 상태다.
왜 볕이 중요한지, 왜 바람은 또 필요한지 몰랐다.
그렇게 뭘 모르는지 알아가는게 재미 있었다.
파프리카 두 뿌리가 자라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키도 크지 않고 꽃도 피지 않았다. 높이가 낮은 화분에 나란히 키우던 것을 나눠서 제법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저 풍문따라 좋다는 흙이며 거름을 한웅큼씩 뿌려 두었다.
경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
지나친 것과 부족한 것은 그놈이 그놈이다.
'적당히'라는 황금비를 찾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파프리카가 많이 열리면 처갓집에도 갔다주고 주위사람들한테도 나눠줄 거창한 계획을 품었다. 겨우 두 뿌리지만 그 꿈만은 농장을 차린 수준이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아내도 꽃이 피자 조심스럽게 붓으로 수분을 해주었다. 벌 나비 들어 올 수 없는 아파트라, 확실히 "자연스러운"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아내의 정성으로 조그마한 파프리카 딱 하나가 열렸다. 한 입에 쏙 들어갈 크기다.
키우는데 들어간 화분, 흙, 모종 값을 다하면 일년내 먹을 파프리카를 장만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실망스럽지만 내년에는 지금 경험이 더 많은 수확으로 변할 수 있을까??
어디서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 어떤이의 글한줄이 생각난다.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플라스틱 나무를 쪼던 딱다구리가 돌아보며 말했다.
"요즘건 왜이리 맛이 신통치 않은지 몰라"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는 "살아있는 자연"을 모방한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물들로 이루어진 세상. 더구나 먹지도 못할놈의 것들.
딱다구리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주 중간에 찾아온 눈물나게 고마운 휴일 낫 시간.
뜬금없이 생각 하나에 빠져든다.
인간다움은 인공적인 것일까? 자연적인 것일까?
동향 배란다가 있는 아파트에서, 남향 배란다를 부러워 한다. 바람 불고, 벌 나비 날아드는 모습을 그리워한다. 지금 이런 내모습이 플라스틱 나무로 그럴싸하게 인테리어를 꾸미고, 딱다구리에게 집을 지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