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索(사색), 답은 없어도 찾고 싶었던 생각들

찾을 수 있을까? 오래전 기억을 꺼내본다

by 진이
깊은 사색
아련하게 그리고 조금은 아프게 남아 있는 단어
"세상을 짐 질수 있는 힘이 미치는 위치까지…"
아마 이게 나의 목표인가 보다


허언증이 극에 달했던 20대 초반


"무얼 고민 하고 있느냐고? 글쎄..
고민하는게 무엇인지 몰라 고민중이다"


오그라든다.


오래만에 지난 일기(끄적거림)들을 꺼내 보았다.

지금도 시원하게 답 할 수 없는 질문들에 다시 한번 눈이 간다.



그냥 그렇게 독백하곤 했었다.

고민하길 원했고 그래서 고민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렇게 그렇게…

답을 찾기 위한 행동보다는 '지금의 막막함에 대한 타협'으로 '사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다.


IMF 이후 우리들은 변온 동물이라도 된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차가워져간다.


이유가 될만한 사건을 찾았고, 모든걸 IMF로 답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어딘지 억지스럽기만한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 '실업', '부도' 같은 잿빛 단어들이 가득차서 '노력과 열정'이란 말은 스스로의 위안거리에 불과했다.

서민은 금을 팔고 부자는 금을 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이야기 될 때 우리는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었다. 정보의 비대칭은 그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만큼 거대한 상대와 30초 스파링을 뛰어야 하는 느낌. 딱 그정도.

10초를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가 기록인 싸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 뒤에 잔뜩 겁에 질린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잠시 피해갈 수 있는 피난처였다. 볕드는 건물 담장에 모여있거나 어디에나 하나쯤 있을 "사색의동산"에서 자판기 커피한잔에 온기를 나눴다.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화장실 안에서 '사색'을 즐기고 있을 때, '사색'이 되어가는 화장실 밖. 문 하나를 경계로 전혀 다른 풍경이 지어지는 세상이 궁금했다. '왜'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침전되어,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기에는 참 많이도 부족한 용기.


지나고 나면 모두가 추억이 되고 그래서 아름다워 보인다고 그렇게 쉽게 말해버릴수있을까? 난 아직도 고민해보고 싶다. 물론 '왜'라는 질문과 '어떻게'라는 질문을 함께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아직 채우지 못한 고민의 양과 불안에서 벗어나 왜 좀더 현실적으로 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해줄 말이라곤 결국 이것일 것 같다.


“그래 아직은 멀었다. 아직은 마음껏 사색할 때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면서 그렇게 사색하면서 아직은 그래도…”

일말의 허세정도는 남겨 두고 싶다.


그래 이것 또한 짧은 사색이다. 현실이란 이름앞에 나약하게 사라져 버릴 그런 물거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물거품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까?




바람에 묻어온 너의 이야기(1997)


항상 주머니엔 진로 한 병을 넣어 다니며 이슬 같은 사람이라 말했지.

독수리 5형제는 조류에 탈을 쓴 인간 5 의남매라고 침 튀기며 열변을 토했지.

늘 그런 사람 이었지, 너는….


해가지면 힘이 솟는다 했지. 웃었지만 쓰디썼지. 밤이 좋은 이유를 아니까. 언젠가는 학교 분수대 앞에 멍하니 기다리곤 했지. 시원한 분수가 치솟는 모습. 하지만 몇 달째 물이 끊긴 분수대에서 물줄기를 기대하는 건 너 뿐이었지. 빈 강의실을 찾아 다니며 그래도 학생이라고 빈 가방을 메고 다녔지. 어쩌다 빈 강의실을 찾다 수강해야 될 강의실에 들어가는 때는 오른쪽 맨 구석진 뒷자리에서 가방을 고이 접어 존경하여 마지 않는 노사구를 만난다며 고갤 숙였지. 부스스한 눈으로 감아도 표시도 안 나는 머리를 하고 강의실을 나와서 걸었지. 안암동에서 신설동으로 다시 동대문으로 종로 6가에서 1가로 광화문으로.

그제야 전용 밴치라 이름 지은 곳에서 한참을 앉아있지. 분수대에서처럼 시원한 물줄기라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바람을 보았다

그 푸른 숨결을 보았다

차아아악

여기 있다며

차아아악

뺨을 부비고

입맞춤하고

따뜻이 안아 주곤

차아아악

안녕 이라고

귓가에 맴돌다

가 버린다


남들보다 한달 일찍 자체 방학을 하던 너. 방학때 학교에 나오는 건 방학의 참 의미를 모르는 거라며 한 번도 가지 않던 너. 비만 오면 모자를 눌러쓰고 비 맞으로 나가던 너. 그리곤 아무도 모르게, 며느리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너. 바람에 묻어온 너의 이야기. 언제나처럼 그런 사람이지,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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