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층 입원실에서 퇴원하기 전날 밤에
처음 알았다.
투명한 튜브를 따라 검붉은 피가 지나가는 순간 느껴지던 뜨꺼움.
'따뜻함'이라는 감상으로는 모자랬다.
차가운 쇠바늘이 혈관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던 순간, 지나간 기다림들도 함께 흘러나왔다.
이제 그 '기다림'이 새로운 길을 찾아 '기다려온' 사람에게 가기를 바라본다.
'기다림'을 뺀 나머지는 다시 반대편 팔로 되돌아 오는 길을 만들었다.
손등에 다시 바늘이 들어오고, 이제 저 커다란 기계와 인간이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지적능력은 알파고에 비해 떨어지고 움직임은 병원 환자인 불편한 사이보그'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4시간 30분 정도 침대에 누워서 양팔의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처음 두 시간 정도는 피가 빠져나가는 오른쪽 팔은 찌릿찌릿한 저림과 바늘의 이물감이 있었고, 피가 다시 돌아오는 왼쪽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내 안의 욕심이 아직도 남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하는 오른팔은 내보내는 것을 아까워하며 질척이고 있었고, 다시 돌려받는 왼쪽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낌없이 줄만큼 정신 수양이 되지 못하였기에 하나쯤은 내심 바라본다.
"이제 지나간 시간은 추억입니다. 다가올 시간은 지금 보다 더 힘든 과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난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당신도 날 모른 채로 살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더 힘내야 합니다. 추억은 살아있을 때 의미가 되어 줍니다. 꼭 더 힘을 내요"
2009년 어느 때라고 한다. 솔직히 기억에 없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차출되었고 종이 서류에 '설마'하는 심정으로 사인을 하고 돌아왔다.
2016년 1월 낯선 전화번호와 문자가 왔다.
"조혈모세포기증"이란 단어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인터넷 검색.
기증 후기와 후유증, 동의 절차에 대한 내용들을 빠르게 스캔하고 망설였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래서 안사람에게 동의를 받았다. 갈팡질팡 할 때면 늘 안사람이 마음을 잡아주었으니까 더 이상 망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번쯤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 보자'거나 '인류애'는 나는 모르겠다. 그저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 중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어 다른 가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면, 혹시라도 언제가 우리 가족도 똑같은 희망이 필요할 때 조금 더 희망의 바람을 가져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