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늘의 표정, 때를 알아 가는 것

21층 입원실에서 밤하늘을 보다가

by 진이

하늘은 사람들이 정해 놓은 시간이시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때를 알아 내리는 비와 , 누구의 간섭도 필요치 않고 할 수도 없는 해와 달이 있을 뿐이다. 하늘 한번 쳐다보기 힘든 사람들에게 가끔은 나를 한번 바라 보라며 이런저런 표정을 짓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짓지만, 하늘처럼 맑은 비님들

매일 눈을 뜨고 일어나 어김없이 출근을 하면, 늘 보이는 동틀녘의 빌딩과 사람들.

건물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을 사람들 / 이미지 픽사베이

그리고 이른 시간부터 지하철을 기다리는 인파.

누가 아닌 우리 / 이미지 픽사베이

눈앞 그리고 눈밑..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하늘 한번 쳐다보지 않고 지내온 것 같다.


하늘을 보며 출근을 하고 다시 하늘을 보고 퇴근을 한다면 조금은 내 가슴에 좁은 그릇이 하늘을 닮아 가지 않을까. 조금 더 높게 조금 더 넓게 그리고 때론 푸르게 때론 붉게. 그렇게 말이다.

하늘을 닮은 가슴은 무슨 색으로 물들어 갈까..




초등학교 1학년, 방학 동안 큰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적이 있었다.

그때 제일 먼저 눈을 뜨고 하는 일은 선인장에 물을 주던 일이었다. 분무기로 뿜어져 나오는 그 뽀얀 물방울들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선인장의 굵은 몸통 안에는, 사막을 헤매며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이어줄 단물이 가득할 것 만 같았다.

한번쯤 서부영화에서 본 듯한 / 이미지 픽사베이

그런데 네 눈앞에 놓인 작은 화분에 더 작은 선인장은 너무나 비쩍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물을 주었다. 어서어서 커서 영화처럼 키 큰 어른을 작은 아이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선인장이 되어 주었으면 했다. 물만 주면 무럭무럭 잘 클 것 같았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상대를 잘 알지 못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그 대상을 사랑할 때, 사랑이 아닌 소유욕으로 변하는 순간이 오고, 그 대상은 시들고 빛은 바래가기 시작한다.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것을 내 손 안에서 다 이루어 주고 싶었지만, 시들시들 해진 선인장은 맥없이 축축 늘어졌다. 그럴수록 이해가 가진 않던 나는 더 열심히 분무기를 들이댔다. 선인장이 아파하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때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선인장은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때를 알아 꽃을 피우고 몸집을 불리고 또 다른 개체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살아있는 생명이니까. 살아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키워 나갔을 것 같다. 무심코 지나쳐온 많은 것들이 이렇게 때를 알아 하늘처럼 환하게, 어둡게, 촉촉이, 때론 성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지켜왔을 것이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 주거나 이끌어 주지 않아도 때를 알아 그렇게~


하늘은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저마다의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곁에서 바라보고 있다.


살아있는 이 순간 이 곳에서 기쁜 마음으로 서있을 수 있는 것도, 어느 곳에서 마음 상해서 죽고 싶어 질 때도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사는 게 왜 이리 힘든 건지 모르겠다!

라고 한탄할 때도 살아있지 못하면 할 수가 없는 말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때를 알아 내렸다가 다시 녹아 물이 되어 새롭게 변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려는 노력이 있을 때 생명이 있는 것이고, 이런 노력이 사라질 때 죽은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도, 살아있는 것처럼, 그때를 알아 곁에 있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시나 지금껏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만약 죽어있었다면 어서 살아가라고, 하늘처럼 표정을 지어 보라고 말해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